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한국의 콘텐츠] 일본에서 부는 문학 한류

 Featuers >  일본에서 부는 문학 한류
일본에서 부는 문학 한류

박동미(문화일보 기자)


세계 문학 시장에서 여전히 한국 문학은 ‘변방’에 가깝지만 아시아, 특히 일본에서는 ‘주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내 페미니즘 담론에까지 불을 지핀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 이후 ‘문학 한류’라고 불러도 될 만큼 현지에선 한국 소설이 인기다. 한눈에 ‘한국 책’임을 알 수 있도록 한글 제목을 일본어판에 그대로 쓴 표지가 유행이고, 문학뿐만 아니라 가벼운 산문집에서부터 페미니즘서, 과학·인문 교양서에 이르기까지 한국 저자들의 책이 속속 번역·출간되고 있다. 이른바 ‘K- BOOK’이 핵심 축으로 부상한 것. 그러니까 일본 출판 시장에서 ‘한국’은 그 자체로 가장 ‘잘 팔리는’ 콘텐츠라는 의미다.

일본 내 ‘문학 한류’ 붐을 주도한 소설은 ‘82년생 김지영’과 손원평의 ‘아몬드’가 대표적이다. 일본에서 20만 부 이상 판매한 ‘82년생 김지영’은 지난 5년간 해외에서 가장 많이 팔린 한국 소설이기도 한데,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한일 양국에서 화제가 됐다. 소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배제되어 온 한 여성의 자각과 성장을 그렸다. 비슷한 유교 문화권의 일본 여성들에게도 공감과 교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분석이다. ‘아몬드’ 역시 일본에서 20만 부 이상 판매됐고, 일본 출판 시장의 대중성 척도라고 볼 수 있는 ‘일본서점대상’까지 받으며 주목받았다. 손원평은 또 다른 장편 ‘서른의 반격’으로 같은 상을 연이어 수상해 현지에서도 인기 작가로 자리 잡았다. 가장 최근에는 민지형의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가 2030 여성 독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며 상승 중이다.

한국 소설들의 일본 내 출간 양상을 보면 보다 넓고 뚜렷해지는 ‘K-문학’을 감지할 수 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일본어 번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작품이 한글을 ‘얼굴’로 내세운다는 점이다. 장강명의 ‘한국이 싫어서’, 황정은의 ‘연년세세’, 배명훈의 ‘타워’, 강화길의 ‘다른 사람’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이 싫어서’와 ‘타워’의 일본어판 표지는 언뜻 보면 한국어 책으로 착각할 정도로 한글 제목과 작가명이 전면에 배치돼 있다. ‘한국이 싫어서’를 출간한 구로카라출판사 관계자는 ”표지부터 한국 책이라는 이미지를 주려고 의도했다”면서 ”한국 문학이 워낙 인기고, 요즘 일본에서 한글 자체가 ‘힙’한 디자인으로 여겨지는 것도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한글’ 등 ‘한국’이 핵심 키워드로 부상하면서 일본 출판계는 문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한국 책에 주목하고 있다. ‘K-BOOK’의 가능성이 크고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2억 원이 넘는 선인세로 화제가 된 김수현의 ‘애쓰지 않고 편안하게’ 등 가볍고 소소한 산문집에서부터 K-콘텐츠 전문가들이 쓴 분석서 그리고 한국 저자의 과학·인문서 출간도 활발하다. 에토세토라북스에 따르면 이 서점에서 판매하는 책 대부분은 ‘한국’과 관련돼 있는데, 한국 여성주의 소설과 페미니즘서, 인문 교양서, 에세이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K-BOOK’에서 가장 파급력이 높은 분야는 에세이다. 시작은 김수현의 전작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가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부터다. BTS의 정국이 읽은 책으로 한국에서 100만 부, 일본에서 30만 부의 판매고를 올렸다. 동방신기의 유노윤호가 읽어 유명해진 하완의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도 일본 최대 온라인 서점 아마존 에세이 분야 10위에 들기도 했다. 이어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그래도 괜찮은 하루’, ‘게으른 게 아니라 충전 중입니다’ 등 일상의 통찰을 통해 위로의 말을 전하는 산문집이 일본의 젊은 독자층을 겨냥해 출간됐다. 다양한 한국 책의 일본 계약을 중개해 온 김승복 쿠온 대표는 ”K-팝 아이돌이 보고 듣는 모든 것이 팬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그 한 자리를 책이 차지했다는 것이 의미 있다”고 전했다.

일본 내 한국 책 출판은 점차 ‘아이돌’에 기댔던 초기 단계를 벗어나고 있다. 도쿄에서 한국 전문 서점도 운영하는 김 대표는 ”전문적인 ’한류 콘텐츠’ 서적이나 페미니즘서, 과학·인문 교양서에 이르기까지 ‘K-북’의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회 변화와 트렌드에 민감한 한국 출판사의 빠른 기획력이 통하고 있는 것. 실제로 BTS 곡을 심층 리뷰한 김영대 대중문화평론가의 ‘BTS : The Review’는 2020년 일본어판 출간 이후 7쇄를 찍었고, 아이돌 10개 팀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살핀 후속작 ‘지금 여기의 아이돌-아티스트’는 기존의 3~4배 높은 금액으로 일본어판을 계약했다.

이 밖에 뇌과학 이론을 심리 에세이로 풀어낸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와 한국 사회의 혐오 문제를 정면으로 분석한 ‘말이 칼이 될 때’ 등 한국 출간 1년 안팎의 과학·인문 교양 신간도 일찌감치 일본 독자를 만나고 있다.


※ 본 기사는 전문가 필진이 작성한 글로,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