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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주변, 서울 청량리에서 한국을 보다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도 도시와 지방의 독특한 문화를 찾고자 하는 왕 유안청은 균질화되고 있는 도시문화를 아쉬워한다.
그는 이러한 현대성과 대조를 이루는 도시의 이면에서 재래시장을 발견한다. 도시의 작은 재래시장에서 진솔한 삶의 풍경을 찾는
어느 사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세계화의 바람으로 균질화된 도시문화
이제는 ‘미국화’와 동의어가 되어버린 듯한 ‘세계화’의 유례없는 물결 속에서 도심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이 그 나라 사회의 독특한 특징을 발견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펠로우십으로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또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매일 아침, 연세대학교에 있는 내 사무실로 출근하기 위해 맥도널드, KFC, 스타벅스, 피자헛과 같은 체인점을 지나칠 때면 난 늘 잠시 동안이나마 혼란에 빠진다. 이곳이 서울인가, 뉴욕인가, 아니면 상하이
미국에서 한국, 또 한국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미국 중심적인 소비문화가 만들어낸 세계화의 바람은 서구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모든 도시들에 침투하여 그들의 도시문화를 거의 균질화시켜 놓았다. 따라서 서울에 살고 있는 외국인이 한국의 독특한 도시 및 지방문화를 찾아서 이해하고 감상하기란 여간 어렵지가 않다.
사학자인 나는 도서관, 기록보관소, 또는 학술기관을 방문하는 것 외에는 내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존재하는 도심을 떠나 지방으로 여행할 일이 거의 없다. 도시에서 세계화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래시장을 방문할 때면 난 세계화의 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목격하곤 한다. 이 재래시장들은 전체가 하나가 되어 이 거대한 도시의 현대성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진솔한 삶의 모습을 찾아 재래시장으로
외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무언가 한국의 전통을 알릴 수 있는 물건을 선물해야 할 때, 이 곳의 친구들은 나더러 종종 남대문에 가볼 것을 권유한다. 사실 2005년 처음 한국에 온 이후 그동안 남대문을 몇 차례 방문하여 물건을 구입한 적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남대문 상인들이 상업적인 목적으로 지나치게 외국인에게 물건 팔기에 몰두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헬로’ ‘니하오’ ‘곤니치와’ 와 같은 짧은 외국어들을 구사하면서 외국인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남대문 시장이 유난히 상업적이어서 외국인들이 그들이 파는 물건들뿐 아니라 시장 자체의 전통성마저 제대로 감상하기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서울에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과 달리 아주 작은 재래시장들도 많다. 일반적으로 말해 이들 시장은 규모는 작으나 특정 지역의 주민들에게 음식과 의복 그 밖의 생활필수품들을 싼값에 공급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들 중 가장 큰 시장이 서울 북부에 있는 청량리
시장일 것이다.
청량리 시장은 내게 한국의 재래시장과 서민의 생활모습을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최근 난 거의 모든 한국인들이 청량리 시장에 대해 알고 있음을 깨달았고, 나의 친구들 중 일부는 그 곳을 방문해 볼 것을 권하기도 했다. 반면 나와 같은 펠로들은 상당수가 청량리시장이 우리 삶의 가까운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커녕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세계화의 물결 속에 휩쓸리지 않은 재래시장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청량리시장에서 관찰한 도시의 이면
2010년 11월 나는 처음 청량리를 방문하였고, 참으로 흥미로운 경험을 하였다. 그 시장에서의 나의 첫인상은 너무나 번창하고 사람들로 붐벼서 일부 지역에서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시장에는 육류, 어류, 채소, 김치, 과일, 의류, 그 밖의 생활필수품들을 섹션별로 나누어 팔고 있었다. 각 섹션은 남대문 시장처럼 손님들로 붐비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각지에서 몰려든 한국인들이었다. 따라서, 남대문에서처럼 ‘헬로우’ ‘니하오’ 혹은 ‘곤니치와’ 같은 외국어는 이곳에서는 들을 수 없었다.
또한 청량리시장의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개고기를 파는 상점이 몇 개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요즘에는 개고기를 파는 식당이나 시장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다. 하지만 청량리에서는 이러한 전통이 여전히 잘 보존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청량리시장의 방문은 참으로 인상깊었다. 청량리 시장을 통해 고도로 현대화되고 국제화된 서울이라는 도시의 이면을 볼 수 있었다. 이 번창하는 시장의 독특한 특성은 바로 세계화의 주변지역에 머무르면서도 중심으로 이동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청량리시장은 한국의 전통적 특성을 내부로부터 관찰하고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외국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