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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00여 개의 섬과 해안선으로 둘러싸인 다도해, 인도네시아에는 높이 20m에 달하는 범선 ‘피니시(Pinisi)’와 그 범선을 설계도 한 장 없이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기스(Bugis)족’이라 불리는 이들 대부분은 동부 인도네시아로 향하는 관문인 남부 술라웨시의 불루쿰바에 모여 삽니다. 인도차이나부터 호주 대륙까지 드넓게 교역했던 해양민족의 후예 부기스족의 범선 피니시와 그들의 놀라운 조선 기술은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무형문화유산입니다.
바다에서 나고 자라 일찍이 자연과 상생하는 법을 익힌 부기스족 사람들은 천 년이 넘는 조선 및 항해 기술을 기반으로 피니시를 제작해왔습니다. 참치잡이용 어선부터 유람선까지 종류가 다양한데, 전통 피니시는 모두 자연에서 얻은 목재로 만들어집니다. 물에 강한 소나무는 방수 효과를 살려 배 전체의 틀로 쓰이고, 쉽게 부러지지 않는 자띠나무는 선박 내부 공간에 사용돼 한층 더 배를 견고하게 잡아줍니다. 목재에 불을 쬐며 타지 않게 두세 차례 물을 뿌려주면 원하는 대로 나무가 휘어져 모양이 나는데, 이는 불기운을 활용해 나무 본연의 자연스러운 멋을 살리려는 부기스족의 지혜가 담긴 기술입니다. 거기다 나무와 나무를 덧댈 때도 잘 녹슬지 않는 ‘나무못’을 사용하는 것까지 더해, 피니시에는 자연 소재에 대한 이들의 믿음과 애정이 묻어납니다.
피니시 건조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은 판리타 로피(Panrita Lopi), 사위(Sawi), 삼발루(Sambalu) 세 가지로 나뉩니다. ‘판리타 로피’는 선박 건조의 장인을 일컫는 말로, 전체적인 작업 구조를 통달해 지시를 내리는 지도자입니다. ‘사위’는 판리타 로피의 지시에 따르는 핵심 일꾼이며, 기술력에 따라 현장 감독급인 ‘사위 케팔라’와 상급 조선사인 ‘사위 카부수’, 그리고 신참 조선사이자 견습생인 ‘사위 파물라’로 등급이 나뉩니다. 마지막 ‘삼발루’는 판리타 로피에게 선박 건조를 요청하는 고객입니다. 이들은 처음 구상 단계부터 진수할 때까지 배를 건조하는 모든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원하는 선체의 크기와 유형을 제시하는데, 이는 개선된 피니시를 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판리타 로피부터 사위 파물라까지 모든 일원은 선체 내부의 조립 순서와 구조를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리는 ‘타타(tatta) 도면 방식’으로 각자가 맡은 역할을 묵묵히 해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범선 피니시와 오직 선조로부터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배를 만드는 사람들. 과거엔 외세로부터 터전을 지키며 활발한 교역을 이끌어주었고, 이젠 생계수단이 되어준 피니시는 부기스족의 자부심이자 긍지라 칭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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