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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일의 대장정, 남미에 선보인 한국 창작 무용의 세계

‘나우(NOW) 무용단’이 중남미 3개국 순회공연을 펼쳤다. 멕시코, 베네수엘라에서는 3대에 걸친 여성들의 이야기로 이뤄진 무용극 <안팎>의 공연으로 감동을 나누었고, 아르헨티나에서는 현지 무용단과 합작한 의 공연으로 뜨거운 열정을 나누며 20여 일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이 우리나라 무용단체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데 큰 힘이 되었다.

중남미 무용계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하다. 지리적으로 워낙 멀리 떨어져 있어 다른 나라에 비해 그동안 교류가 빈약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비단 무용뿐 아니라 모든 문화 예술 분야에 걸친 문제점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성사된 이번 순회공연은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다. 한국의 전통 무용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나우(NOW) 무용단이 3대에 걸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무용극으로 200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한 작품 <안팎>을 들고 지난 2009년 11월 4일부터 20여 일간 중남미 3개국에서 순회공연을 펼쳤다. 멕시코의 모렐로스 국제댄스페스티벌(Festival Internacional de Danza Morelos), 베네수엘라 마라카이보 국제무용페스티벌(Festival Internacional de Danza Maracaibo),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현대무용단 라 콤파니아(La Compania)와 공동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올린 공연이 바로 그것. 나우 무용단은 3개국에서 총 7회의 공연과 두 번의 워크숍을 개최했다.



멕시코 야외 공연을 가득 메운 잔잔한 휴머니티, <안팎>의 감동
과거 아르헨티나의 라 콤파니아와 공동 작업을 하며 탱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달간 머물렀던 나로서는 근 10개월 만에 다시 남미를 찾은 셈이었다. 우리에게 다소 덜 알려진 중남미 지역의 무용 축제들은 내용 면에서는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무용 축제와 별반 다른 게 없으나 이를 운영하는 면에서는 새로운 측면도 많아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했다. 무용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이나 반응 또한 조금은 다른 면이 있었다. 첫 공연지였던 멕시코의 모렐로스 페스티벌은 11월 5일부터 시작해 15일까지 계속되었다. 시작한 지 2년밖에 안된 축제였지만 한 도시에서만 열리지 않고 멕시코 모렐로스 주에 위치한 콰우틀라(Cuautla), 호후틀라 드 후아레스(Jojutla De Juarez), 사콸판 드 아밀파스(Zacualpande Amilpas), 케르나바카(Cuernavaca), 테포스틀란(Tepoztlan) 등 5개 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이 5개 지역은 케르나바카를 중심으로 자동차로 1~2시간의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들로 페스티벌 주최 측은 해외 단체들의 작품 성격에 맞춰서 최소 세 군데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나우 무용단은 다른 나라 무용수들과 함께한 미니 즉흥 이벤트를 포함해 모두 4개 도시에서 공연을 펼쳤다. 첫 공연지는 사콸판 드 아밀파스로 아주 작은 마을의 야외 무대에서였다.
여성 3대에 관한 휴머니티를 잔잔한 이미지와 다양한 코드로 풀어낸 <안팎>은 ‘진하고 끈끈한 이야기’로 한국적 감성을 지닌 작품이다. 끊임없이 수다를 떨거나 길거리에서 음악을 크게 틀고 엉덩이를 뒤흔드는 남미인에게 <안팎>은 너무 섬세하고 감성적인 공연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공연 전 관객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올지 많이 초조했다. 시골 마을이라 관객이 적을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어둠이 내리자 400여 명의 관객이 빼곡하게 의자를 채웠다. 남녀노소 동네 사람들이 거의 모두 광장으로 모여든 듯했다. 무용수들이 춤추는 동안 적당한 바람이 불어와 보는 사람이나 춤추는 사람이나 모두 야외 공연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감흥이 살아나는 듯했다. 야외 공연인데도 관객들은 의외로 진지했다. 숙연하게 공연을 보던 관객들은 공연이 끝나자 마자 예상치 않은 박수갈채로 환호했다.
남미 시골 마을의 관객들이 도대체 무엇을 보았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그들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깊이나 명확한 표현이 좋았다.”고 하거나 “상당히 동양적 또는 이국적이었다.”는 명쾌한 대답을 했다. 이곳보다는 더 큰 도시인 콰우틀라와 케르나바카에서 펼친 실내 극장 공연에서도 공연 후 기립 박수 등 환호를 받았고, 관객들은 작품에 대해 한결같이 좋은 반응을 보였다.
빈부 격차가 심해 언뜻 보기에는 빈곤층이 많아 예술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남미인 대부분이 비록 경제적 빈곤을 겪고 있을지언정 문화를 향유하는 수준은 상당했다. 고급 예술이냐 순수 예술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그들에게는 문화가 삶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든다.

예술을 사랑하는 낙천적인 사람들과 함께하다, 베네수엘라
베네수엘라의 마라카이보는 카리브 해에 면한 도시로 해상 무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독재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우고 차베스가 통치하는 나라로 마치 비밀 첩보 영화에서처럼 감시 체제가 철저했다. 슈퍼마켓이 있으나 일반인들은 꿈도 못 꿀 정도로 물가가 비싼 나라, 밤이 되면 두려움이 엄습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예술과 문화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달랐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한국, 인도네시아, 에콰도르, 칠레 등 16개 무용단이 공식 초청되어, 11월 9일부터 28일까지 계속된 베네수엘라 마라카이보 국제무용페스티벌은 1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중남미 지역의 유명한 무용 축제다. 멕시코의 모렐로스 축제처럼 여러 도시를 연계해 치르는 운영 방식은 아니었지만, 문화 예술을 통한 교육과 공연을 병행하는 운영 방식이 이채로웠다. 그 중에서도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무용을 활용한 교육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렉처 & 데몬스트레이션(Lecture & Demonstration)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토요일 오전인데도 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족 단위 관객들 800명 정도가 참석했다. 정식 공연도 아닌 강의와 시연 프로그램에 이렇게 많은 가족 단위 관객들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공연을 끝낸 뒤 질의응답 시간이 있었는데, 나이 지긋한 분들까지 진지하게 질문을 하고 열심히 경청하는 것을 보고 내심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정리되지 않은 도시의 허물어진 담벼락과 철저하게 감시를 받는 사회에 살면서도 문화 예술의 중요함을 인지하고 있는 그들, 그래서 빈부 차가 극심하고 사회적 약자가 많음에도 불특정 다수에게 개인의 불만을 표출하는 소위 ‘묻지 마’ 범죄 같은 것으로 사회가 혼란해지는 경우가 드문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낙천적인 남미인들, 그들은 진정 예술을 즐기고 사랑했다. 다음 날에 열린 공연 역시 멕시코와 비슷한 환호를 받았다.



아르헨티나 공연단과 함께 준비한 풍성한 공연
1년 만에 다시 오게 된 부에노스아이레스. 한 달을 살았지만 왠지 제2의 고향처럼 상당히 익숙하게 느껴졌다. 아르헨티나의 이번 공연은 두 무용단이 합작해서 만든 작품 로 2009년 4월 성남국제무용제에서 초연한 데 이어 이번에는 아르헨티나에서 새롭게 모양새를 갖추어 공연했다. 한국보다는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하는 아르헨티나 무용단의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경제적인 면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중남미 한국문화원이 공동 주최하면서 두 나라 무용인들의 교류에 큰 역할을 했다. 그 때문인지 친정 나들이를 온 딸이 느끼는 기분과 같은 감정이 느껴졌다. 중남미 한국문화원 이종률 원장은 일반 정치인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정말 외교관 신분이 맞을까 싶을 정도로 마치 비즈니스맨처럼 적극적으로 한국을 아르헨티나에 소개하고 있었다. 서울에 있을 때부터 무용단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자막 번역을 비롯해 세세한 부분까지 철저하게 준비를 해주셨기에 어려움 없이 공연을 진행할 수 있었다. 외국 공연을 할 때 대사관이나 문화원에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이것저것 배려해줄 때, 공연자들은 말할 수 없는 감사를 느낀다. 한국인으로서의 ‘뿌듯함’,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 그것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한껏 가슴에 훈장처럼 달게 된다.
아르헨티나 공연은 외에도 <안팎>을 함께 공연해 더욱 풍성하고 재미있는 공연이 되었다.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관객들의 반응도 좋았다. 근 20여 일간의 공연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남미 공연을 통해 축적된 경험과 풍부한 기억들로 인해 나우 무용단은 조금, 아주 조금 더 성장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들의 이번 공연은 비록 힘든 여정의 연속이었지만 우리 무용계에서는 처음으로 아르헨티나 무용단과 국가 간공동 제작을 한 데 이어 멕시코와 베네수엘라의 축제에서 아시아의 무용단으로는 처음 초청되어 공연하는 등 교류가 뜸했던 중남미 지역과 교류를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런 교류가 가능해진 데에는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시행하는 PAMS(Performing Arts Market in Seoul) 선정 작품에 대한 한국제교류재단의 지원 정책의 힘이 컸다. 공공기관의 지원 정책이 국제무대에서 우리나라 무용단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힘이 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은 넓고 한국의 문화를 보급할 곳은 많다. 세계무대를 향한 나우 무용단의 행보는 2010년에도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5개국 순회공연으로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