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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 연구라는 높은 산, 더 열심히 오르겠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버스를 타기 위해 정신없이 달리는 나.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찬 것일까? 2박 3일답사 여행을 앞두고 ‘날씨가 어떨지, 같이 갈 사람이 누군지’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설렘이 가득한 마음으로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다.

오른 자만이 알 수 있는 산 정상의 아름다움
높은 곳이라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것인 줄로만 아는 사람이 어느 날 등산을 한다고 상상해보라.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땀을 뻘뻘 흘리며 헉헉대고 올라가는 모습이 떠오를 것이다. 산 보기 힘든 모스크바에서 살아온 내게 등산은 그렇게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산 정상에 서면 아름다운 하회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보기 위해 힘은 들지만 즐겁게 산에 올랐다. 애쓰고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 온다고 하듯이 나 역시 고생 끝에 결국 자연의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높은 산밑에선 눈물처럼 맑은 시내가 흐르고, 반대편에는 한옥 마을이 그림같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시내를 건너려고 내려가서 나룻배를 탔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고 햇볕도 좋다.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하회마을에서 옛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가끔 처음 접하는 곳인데도 머무르고 싶은 장소가 있다. 이곳이 바로 그랬다. 내 마음이 편해지는 곳을 이제야 찾은 것 같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더 와보고 싶다.

신비로운 석굴암, 마침내 그곳에 서다
러시아를 비롯한 서양의 문화는 아시아 문화와 많은 차이점이 있다. 사실 양쪽 문화는 전혀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서인지 서양 사람들은 아시아 문화에 호기심이 많은데, 특히 나는 한국의 전통적인 유물에 관심이 많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한국 역시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곳곳에 불교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옛날부터 풍수지리에 따라서 궁궐이나 절을 지었고, 빨간색, 초록색, 흰색으로 건물을 장식한 스타일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에 오기 전에 석굴암이라는, 한국 사람에게 아주 중요한 곳에 대해서 많이 들었다. 여러 번경주에 놀러 왔지만 석굴암은 구경하지 못해 아쉬웠던 차라 이번에는 꼭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부끄럽게도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 새벽 4시에 일어나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로지 해가 뜨는 것을 보겠다는 열망으로 새벽부터 일어나 고생을 자처했다. 일출과 석굴암도 보기 위해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해가 뜨기 전에 소원을 말하면 잘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내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믿는다. 새로운 날을 맞이하여 급히 경주의 보물, 석굴암을 보러 갔다. 동굴 안에서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하얀 부처님이 나를 보고 있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작은 부분까지 철저히 만들어낸 석굴암이다.
그 순간 ‘친구들이 옆에 있으니 이 여행이 또한 얼마나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다. 경주에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만큼이나 나와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들도 가지각색이었다. 같이 있는 사람들의 국적을 지도에다 표시하면 세계여행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을 버려라, 발우공양 체험
과식은 인간의 추한 욕심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 절에서는 자기가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덜어서 모두 남김없이 먹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다. 이것은 욕심을 버리기 위해 마음을 시험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음식을 교대로 준비하고 퇴식하는 규칙도 있다. 불교에서는 움직일 수있는 동물이나 생선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되기 때문에 반찬으로는 채소만 나왔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서 허리를 굽히면 안 된다고도 했다. 또한 식사에만 집중하고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가리면서 조용히 먹어야 한다는 주문도 있었다. 이 모든 규칙을 지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엄격한 규칙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스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이번 체험을 통해 발우공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게 되었다. 절에서 직접 만든 연꽃을 볼 때마다 김천에서 보낸 추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한국 문화를 연구 대상으로 삼으면 연구 시간이 꽤 많이 필요하다. 연구 과정은 높은 산을 올라가는 것과 비슷하다. 이번 답사를 통해 이제 나는 한 고비를 넘어서 산 중턱에 조금 올라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