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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미, 조선 백자의 순수한 아름다움을 렌즈에 담아낸 특별한 전시

2010년 6월 19일부터 9월 26일까지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한국 전통 도자기, 백자와 현대 사진 작품을 함께 소개하는 <순수한 아름다움: 한국의 백자와 구본창 사진전>을 개최한다. 조선 백자가 지닌 순백의 미를 탐구하는 이 특별한 전시에 한여름의 열기보다 더한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도자기는 한국 미술에서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루었던 부문이다. 한국은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고화도 자기를 만들었고, 고려청자의 완성도는 종주국인 중국까지도 칭송할 정도였다. 하지만 17세기까지 한국의 도자 발달은 대부분 중국의 유행을 좇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 중국에서 소개된 고화도 자기가 그랬고, 중국에서 유행한 청자 산업이 그랬다.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유교 취향과 맞물린 백자가 유행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동시대 중국 명나라 시대 백자의 유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순백을 사랑한 조선만의 독창적 예술 세계
그러던 중 1644년 명나라의 멸망과 만주족의 청나라 건국은 조선인들로 하여금 중국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했다. 비록 간헐적인 긴장 상태가 있었지만, 조선은 명나라를 유교 정통주의에 입각한 근본으로 여겼고, 동아시아 문명의 선도자로 따랐다. 하지만 새로운 청나라는 한족이 아닌 변방의 오랑캐가 통치하는 나라였으므로 더 이상 중국의 유행을 따를 명분이 없어진 것이다. 조선 내에서는 이제 조선이 정통을 계승한 나라라는 인식이 커졌고, 그렇기에 외부로 눈을 돌리기보다는 조선 자생 문화의 진정성과 유일함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성리학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그에 따라 조선 토착 문화와 생활의 실리를 추구하는 실학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예술계를 포함한 사회 전반에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많은 학자들이 앞다투어 실사구시에 대한 저술을 내놓았으며, 미술에서는 이상화된 중국 산수화의 답습에서 벗어나 조선의 주변 경관을 그리는 이른바 ‘진경 산수’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도자기 분야도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당시 중국의 유행 경향과는 동떨어져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즈음 조선의 백자는 그 질이 더욱 향상되어 아름다운 순백색을 내는 것이 가능했고, 이를 통해 백자 본질의 절제의 미를 더욱 강조하는 것을 추구했다. 백자를 통해 검소와 검약의 미의식을 중시한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것이다. 그 결과 초기 백자인 순백자에 다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청화・철화・동화 등의 안료 장식도 당시 주변국의 유행과 달리 간결하게 시문(施紋)했다. 특히 조선 말기인 20세기 초까지 계속해서 생산한 순백자에 대한 선호는 중국이나 일본의 사정과는 크게 다른 현상이었다. 동시대 중국에서는 이전의 순백자를 화려하게 채색, 장식한 오채(五彩)가 대세를 이루었고, 일본 또한 강렬한 채색의 이마리 자기가 큰 인기를 얻은 것을 감안한다면, 조선왕조 전 시기에 걸친 순백자의 생산과 인기는 한국만의 특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 속에 담긴 ‘마음을 위한 그릇’
이러한 민족적 정서가 담긴 순백자의 고전미를 작가 구본창이 사진이라는 모던 매체를 통해 새롭게 조명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현대 사진 작가로 1980년대 중반부터 활발한 활동을 해온 구본창은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큰 테두리로 하여 자화상, 곤충, 동식물, 인체 등 다양한 주제의 작품을 선보였다. 1998년 ‘탈’ 시리즈를 시작으로 한국의 전통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가장 최근작 ‘백자’ 시리즈에서 순백의 백자가 담고 있는 청초하고 고아한 아름다움을 카메라 렌즈로 포착했다.
1989년 구본창은 우연히 어느 책에 실린 한 외국 여인이 달항아리를 옆에 두고 찍은 사진을 보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여인은 한국 백자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영국의 도예가 버나드 리치의 제자, 루시 리였다. 그 항아리는 리치가 1933년 한국에서 구입해 애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현재는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외국에 있었던 작가는 고향을 떠나 낯선 외국인 옆에 놓인 달항아리에서 비장한 서글픔을 느꼈다고 한다. 그 뒤로 15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 백자는 또다시 이국에서 그에게 다가왔다. 쿄토를 여행하던 구본창은 일본 잡지에 실린 백자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고, 백자의 아름다움을 렌즈에 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다. 이것이 2004년에서 2008년에 걸쳐 제작한 ‘백자’ 시리즈의 본격적인 시발점이었다.
‘백자’ 시리즈를 위해 구본창은 세계 곳곳의 박물관을 직접 답사하며 조선의 순백자를 탐구했고, 박물관의 전시실이나 도록에서는 볼 수 없는 또 다른 백자의 미를 표출하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작품의 초기에는 사진이라는 현대적이고 기계적인 매체와 백자가 지닌 고전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 사이의 간극이 좀처럼 메워지지 않아 큰 고심을 했다고 한다. 2년 남짓 작업을 진행한 후 그가 얻은 답은, 백자의 외형보다는 그것이 간직한 깊고 단아한 내면의 감성을 파고드는 것이었다. 이는 화려한 장식보다는 백자의 본질에 충실하고자 했던 우리의 선조들이 고민하고 추구했던 바와 정확히 맞물린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그를 통해 다시 탄생한 백자들은 기계적인 ‘증명 사진’들과는 확실히 구분되는, 마치 인물들의 특정한 매력을 강조하여 찍은 생명력 넘치는 초상화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는 시리즈에 ‘마음을 위한 그릇’이라는 부제를 붙이기도 했다.
<순수한 아름다움: 한국의 백자와 구본창 사진전>은 ‘백자’라는 공통 주제로 작품의 매체나 제작 시기를 뛰어넘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미국 내 다른 소장가들로부터 대여한 16점의 백자들 중에는 15세기의 백자병, 18세기의 달항아리, 그리고 19세기의 무릎 연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순백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구본창의 사진 20점은 그의 ‘백자’ 시리즈에서 엄선한 정수라고 할 수 있다. 각각 조도를 달리하여 찍은 여섯 점의 달항아리(작품명: ‘월출 II’)는 달이 떠서 지기까지를 형상화한 시적인 작품이고, 연한 분홍색 톤으로 인화된 대형 컬러 이미지들은 관객들을 고요하게 압도한다. 이 모든 작품들이 한 공간에 어우러 져 사진과 도자기, 고전과 현대 사이를 넘나드는 한국 순백자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