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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교육자들, 한국을 배우기 위해 한자리에 모이다

최근 나는 한국에서 실시한 미국 교육자 한국학 워크숍에 참가하고 돌아왔다. 이것은 완전한 탈바꿈을 경험하게 해준 여행이었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새벽 4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우리 교사들은 한국의 환대와 문화를 경험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생들로부터 따뜻한 환영을 받은 교사들은 대형 텔레비전 스크린 주위에 다시 모였는데, 그때 수십 명의 한국인들이 자국의 월드컵 대표팀과 나이지리아 대표팀의 시합을 응원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짜릿했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기자들이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에서 온 한국전 참전용사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반갑게도 나는 내가 자란 곳(뉴욕 로키포인트)에서 사는 참전용사를 한 명 만나기도 했다. 한국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국의 역사, 문화, 경제에 관한 강연과 답사
우리의 인솔자인 최영진 코리아소사이어티 선생님과 함께 하루 동안 관광을 한 후(우리는 최 선생님이 자랐던 동네를 걸어서 지나기도 했다) 고려대학교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한국학 워크숍은 한국에서 깊은 인상을 준 뛰어난 학자들을 확보하여 언어, 문화, 고대 및 근대사, 경제개발 등에 관한 강연을 실시했다. 강연 내내 미국 교사들은 추후 수업에 활용하게 될 정보와 통찰에 푹 빠졌다. 수업 이후에는 많은 답사를 통해 한국의 문화를 직접 경험했다.
답사 여행은 재미있고 유익했다. 우씨 일가를 방문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곳에서 우리는 전통 다도를 체험하고, 양반들의 전통 의복을 입어 보기도 했다. 양반 옷을 입고 한바탕 뽐낸 다음에는 김치전을 부쳤다. 재미도 있고 맛도 있어서, 앞으로 집에서 앤트 제미마(Aunt Jemima : 밀가루, 시럽 등과 같은 제품의 트레이드마크) 팬케이크를 굽는 일이 예전과는 다를 것 같다. 서울에서 경험한 것 중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일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 체험이었는지 이해를 돕자면, 우리 일행은 권리 포기 서류에 서명을 해야 했는데, 이는 이 경험이 잠재적으로 생사를 좌우할 수도 있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용감하게 서명을 한 뒤 우리는 팽팽한 긴장 속에서 그곳을 지키고 있는 남북한 경계 보초병들을 보았다. 나는 입도 다물지 못한 채 그곳에 서 있었다. 서울에서 며칠을 보낸 뒤 이번에는 한국의 문화사를 체험하러 남부 지방으로 떠났다.

남부 지방의 답사 여행과 그룹 시너지
남쪽으로 답사 여행을 떠난 우리 일행은 여행 기간 내내 정말 잘 지냈다. 청주 고인쇄 박물관에서는 교사들이 그룹을 지어 종이를 만들고 자신이 직접 쓴 것을 인쇄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는 서로를 격려하면서 독창적인 기술을 나눴고, 때로는 서로 웃기도 했다. 나는 직접 만든 사본을 묶으려고 했는데 어찌나 형편이 없었는지 박물관 직원 두 명의 도움을 받고서야 겨우 내 사본을 살릴 수 있었다. 우리 일행과 박물관 직원들은 그것 때문에 한참을 웃어댔다. 전체적으로 재미있는 체험이었으며, 한국이 구텐베르크보다 훨씬 앞서서 금속 문자를 처음으로 발명한 나라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놀라운 경험이었다.
마크 피터슨 교수의 동반으로 남쪽 지방 여행은 더욱 학술적이고 경험적인 답사가 되었다. 피터슨 교수의 지식과 개인적 일화를 통해 한국의 먼과거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이 여행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개인적으로 가장 경외심이 들었던 것을 꼽는다면 현대 조선소를 방문한 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건선거(드라이독)에서 건조되고 있는 화물선을 바라보며 나는 너무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 그것은 활기찬 한국 경제의 훌륭한 기술과 세계 산업에서 선두 주자의 위치를 지닌 한국의 위상을 드러내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오자 한국 체험이 이제 곧 끝나간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 동안 우리는 더 많은 곳을 방문하고 김치의 맛에 탐닉했다. 이런 경험을 올가을 학생들과 함께 나눌 생각을 하니 너무 기쁘다. 이렇게 기억에 남는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한국국제교류재단에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