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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노사정 협약에 관한 이해와 한국이 나아갈 길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지난 9월 3일 제 28차 KF 포럼을 개최하였다. 이번 KF 포럼에는 네덜란드 전 총리인 윌렘 빔 콕(Willem Wim Kok) 클럽 마드리드 회장의 강연이 펼쳐져 그의 고견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마련되었다.



빔 콕 전 총리는 노동조합 운동 지도자로 출발하여, 노사정 협약을 통해 네덜란드 경제의 부활을 이끈 공적으로 총리까지 지낸 대단한 업적과 경력의 소유자다. 이번에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좋은 기회를 마련하여, 그 생생한 스토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효율성과 통합,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노력
빔 콕 전 총리는 네덜란드 모델의 핵심은 경제적 효율성과 사회적 통합(social inclusiveness)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즉, 사회적 통합과 연대는 모두가 중시하는 가치이나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면 지속 불가능하기에 효율성을 같이 추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함께 가기가 어려운 것으로, 이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크게 보면 북구 유럽의 특성이다.
빔 콕 전 총리는 이 어려운 과제를 달성하는 것은 1) 지식기반 경제의 추구, 2) 인적자본 제고에 기초한 다이내믹하고 유연한 노동시장, 3) 연대성과 개인의 책임 간 균형을 추구하는 연금제도, 4) 환경적 지속 가능성과 에너지 효율성의 추구라는 네 가지 구성 요소에 달려 있다고 했다. 빔 콕 전 총리는, 네덜란드에서 이런 어려운 타협과 조화를 이끌어내게 된 데에는 사실 1980년대 초반 경제 위기 상황이라는 급박한 사정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노사정 간에 탈출구를 모색하는 과정이 이루어졌다는 점 등 그 역사적 배경도 아울러 설명하였다.
효율성과 통합의 조화는 무척 어려운 것으로, 실제로 1980년대 초반에 노조로부터 산업 경쟁력을 갉아 먹는 임금 상승에 대한 양보를 이끌어내는 것이 참 어려웠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빔 콕 전 총리는 이 과정에서 사용자 측이 노동자 교육 훈련에 대한 투자, 청년 일자리 제공, 근로 시간 단축과 일자리 공유 등으로 보답했고, 서로 간에 신뢰가 형성되어 이런 양보를 이끌어내는 것이 가능했으며 이것이 정부 주도라기보다는 노사 양자의 주도로 시작되었음을 강조했다. 이런 부분은 한국 사회에 이를 도입하고자 할 때 불가능하지는 않으나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국에 맞는 모델을 스스로 찾고 실현하는 것
빔 콕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란 개념도 강조했는데, 이에 대해 필자는 “이 개념은 원래 덴마크의 황금삼각형 모델의 핵심 개념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렇다면 네덜란드와 덴마크 모델의 차이는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그의 대답은 덴마크 모델은 고용자에 대한 보호가 네덜란드보다 약하고(즉, 해고가 더 쉽고), 반면에 실업자에 대한 보호가 더 강하다고 답했다. 이렇게 볼 때 결국 노사정 모델에 대한 단일한 정답은 없으며, 각국은 자국에 맞는 모델을 스스로 찾아가야 하는 것임을 시사한다.
현재 한국의 고용 보호 수준은 OECD 평균보다 약간 높은 반면, 실업 보호 수준은 미국 등과 함께 최하위 수준이다. 이는 한국이 고용 보호를 줄여 유연성을 높이되, 실업 보호를 늘려야 함을 시사한다. 현재 유연성에 대한 저항은 실업에 대한 보호가 너무 빈약하기 때문인데, 이것 없이 무조건 유연성을 높이는 것은 곤란하다. 사실 전체 한국 노동자의 80%는 이미 유연한 노동시장 안에 놓여 있다.
실업 보호 및 비정규직 보호 정책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비정규직의 4대 보험 가입률을 높이는 것이다. 많은 노동자들이 비용 때문에 가입을 못하고 있는데, 4대 보험 가입비에 대한 정부 보조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경제 변화의 추세는 고임금이든 저임금이든 다양한 비정규 형태의 근로자가 많아지는 것이며, 이들에게도 적절한 사회보험만 있다면 무조건 정규직화를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부는 임기 내 비정규직 4대 보험 가입률 제고를 내걸어 부자 정부의 오명을 벗고, 오래 갈 수 있는 민간 주도형 일자리 창출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다음으로 더 중요한 점은 고용 보호 수준이 높고 실업 보호 수준이 낮은 국가라 하더라도 기업들의 경쟁 및 혁신 능력에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같은 유형이라도 기업 특수적 숙련이 형성되지 못하고 교육 훈련도 미약할 경우, 기술 기능직과 숙련 기능직의 숙련 융합이 차단되고 학습형 작업 조직 형성에 실패하여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지금 한국 경제가 이런 상황이다. 중소기업들이 일자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능력이 약하여 실업과 비정규직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노동시장 및 보호 제도상의 외면적 특징만 도입하려 하고, 그 기저에 있는 숙련 형성 및 여러 학습 제도에 대해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