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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적극적인 다분야, 다학제적인 교류가 필요합니다”

모든 분야가 거미줄처럼 긴밀하게 연결된 현대 세계에서 ‘상호 교류’란 어떤 의지나 목적을 갖고 추진하기엔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단어가 아닐까? 자크 르그랑(Jaques Legerand) 총장은 그러나 ‘그렇지 않다’라고 말한다. 그는 아직도 수없이 많은 분야에서 교류 확대를 위한 쌍방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번이 두 번째 한국 방문입니다. 아시아 문화에 익숙한 총장님께 비친 한국의 이미지는 어떠했는지요?
서울 도심 한가운데 있는 경복궁에서 볼 수 있듯,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입니다. 한국의 전통문화가 중국 등 타 문화와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울 도심을 걸으면 각국에서 온 사람들의 다양한 언어가 들리는데, 그럼에도 평화롭고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도 특징이지요. 전통과 현대의 역동적인 공존이랄까요? 저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서도 여러 좋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한국처럼 처음부터 편안하게 공감하게 되는 곳은 없었습니다.

저명한 몽골학 권위자이자 극동학 연구도 해 오셨습니다. 동아시아 문화와 관련해 한국에서 어떤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짧은 시간에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오만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만, 몽골과 한국, 중국, 일본 등의 아시아 문화가 서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유럽에 비해 이들 국가들의 문화적 유대는 훨씬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40년 이상 몽골 관련 연구를 해왔고, 중국에서도 오랜 기간 공부를 했던 반면 한국을 경험한 시간은 극히 적기 때문에 유사성이나 차이점 같은 부분을 언급하기에는 조심스럽습니다. 문화라는 것은 국경처럼 이쪽저쪽으로 딱 나눌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샤머니즘과 불교, 유교적 배경 등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이들 국가의 과거와 근원을 파고들면 더 많은 연구 과제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어학 과정도 포함돼 있는 INALCO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외국어 및 문화 관련 학교이자 연구기관이라 들었습니다.
INALCO는 18세기에 설립한 학교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지만, 이미 공식 설립 이전부터 프랑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습니다. 1669년, 루이 14세 때 콜베르 장관 주도로 설립된 언어 교육 기관이 그 모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립 당시 오토만 제국과 프랑스 간의 정보 교환을 총괄하는 통・번역 전문 기관으로, 프랑스와 타국 간의 외교, 무역 및 문화 등 모든 교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어 문화 과정에는 현재 250여 명의 학생이 공부를 하고 있고 이 숫자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INALCO뿐만 아니라 프랑스 내 여러 교육 기관에서 한국 관련 공부를 하는 학생이 큰 폭으로 늘고 있습니다. INALCO의 임무는 이러한 수요에 적극적으로 부응을 하는 것입니다. 현재 INALCO에서는 93개 언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숫자를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전 세계에 있는 6,500개의 언어 중에 93개일 뿐이라는 시각에서 보면 발전과 확대의 여지가 충분합니다.



한국어 및 한국학을 공부하는 학생의 숫자도 놀랍고 그 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부분도 놀랍습니다. 증가의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학생들에게 일일이 물어보지 않는 이상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기는 힘이 들지만, 노동 시장의 수요와도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는 개인적인 생각이라 이런 추세에 대해 학문적으로 상관관계를 분석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학생들의 개인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이렇게 한국어 공부를 하는 학생들의 배경, 예컨대 전공이 무엇인지, 관심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한국어를 공부한 후 어떤 분야로 진출하는지 등에 대해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분명한 것은 한국 관련 학생 수 증가는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난 50년간 한국은 전쟁과 분단, 군사 쿠데타 등 너무 정치적인 이슈에 국한돼 외부에 알려진 면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문화와 예술 같은 비정치적 측면들이 부각되면서 프랑스 내에서 한국 연구의 필요성이 생기고 있지요. INALCO는 그러한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호 교류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INALCO와 한국국제교류재단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최신 기술들, 예컨대 원거리 화상 대화 같은 도구들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공동 프로젝트와 같은 적극적인 파트너십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교류 확대 노력도 계속돼야 하며, 나아가 한국-프랑스 간 공동 학위 제도 같은 것도 정착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교류가 INALCO와 한국의 학과 간 MOU를 체결하는 수준 정도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았다면, 앞으로의 교류는 언어와 문화 영역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학이나 과학 등의 전 영역으로 지평을 넓혀야 합니다. 다분야, 다학제적인 교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한국국제교류재단과 같은 글로벌한 비전을 가진 기관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합니다.

보다 포괄적이고 깊은 수준의 교류는 ‘볼로냐 프로세스(Bologna Process)’와도 연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유럽 국가들의 고등 교육 체계를 큰 틀에서 단일화하는 이 프로세스는 어디까지 왔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궁금합니다.
볼로냐 프로세스를 유럽의 공동 프로젝트라고 흔히들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이 프로세스의 취지를 너무 좁게 제한하는 것입니다. 볼로냐 프로젝트가 포함하는 범주는 생각보다 훨씬 넓습니다. 이 프로세스를 (유럽 대학들을 모아 덩치를 키워 유럽 외 대학과 경쟁하는 식의) ‘경쟁력 향상’과 관련해 설명하는 것은 잘못된 방법이라는 게 제 지론입니다. 저는 경쟁력보다는 ‘매력도’란 말로 이 프로세스를 설명하고 싶습니다. 이 일이 대학 랭킹과 관련해 진행되는 게 아니라 교육의 질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나무보다는 숲을 보는 의미에서 이 프로세스를 발전시켜 나가고 싶고, 그 과정에서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이 프로세스에 어떤 콘텐츠를 넣고 어떤 통일된 학위 과정을 수립해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가느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