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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한·미 관계

주한미군 재배치, 북핵문제, 이라크 파병, 환율조정, 양자간 투자협정(BIT) 타결 지연 등 정치·경제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한국과 미국 간의 현안으로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월 21일과 22일 이틀 동안 한·미 21세기위원회가 워싱턴에서 개최되었다. 한국에서는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장을 위원장으로 20여 명의 대표단이 참석하였고, 미국 측에서는 월포위츠(P. Wolfowitz) 미 국방부 차관, 둘리(C. Dooley) 상원위원 등 30여 명이 참여하였다. 참석자들은 양국의 정치, 군사·안보, 경제·통상과 관련된 관심사에 대하여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였다. 양측 모두 관련분야 전문가 및 정책담당자를 대거 참가시켜 민감한 현안들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의 장이 되었다.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정책방향 설정과 미국 내 여론형성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 측 인사들과 현안들을 토의하고 건설적인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것은 양국 관계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되었다. 필자는 이번 회의에 참석하면서 미국 측 인사들이 우리나라와 관련된 정치·군사·경제적 문제들을 폭넓게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의 견해가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할 때, 양국의 전문가 사이에서 서로 이해를 넓히는 이와 같은 회의는 보다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안보문제와 경제논리
일반적인 국제회의의 경우 정치나 안보 분야는 경제 및 통상 분야와 별도로 개최되고 있어, 정치와 경제에 관한 논의가 접목되는 회의를 별로 본 적이 없는 필자는 정치·안보적 관심사가 경제논리와 맞물려 돌아가는 현실을 이번 회의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우리 정부는 이라크 파병에 대해 환영과 지지의 입장을 보였고, 이를 계기로 양국간 군사 및 안보적 협력은 물론, 양국간 경제협력도 강화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라크 파병으로 중동지역 정세가 안정되면 석유의 대부분을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에도 도움이 되고, 양국간 군사혈맹의 재확인을 통해 한반도의 안정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미국기업의 한국 진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논리이다.

한편, 최근 미 행정부가 제기한 달러 환율조정과 관련하여, 미국 측은 기본적으로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상을 겨냥한 것이지 원화 환율을 직접 목표로 한 것이 아님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그동안 국내에서 제기되었던 논란을 해소시켜 주었다. 또한, 양측은 스크린쿼터에 대한 상호 양보로 조기에 BIT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경제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에 입장을 같이하였다.

‘자유무역협정’의 같은 목적, 다른 길
지난 몇 년 사이 확대 및 심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하여, 경제관계가 긴밀하고, 상호 보완성이 큰 양국은 FTA를 추진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 공감했지만, 그 추진 시기와 내용에 대해서는 입장을 달리하였다. 미국 측은 호주, 태국과의 FTA가 우선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우리나라와의 FTA는 본격적으로 검토되지 않았음을 밝히면서, 농업이 자유화 대상으로 포함되어야 하고, BIT 협정이 체결된 이후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기하였다. 이에 한국은 FTA를 경제적인 논리로만 평가하기보다는 전략적·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이런 입장에서 보면 현재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는 동북아 및 동아시아 경제통합에서 미국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와의 FTA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또한, 농업과 스크린쿼터가 양국간 FTA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으나, FTA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미래를 위한 준비가 필요
하루와 반나절 일정으로 이루어진 이번 회의에서 논의된 주제는 양국이 모두 관심있던 것들로, 회의에서 오간 건설적인 의견이 양측의 정책결정에 적지 않은 참고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의사표시에 한계가 있는 공개회의보다는 비공개회의를 통해 서로의 관심사항을 솔직하게 교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양국 정책당국자들 상호간 의사소통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전통적인 혈맹이고, 가장 중요한 경제협력 파트너인 미국과의 관계는 우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므로 우리 정부는 대미관계의 분야별 전문가 양성을 통해 미국의 정책방향을 조기에 분석하고, 대응방향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