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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박물관 한국실 개관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이름이나 사진으로만 익숙한 전세계 문화유산들을 무수히 만나게 되어 한편으로는 반갑고, 한편으로는 놀라웠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가 되었다는 로제타석(Rosetta Stone), 피라미드 속에서 발견된 이집트 역대 왕조들의 각종 유물과 미라,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운 돌 조각품들, 놀라우리 만큼 정교하고 화려한 중국과 일본의 채색 도자기와 회화작품들…. 관람객들은 인류의 문화와 역사, 예술을 읽는 즐거움에 푹 빠져들게 된다. 이제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온 맑고 투명한 빛깔의 조선 달항아리와 정교하면서도 소박한 그림들, 그리고 한국적 생활정서가 담겨있는 아름다운 전통가옥을 언제든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11월 8일(수) 오후 6시, 영국박물관에서는 영국과 한국의 각계인사 400여명이 함께 한 가운데 한국미술독립전시실(영문명칭: Korea Foundation Gallery)의 개관을 축하하는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한국전시실에 대한 영국측 관심을 반영하듯 영국 왕실을 대표해 Richard Alexander Duke of Gl-oucester, Cris Smith 문화장관, Peter Mandelson 북아일랜드 장관 등이 참석했고, 한국측에서는 최성홍 주영대사와 이인호 재단이사장을 포함한 문화예술계인사 20여명이 참석했다. BBC, AP 등 현지 언론과 국내 주요 방송사, 신문사들도 현지 취재에 참여해 세계 3대 박물관 가운데 하나인 영국박물관의 한국실 설치가 가지는 의미를 새삼 느끼게 해 주었다. 특히, 이 날 리셉션과 만찬에는 런던의 In- ternational Monetary Organization- (IMO) 북한 대표부의 박종일 대표와 정순원 부대표가 참석해 끝까지 자리를 지켜 최근 발전하고 있는 남북한 화해 분위기를 대외적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Korea Foundation Gallery는 관람객의 접근성이 뛰어난 에드워드 7세관 3층에 자리잡고 있다. 구미유럽 박물관의 한국전시실 중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120평 규모의 전시실에 구석기, 신석기 선사유물에서부터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조선시대와 현대에 이르는 작품 250여 점이 전시되어 한국의 문화와 예술의 흐름을 파노라마로 보여주고 있다. 전시는 전시실 안쪽에 자리잡은 한옥건축물인 사랑방(韓英室)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 운현궁의 노안당을 모델로 해서 본격적인 건축적 개념을 도입해 한국전시실 안에 지어진 사랑방은 방 2칸과 마루 1칸의 공간에 단아하고 기품 있는 조선시대 선비의 생활공간을 재현해 한국인의 생활문화와 건축문화의 단면을 소개한다. 이러한 건축물이 전시실 안에 설치되기는 영국박물관에서도 처음으로 사랑방은 지난 6월과 7월 13명의 국내 장인들의 런던 현지 공사 때부터 이미 영국 언론과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었었다.
영국박물관이 전시실 별로 독립적인 디자인을 허용하는 데 소극적 정책을 견지해왔다는 사실을 고려해 본다면 한국실을 한국적 공간으로 구성하기 위한 박물관의 노력은 매우 이례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박물관의 한국실 담당 디자이너를 한국에 파견하여 사랑방 건축을 위한 준비사항을 점검하고 한국적 분위기와 이미지를 학습하게 했고, 이는 전시실의 우물 마루와 한국적인 창틀, 그리고 전시 패널 디자인 등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특히 흰색으로 마무리된 전시실 내벽은 전시실 공간을 분할하고 있는 많은 내부기둥에도 불구하고 한국실을 매우 밝고 환한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결과적으로 박물관 내 타 전시실과의 연결성을 유지하면서도 한국 미술품 감상에 최적의 공간으로 한국실을 연출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실을 무엇보다 한국적으로 만드는 것은 역시 전시품이다. 개관전시에 선보인 작품들 가운데는 ’97년부터 ’99년까지 있었던 영국박물관의 “Arts of Korea”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 이미 공개되었던 작품들도 있다. 개관전시에 나온 주요 작품들로는 고려시대 청자진사당초문완(靑瓷辰砂唐草紋 ), 화엄경변상도(華嚴經變相圖), 나전국화당초문경함(螺鈿菊花唐草紋敬含), 최근 경매에서 구입한 조선시대 백자 달항아리 등이 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영국박물관 소장 유물 이외에도 영국 내 타 기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도 일부 대여 전시되고 있다. 그 가운데 영국도서관(British Library) 소장품인 기사진표리진찬의궤(己巳進表裏進饌儀軌)는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대례식 장면을 묘사한 의궤로, 귀중한 유일본으로 평가되고 있다. 캠브리지대학 Whipple Museum 소장품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는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Kogler의 대성표(大星表)를 가지고 만든 8폭 병풍 형태의 천문도로서 크기나 제작기법상 보물급의 귀중한 유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도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대여한 구석기, 신석기, 삼국시대 고고유물, 장신구와 석조여래좌상 등 2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지난 8년여 준비기간 동안 실로 많은 국내 전문가와 관계기관에서 영국박물관의 한국실 설치를 위해 직접 간접으로 조언과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측의 다양한 요구와 조언을 마다하지 않은 영국박물관의 긍정적 자세가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실이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사랑방 기획 및 전시를 포함해 한국실 설치 전반에 대해 수 년간 아낌없는 조언을 해 주신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님과 사랑방 건축을 맡아 아름다운 한옥을 지어주신 신영훈 한옥연구원 원장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사랑방의 전시는 정양모 관장님의 지도하에 여러 작가분들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사랑방의 목가구 전시품 재현을 위해 생업을 뒤로하고 작업에 진력해 주신 강화의 손덕균 선생님과 화로 제작자인 김용철 선생님, 등경 제작자 이종범 선생님, 죽제품 제작자 윤병훈 선생님, 전통 색지를 재현해 주신 이병찬 선생님께 감사 드린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 전통공예를 묵묵히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이들 훌륭한 작가들이 선뜻 작품을 내주셨기에 사랑방과 한국실이 더욱 빛나는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수년간 한국실 준비를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영국박물관의 한국담당 큐레이터 Jane Portal씨에게 가장 큰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영국에는 런던의 Victoria & Albert Mu- seum에 40평 규모의 한국실이 있고, 캠브리지대학의 Fitzwilliam Museum, 스코틀랜드국립박물관 등에 약간의 한국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영국 내에서도 3천여 점의 가장 많은 한국유물을 소장하고 있고, 지난 세기 우리와 영국과의 중요한 문화적 연결고리를 제공해온 영국박물관에 오늘과 같은 영구 한국실이 개관하게 된 것은 1883년 한·영 우호통상조약 체결이후 양국이 발전시켜온 우호 친선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과거 어느 때 보다도 두 나라의 문화예술 교류가 활발한 요즘이다. Korea Foundation Gallery가 향후에 보다 활발한 문화와 예술 교류의 구심점으로 그 역할을 다해 줄 것을 기대해 본다.

영국에 가실 계획이십니까? 그럼 영국박물관의 Korea Foundation Gallery를 꼭 들러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