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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견문록

중동, 아프리카라! 23일 동안 다섯 국가를 34년 동안 탄 비행거리를 다 합한 것 보다 더 먼 거리를 한번에…. 내 생애에 큰 획을 긋는다고 할 만한 사건이다. 출장가는 것이 결정되고 나서 사실 걱정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었다. 언어적 불편함도 문제이겠거니와 31명의 사람들과 단체행동을 해야 하며 하물며 뒷줄에 서서 따라 다니는 것이 아니고 끌고 가야 할 사람중의 하나가 되어버린 나! 장기간의 여행 준비로 무지막지하게 큰 가방 외에 어깨 위에 툭 하니 올려진 중압감이라는 또 하나의 짐을 들며 어릴 때부터 피리나 불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다. 출발 전에 중동사태나 KAL기 조종사 파업 등으로 향후 여행 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고, 아니나 다를까 허용 중량을 초과한 항공 화물료로 3,000불에 가까운 거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나의 출장은 시작되었다.
일본 동경을 거쳐 다가서는 첫 방문지는 이란! 팔레비 왕조, 종교혁명 그리고 이란-이라크 전쟁, 악마의 시를 쓴 살먼 루시디에 대한 살해 위협 등 실로 표피적인 상식만 가지고 있었고, 생소한 것은 낯선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한국적 속성에 따라 내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오랜 비행으로 지친 우리들의 마음을 아는지 공항에 도착하니 대사관 직원들이 마중 나와 최단 시간 내에 호텔로 인도했다.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가방하나가 없어져 이리저리 분주히 움직이다 보니 설레는 이국땅 첫날밤은 어느새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첫걸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연자들도 같은 마음인지 이란공연에 무척이나 신경을 쓰는 듯 했다(사실 여러 공연을 보고 난 후에야 느낀 사실이다). 무대 스탭들은 극장무대와 조명, 사운드에 만전의 준비를 다하는 모습이었고 현지 통역자들도 스탭들 간의 언어소통 역할을 훌룡히 해 냈다.
극장 로비에는 한국관련 사진전과 대형 TV로 한국의 이미지를 쏟아내면서 공연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었다. 무슨 공연이든 관객이 많이 오면 더 이상 신나는 일이 없다고 한다. 30분전에 벌써 관객들이 만원을 이뤘고 공연이 시작된 후에도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이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모습은 앞으로의 중동공연의 성공을 예감하게 했다. 조명과 함께 어둠이 걷히면서 등장한 빨간색의 화려한 의상은 회색, 검정, 흰색등만 보아온 이란 사람들 눈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 같다. 수제천으로 시작한 1시간 20분간의 공연은 속되게 표현하면 대박이었다. 1시간 20분간 계속되는 공연에 공연자들과 호흡을 같이 하는 관객들의 모습은 그들이 바로 찬연한 페르시아 문화의 후예들임을 실감케 하였다. 공연 후 만찬행사에서 한국 공연단이 실로 20여 년 만에 방문했으며 양국간의 교류가 나날이 증가해 조만간 직항로도 생긴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이란을 벗어나려 하는데 공연장비 화물 때문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화물운반 시스템이 불안전하여 직접 가지고 다니기로 했는데, 그리 크지 않는 비행기인 탓에 항공 책임자는 절대 “No.” 하지만 설득과 읍소, 때로는 전략상 화까지 내가면서 기어코 성사를 시켰다. 아직 인간적인 면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별별 인간들이 많아서 ‘인간적’이라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해석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단언컨대 여기는 좋은 뜻으로 쓴 것임을 밝혀둔다. 어물쩡 중량초과 화물비용 문제도 넘기고 곧바로 U.A.E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중동의 무역 허브항 두바이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도착 후 밖에 나가보니 뜨거운 사막의 열기가 목구멍으로 스멀스멀 기어 들어왔다. U.A.E는 197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7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연합국이다. 이중 두바이는 아라비아만의 가장 큰 상업 도시일 뿐만 아니라 쇼핑과 관광 도시도 겸하고 있어 중동국가 내에서는 자유로운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곳이다. 두바이를 뒤로 하고 첫 공연지인 아부다비로 몸을 옮겼다. U.A.E의 수장국으로 대통령직을 맡고 있는 아부다비는 국토의 87%, 석유의 83%를 점유한 연방의 행정중심지이다. 전원도시 형태로 무척 살기 좋은 곳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60% 이상이 외지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한국 사람들도 교민과 상사주재원을 포함하여 제법 많은 숫자가 있었다. 사막 한복판에 길게 늘어선 나무들 그리고 드넓은 잔디사이로 미학의 극치를 달리는 고층빌딩들….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공연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경제중심적 관점을 가진 그들의 모습이 문화에 눈을 돌릴 만한 여유가 없는 것으로 보여 씁쓸했다. 더군다나 큰 박람회가 공연날짜와 겹치는 바람에 더욱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즈음에 나는 공연순서 3번째에 등장하는 가야금 산조 (제목: 침향무)에 흠뻑 빠져들고 있었다. 침향무는 신라시대의 불교유적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황병기씨의 창작곡인데 선율이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며 나를 환상적인 분위기로 이끌어 줬다.
중동 사태로 오만공연이 취소되어 시간이 남은 관계로 오매불망 기다려온 사막투어를 하게 되었다. 사막투어 중에서 인상에 남는 기억은 식사 후 주위의 불을 모두 끄고 사막 한가운데 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일이었다. 하늘의 별들이 비처럼 내 눈으로 쏟아져 내려오면서 괜히 눈물이 날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슨 거창한 이유 없이도 눈물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분도 시간이 나시면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서 직접 체험해 보기 바란다.
다음 도착지는 쿠웨이트. 쿠웨이트는 대사관 직원 모든 분들이 홍보에 나서 주셔서 작은 나라에서 두 번씩이나 공연을 하게되어 불안해하는 우리들의 우려를 완전히 불식 시켜 주었다. 두 번째 공연에는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 온 듯 하였다. 입소문이 나서 그렇기도 하고 또 현지교민들중 고국생각에, 멀리 공연을 하러 돌아다니는 우리들의 사기진작상 두 번 연속 참석해 주신 분도 계셨다.
다음 공연지인 요르단은 지정학적 환경이나 자원이 빈약한 것이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수원 탐색 공사를 하다가 석유가 나오면 속상해 한다는 주위 중동국가와는 달리 석유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바로 요르단인데 돈이 없으면 몸이 바빠진다고 타 국가 사람들보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이 인상에 남았다. 팔레스타인, 이스라엘과 인접 기타 강대국간의 분쟁이 끊일 날이 없는 와중에도 국왕의 탁월한 외교력 덕으로 나름대로의 외교적 입지를 누리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향후 우리 외교가 배워야 할 점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동사태로 인해 우리가 제일 우려한 지역이었으나 의외로 조용한데 놀랐고 요르단 정부측도 분쟁뉴스에 매일 요르단 이름이 들어가는 탓에 관광국가로 거듭나려는 정부의 노력을 허사로 만들어 버린다고 개탄하였다. 요르단은 성경역사상 중요 유적지가 많이 분포되어 있다. 앞으로 한국 성지순례자들의 발길이 잦을 것 같다. 한국산 자동차가 30퍼센트 정도 점유하고 있었고 한국상사 직원들도 인접해 있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한국상품을 알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분위기가 있는 이 곳에서 한국의 문화공연이 막을 올렸으니 시너지 효과가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물과 정악, 정과 동이 모인 공연을 하다보니 너무 양극에 놓인 음악을 뭉쳐 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악은 일반적으로 관객과 거리를 두고 감상하는 서양 음악관습에 치우친 형식의 음악이라면 사물은 관중과 섞여 무대와 관객들을 한판으로 만들어서 즐기는 마당놀이다. 중동지역 정서를 감안하여 만든 프로그램이겠지만 피날레는 시끌벅적해야 한다는 한국인들의 정서도 한몫 들어간 듯 하다. 중동지역은 어느 곳이나 파라볼라가 세워져 있고 서구의 문물이 여과 없이 몰려 들어오고 있었다. 종교 중에서 가장 금욕적이라 할 수 있는 이슬람도 이러한 추세라면 차츰차츰 무너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종착지 모로코. 카사블랑카로 유명한 곳. 와서 알게 된 사실은 영화 카사블랑카는 여기서 찍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웬지 ‘모로코’, ‘카사블랑카’가 주는 느낌은 부드럽고 녹녹하고 감미롭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곳은 중동이 아닌 북아프리카다. 자연환경은 말이 필요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해변과 유럽풍 건물을 바라보며 문득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우가 이곳에 대단위 공장을 세우려다 IMF로 취소가 되어 한동안 대사관측이 이미지 회복을 위해 고생을 많이 했었고 불철주야 노력한 끝에 이제는 많이 극복되었다고 한다. 한국공연의 불모지인 중동 지역과는 달리 얼마 전에 한국에서 무용단이 들어와서 박수 갈채를 받은 적이 있어서 한국문화에 대한 호기심의 열기는 식지 않은 시점이었고 공연성과는 매우 좋았다. 모로코는 비록 경제적 수준은 낮지만 곳곳에 미술 전시관들이 있고 유명한 문학가들을 많이 배출한 나라답게 문화에 대한 사랑은 선진국 어느 국가 못지 않은 것 같았다. 2번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화는 경험의 축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같은 음악을 스무 번 정도 들어보니 그 음악이 내게로 들어옴을 느꼈다. 다른 나라 문화 또한 마찬가지리라. 아마도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무 번에 익숙해지지는 않고 아마 30번 50번 백 번 정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가 익숙해지면 다른 것이 쉽게 이해되는 것이 세상사가 아니던가. 문화국민이 되기 위해서는 경험 쌓기에 들어가는 시간투자, 이러한 시간투자에 주저하지 않은 넉넉한 마음자세가 필요할 텐데…. 힘겹게 돌아가고 있는 우리사회에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