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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시대의 파수꾼

교보문고 입구의 역대 노벨상 수상자 사진코너에 걸려있던 빈 액자가 드디어 주인을 찾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일생에 걸쳐 독재에 항거하고, 한반도에서 남북한의 긴장 완화에 노력한 공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되어 노벨상 수상자 반열에 오른 것이다. 그러나, 이 상은 분명 지난 50년간 독재체제에 용감히 맞서 남한의 민주화에 공헌한 모든 개인 및 단체들―노동자들, 기독교단체, 인권단체, 반정부인사들, 지식인들―에게 수여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원외의 정치 세력가운데서도, 대학생들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이상과 헌신, 그리고 한국사회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말미암아 가장 현저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전후의 한국 학생운동을 연구하는 박사과정생으로서 본인은 이 같은 학생운동이 한국 사회에 가져온 변화들로 인해 많은 감명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학생들의 가두시위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많은 학생들이 대중매체, 오락 등 비정치적 활동으로 관심을 돌린 것 같다. 이 같은 현상은 남한사회가 미국이나 대다수 유럽국가들 수준의 경제적 정치적 성숙에 이르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따라서 학생들의 사회비판적 기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실, 서양의 여러 선진 국가들에서 학생운동은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이들 서구 선진국가들에서도 아직 사형제도 (미국 텍사스주), 극빈자들을 위한 의료서비스제공 거부, 절대빈곤 등의 인권침해 사태는 일상적인 상황이다. 또한,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플로리다주의 투표용지 검표를 둘러 싼 양 후보의 법정대립과 극히 저조한 투표율은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왜 서구 대학들은 이러한 심각한 현상들에 대해 무관심한 것일까? 왜 학생들은 이 같은 문제점의 해결을 주장하는 시위운동에 가담하거나, 그렇게까지는 못하더라도 옳고 그름을 가리는 논쟁조차도 하지 않는 걸까? 이는 물론 오늘날의 풍요와 소비의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를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전체 사회의 복지나 안녕보다는 개개인의 물질적 안위를 더 중요시하게끔 몰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들도 똑같은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 같다. 요즘 대학에서 많은 학생들이 문·사·철 등 인문사회과학을 멀리 하고, 경영학, 컴퓨터 공학 등 취업전망이 밝고 고소득을 보장하는 학과목에만 몰리고 있다. 과거 한국 학생운동의 리더들은 상당수가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었다. 한국사회에는 아직까지도 국가보안법, 한미행정협정, 정치범, 환경 등의 해결해야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서구에서처럼 한국의 대학도 그 정체성이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의 기본 목표는 학생들로 하여금 보편적인 이념과 가치에 정통하게 하여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데 있었다. 대학생들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는 개념과 현상을 이해하고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련하였다. 그러나 요즘의 대학은 학생들이 열린 시야를 통해 다양한 현상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정신의 지평을 넓혀 주는 대학생활의 요체를 외면하고 특정 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한 특정 기술훈련에만 역점을 두고 있다. 요즘 학생들이 1980년대 혹은 그 이전의 선배들보다 학업에 성실하다고 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학생들은 취업에 도움이 될법한 기술―영어회화 숙달 등의―습득으로 그 노력의 방향이 바뀌고 있다.
학생들은 독재주의 체제하에서 정부와, 국민들에게서 기본적인 인권을 앗아간 제도에 맞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끊임없이 유신체제를 비판했고, 1970년대의 대규모 시위는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야기했다. 전두환 대통령으로 하여금 민주적 선거를 받아들이게 한 것 역시 그들의 시위였다.
학생들은 그들에게 닥칠지 모를 커다란 위험을 개의치 않고 정부와 정책을 비판하고, 노조결성을 지원하고, 거리에서 시위를 할 수 있는 물리적인 세력을 대표하였다.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책임을 통감한 집단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전제군주에게 정책을 거침없이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던 과거 유학자들의 후예로 스스로를 간주하고, 그처럼 독재정권과 그들의 잔학한 수단에 저항했는지도 모르겠다. 더욱이 그들은 끊임없이 지난 정권에 의해 자행된 폭력과 부정에 대해 대중을 일깨웠다. 박 대통령과 전 대통령 집권 당시 혹독한 언론 탄압 하에서 이와 같은 학생들의 민중 계몽은 정부의 편파적 정보에 대응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오늘날 한국인은 더 많은 기본 권리를 누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판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한국인들은 한국의 국제화와 세계경제의 통합화로 말미암아 새로운 형태의 문제, 즉 실업·빈부의 격차 심화·개도국에 진출한 비양심적 한국 기업에 의해 자행되는 부정적 행태 등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그 어느 때 보다 더욱더 이러한 현상을 비판하고 정부와 국민들을 각성시켜야 한다. 물론 오늘날의 변화된 정치적 경제적 환경에서는 가두시위가 이러한 새로운 문제점들을 제기하는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다. 대신 인터넷과 같은 편리한 국제정보통신망을 통해 학생들은 서로 정보를 교환 할 수 있다. 또한 대학 외부의 시민단체나 NGO들과 연대할 수도 있다. 이렇게 시민단체와 연대하는 과정 속에서 학생들은 민주주의 발전을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학생들이 시대의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정치적 인식과 사회문제에 직접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이렇게 대학에서의 경험을 인류 보편적인 가치로 구현하는 것이야말로 학생들의 특권이자 의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