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든든한 지원자, 한국국제교류재단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매달 발행하는 뉴스레터에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매우 기뻤다. 나는 물론이고 나의 친한 친구와 동료들은 재단의 지속적인 비전과 지원, 관대함으로부터 직간접적인 혜택을 받았다. 박사논문에서도 분명히 밝혔듯이 나는 재단이 수많은 나의 후배와 학생들에게도 향후 한국학을 공부하는 데에 귀중한 지원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사실 내가 하버드대에서 박사 공부를 마치고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대학에서 한국학 교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재단이 내게 보내준 지속적인 지원 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한국학 분야의 차세대 및 기성 학생과 학자들을 키우겠다는 지속적이고 강한 신념이 한국국제교류재단과 다른 기관을 차별화시킨다고 믿는다. 내가 학계에서 경력을 쌓으면서 처음 지원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준 대학원생 장학금이었다. 종합시험을 통과하자 재단은 내가 서울에서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지급해주었다. 연구가 끝나고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뒤에는 논문집필 지원금을 받았는데 이것도 재단이 지원하는 것이었다.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나는 모교인 UC 버클리에서 박사 후 과정 장학금을 받았다. 놀랄 것도 없이 이것 역시 재단이 지원해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지원을 항상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장기간 체류하던 때, 그리고 한국학이라는 세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던 초기 시절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나는 교환학생으로 연세대에서 공부를 하면서 1년간 한국에서 생활했다. 어느 날, 당시 연세대 교수 겸 국제학부 부학장이었던 호러스 언더우드 교수의 연구실에 들렀는데 그는 내게 장래 계획을 물었다. 대학원에서 한국 문학을 공부할 계획이라고 하자 그는 경제적, 직업적으로 꽤 참담한 미래가 기다릴 것이라고 하면서 다소 직접적이고 솔직하게 나를 포기시키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현실적이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솔직함과 걱정을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재단의 비전과 지원이 없었다면, 나의 개인적 경력과 전반적인 한국학 분야에 대한 그의 우려는 (최소한 미국에서만큼은) 옳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 상태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학 분야는 그 어느 때보다도 탄탄하다. 언더우드 박사가 20년 전에 걱정했던 어두운 전망은 활기차고 번창하는 학계로 바뀌었다. 나의 동료 대부분은 유수 대학의 종신 교수직(tenure-track position)에 임명되었고, 나를 포함하여 몇몇은 한국 대학에서 환영을 받으며 새로운 한국학 브랜드를 가르치고 있다. 내가 ‘새로운 브랜드’ 라고 말한 이유는 한국 바깥의 다른 나라에서 교육받은 많은 학자들의 시각이 한국 내의 일부 표준화된 견해에 약간 비판적인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한국국제교류재단과 같은 단체로부터 돈을 받는 것이 학문 활동의 방향과 범위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여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고 확신할 수 있다. 나의 연구는 때로는 매우 비판적이었지만 절대로 이것이 재단의 지속적인 지원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내가 받은 것은 지원뿐이었으며 방향의 제시나 간섭을 받은 적이 결코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국국제교류재단이 내게 해준 것에 대해 개인적으로 감사 드리며 내 뒤에 올 후배들에게도 재단이 그 중요한 역할을 지속적으로 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