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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화합 그리고 눈치

한국에서는 이 나라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가치인 유교적인 화합을 이루기 위해서 남의 기분을 존중하는 게 필수적이라고들 종종 말한다. 사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조화롭고 평화지향적인 나라이다. 그렇다. 한국은 많은 전쟁도 겪었고 강력한 군사 주둔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침입을 받은 것은 항상 한국이었으며, 그 반대의 경우는 결코 없었다.
화합은 감정과 직결된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한국인들의 행동과 반응에는 객관적인 사고보다는 감정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는 화합이 실질적으로 거의 모든 것들 ─ 정직, 진실, 성취 등 ─ 보다 우선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고 느끼고 있다. 조화로운 관계를 발전시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정확하게 ‘읽고,’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이에 맞춰 조절할 줄 알아야 하며, 동시에 다른 모든 이들이 위협을 느끼지 않고 느긋하고 편안하며 행복할 수 있도록 자신의 기분을 감출 줄 알아야만 한다. 예를 들어, 아들이 아버지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아버지에게 “예, 옳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여행을 다녀와서 윗사람에게 작은 선물을 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여러가지 일 때문에 기분을 깨뜨리는 ─ 그래서 부정적인 반응을 야기하는 ─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는데, 대개는 한국의 예의범절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일어나는 것들이다. 이러한 예의범절 중 윗사람에게 예의바르게 인사하기, 제대로 된 존칭어 쓰기, 공식 직함으로 부르기, 윗사람은 윗사람으로, 아랫사람은 아랫사람으로 대하기, 적절한 선물하기 등과 같은 것은 서구사람들도 쉽게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들이다. 반면, 서구인들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예의범절도 있는데, 이런 것들은 서구의 관점에서 볼 때 역으로 효율적인 삶을 망가뜨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예로는 나쁜 소식을 감추는 일, 다른 사람이나 일에 대한 비판적인 언사(상대의 견해에 반대될 수 있는 것들)를 삼가는 일, 개인의 능력, 진실성이나 정직함을 비난하는 일, 저질러진 실수에 대해 침묵하는 일, 뭔가에 대해 거짓말하는 일 등이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생활에피소드
이러한 예의가 평온한 한국적 삶을 지탱해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에게 이런 종류의 화합은 힘들여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서구인에게 화합이란 집단의 공식의견에 따르고,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따라 행동하거나, 윗사람의 기대에 맞춰 사는 것이 아니다. 서구인들에게 화합은 합의를 뜻한다. 개방적이고 사실에 기초한 토론, 이상적으로는 아무런 개인 감정의 간섭 없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유지되는 토론을 통해 합의가 이루어진다. 서구인에게 합의에 기초한 결정은 ‘화합을 이끌어내는 것’과 같다. 때로 한국의 친구들과 어떤 주제를 놓고 토론할 때 나는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매우 직설적으로 나의 의견을 표현하며,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가끔은 나의 정직함과 직설적인 태도가 상대 한국인들의 속을 뒤집어놓기도 한다. 한국인은 불쾌해지고, 나는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는지 몰라 당황스러운 채 토론이 끝나기도 하는 것이다.
현대에 이르기 전까지 한국에서 논리는 비도덕적인 개념이자 금기였다. 오늘날에도 전형적인 한국인은 명백하고 적극적으로 논리를 펼치는 것에 질려버린다.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보편적인 원칙을 지침으로 삼는 사람은 냉정하고 계산적이며, 한국인의 정신에서 매우 중요시되는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자질을 잃은 사람으로 간주된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논리적인 사람은 일반적으로 건설적이라기보다 파괴적인 요인으로 여겨진다. 사실과 논리보다 인간적인 요인을 더 중요시하는 한국의 관습은 그런 것과 처음 맞닥뜨리게 되는 대부분의 서구인들을 흔히 당황하게 만든다.
일을 더욱 복잡하게 하는 것은 대부분의 서구 국가와 달리 한국에는 사람간의 행동방식을 결정하는 엄격한 위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특별한 업적이 있거나, 좋은 성격 등을 가진 사람을 존경하는 경향이 있다. 나에게 나이, 성별, 권위, 선배 등은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한국의 위계는 단순히 낯설고 이질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때로는 약간 모욕적인 기분이 들게도 하며, 나의 관점에서는 다소 비이성적인 상황에 처하게끔 하는 그런 개념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적으로건 사적으로건 여전히 다른 사람의 기분을 고려하고, 윗사람을 기쁘게 하려하고, 어떤 경우에라도 윗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한다.
따라서 외국인들은 일을 할 때, 심지어 사생활에서도 비효율적인 상황을 직면해야만 한다. 화합을 유지하기 위해 유쾌하지만은 않은 진실을 숨김으로써 시간을 허비하거나 이익을 놓친다는 것은 서구인에게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인들은 외국인들에게는 낯선 방법으로 유쾌하지 않은 진실을 알리기도 하는데, 여기서 우리는 한국인들이 진실을 바라보는 방식과 같은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한다. 많은 경우 한국에서 진실(서구인의 시각에서 볼 때)은 공개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는 행간을 잘 읽어야 하며, 다른 가능한 방법이 없을 때에는 입수하는 정보를 규칙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나와한국사람들 사이에 많은 오해가 일어나고 있다. 왜냐하면 아직도 나는 어떤 상황에서는 한국사람의 말을 믿을 수 있고, 또 어떤 때에는 믿을 수 없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놀 때는 물론 일할 때에 한국인들의 감정적이고 개인적인 특성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어떻게 자신들의 가치, 태도, 습관을 적응시키고 있을까? 나는 한국문화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선물을 주고 친구를 초대하는 것(이런 것들은 아주 좋은 전통이라고 생각한다)과 같이 간단한 예절에서부터 나의 태도를 바꾸려 하고, 윗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고, 토론할 때 상대가 나와는 약간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도 조용히 있는 것과 같이 정말로 하기 힘든 일까지 감수하면서 열심히 노력했다.

한국의 인본준의와 서구의 논리주의를 조합하여 한국생활 적응해야
그러나 어느 날 그런 모습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때로 한국의 문화가치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대립하는 것보다는 더 쉬운 일이지만, 한국문화에 완전하게 적응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에 가서는 외국인의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그래서 요즈음 나는 ‘눈치(다른 사람의 기분을 읽을 줄 아는 능력)’라는 문화적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것은 말 그대로 ‘눈으로 잰다’는 뜻으로, 나이, 배경, 사회적 지위 등이 다르고, 따라서 서로 다른 기분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협조적이고 매우 효율적으로 상호작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특히 중요하다. 하지만 결코 자기 자신에 대한 지각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어려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노력하고, 나쁜 소식을 윗사람에게 전해야 할 경우에는 아주 예의 바르게 시작하되 사실은 정확하게 전해지도록 해야 한다.
나는 한국사람들은 대개가 외국인이 외국인처럼 행동하는 것을 선호하며, 어떤 외국인도 결코 한국인이 될 수는 없으므로 너무 한국인과 비슷해지려고 하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고 들었다. 한국인들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렇게 태어난다. 그러므로 외국사람들은 외국사람처럼 행동하는 게 훨씬 낫다. 단, 한국문화와 한국인의 기분에 대해 사려 깊게 행동하고, 한국인과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 진가를 인정하는 것이 좋다. 때로는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좋을 때도 있다. 그 문화에 친숙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있다 해도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반응하고 이용할 수 있는 문화적 기술은 아직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즈음 한국의 문화와 사회가 많이 변하고 있기는 해도 화합, 분위기, 체면 세우기 등과 같은 것은 문화적 가치의 핵심으로 남을 것이며, 이런 것이 없다면 매사가 부드럽게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논리와 인본주의를 잘 조합하여 한국식과 서구식을 결합시킬 만큼 지각 있는 외국인들이라면 한국에서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

일상생활에서 한국인들의 행동과 반응에는 객관적인 사고보다는 감정적 요인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조화로운 관계를 발전시키고 유지하기 위해서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의 기분을 정확하게 ‘읽고,’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이에 맞춰 조절할 줄 알아야 하며, 동시에 다른 모든 이들이 위협을 느끼지 않고 느긋하고 편안하며 행복할 수 있도록 자신의 기분을 감출 줄 알아야만 한다. 서구인들에게 화합은 합의를 뜻한다. 개방적이고 사실에 기초한 토론, 이상적으로는 아무런 개인 감정의 간섭 없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유지되는 토론을 통해 합의가 이루어진다. 서구인에게 합의에 기초한 결정은 ‘화합을 이끌어 내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