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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난장, 리비아를 흔들다

리비아 혁명 40주년을 기념하고, 한국과 리비아의 우호 친선을 다지기 위한 문화 교류 행사로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 공연이 리비아에서 펼쳐졌다. 지난 11월 5일과 6일 이틀에 걸쳐 선보인 공연은 그 어느 공연보다 가슴을 졸인 파란만장한 무대였다.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은 한국국제교류재단, 주리비아 한국대사관 주최로 리비아 혁명 40주년을 기념하여 우호친선 공연을 펼쳤다. 리비아에서 동아건설의 리비아 대수로 공사와 왕성한 한국 기업의 활동으로 우리가 차지하는 입지는 꽤 탄탄해 보였다. 이 기회에 대한민국이 자동차와 건설로 돈만 벌어가는 나라가 아닌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는 괜찮은 나라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애초 세계적인 한국의 비보이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었으나 너무 상업적이고 서구적이라는 리비아 정부의 난색에 남사당놀이로 공연이 교체되었다고 한다. 11월 2일 자정 우리 팀은 리비아로 출발했다.



힘겨운 공연 준비, 드디어 막을 올리다
2006년 한국의 유명한 전통 무용단이 리비아를 방문했을 당시에는 호텔 안에서 초청된 분들만 관람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런 전례에서 벗어나 야외 공연을 하길 고집했다. 2008년 이란•사우디아라비아 순회공연을 통해 폐쇄적인 이슬람 대다수 국가에서 야외 공연문화가 전무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남사당은 한국에서도 실내에서는 거의 공연을 하지 않는다. 공연이 성사되기까지 공연장소 선택을 위해 리비아 현지 한국대사관 직원들은 동분서주했다. 여러 장소를 답사한 후에야 리비아에서는 드문 하드코트 미니 축구장을 보유한 트리폴리의 에티하드 유니온(Ethihad Union) 스포츠클럽으로 공연장이 결정됐다. 그러나 줄타기 공연을 위해서는 하드코트 바닥에 구멍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한국에서도 불가능한 바닥 훼손을 리비아에서 허가를 받아내는 성과에 놀라움을 안고 어려움 끝에 가까스로 공연 준비를 완료할 수 있었다. 막상 공연장에 도착해서 보니 건설된 지 20년이 돼서 우리가 뚫는 구멍보다도 더 많은 크랙이 있었다. 사실 야외 공연 준비는 한국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 공연을 바우덕이 풍물단은 전 세계에서 항상 고집하고 또한 해결한다. 리비아 대수로와 리비아 최고층 호텔을 건설하는 한국인들, 리비아의 17분의 1의 면적을 가진 작은 나라의 사람들이 그 문화를 그렇게 세계에 조금씩 심어놓고 있었다.
드디어 공연 당일. 트리폴리 민속공연단의 축하공연에 이어 바우덕이 풍물단이 이에 답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진행하기로 하고 분주하게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뜻밖에 리비아의 공연단 중에 여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슬람 문화는 남성 중심이라 여성이 히잡도 없이 남성의 반주에 맞춰 춤을 줄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녀는 개의치 않고 멋있게 춤을 추었다. 리비아도 보수적인 수니파 국가인데 여성 무용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즐거워하며 우리 단원들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예정 공연 시각인 오후 7시 30분. 음향 담당 회사가 7시에 나타나 열심히 설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웬 청천벽력. 하루 다섯 차례 지내는 예배의 마지막 시간이 7시 30분이라는 것이다. 공연은 물론이고 음향 설치 중이라 리허설도 못하게 막는 상황. 예배 시간 변경은 예고도 없다고 했다. 과연 남사당놀이 공연에 대한 반응이 어떨지 긴장감이 200% 증가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새 경찰의 호위 속에 객석 1,000석이 가득 차고 공연장 외곽에서도 시민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음향 리허설이 시작되더니 리비아 공연단이 사전 예고 없이 은근슬쩍 공연을 시작했다. 장동희 한국대사님과 리비아 전 문화부 차관의 환영사에 이어, 곧바로 리비아 공연단이 공연을 시작한 것이다. 리비아 남성 무용수의 힘찬 합무와 여성 무용수의 독무, 멋들어진 연주 후 남녀의 합동 춤, 이렇게 40분간 공연이 진행된 후에야 바우덕이 풍물단이 무대에 올랐다. 관객들은 한국 언어로 말을 해도 마치 알아듣는 것처럼 웃고 박수를 보냈다. 사물놀이, 줄타기, 풍물놀이, 버나놀이, 상모놀이가 펼쳐진 60분간 누구도 객석을 비우지 않으면서 남사당 단원들과 함께 즐기고 있었다. 먼 타향에서 근무하는 100여 명의 한국인을 믿으면서 공연을 시작했지만 1,000여 명의 리비아 트리폴리시민의 환호가 더 컸기에 편안히 긴장을 풀면서 단원들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었던 두 번째 공연
전날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대기실의 어려움을 기억하는 듯 바우덕이 단원들은 시작하는 시각을 재차 묻고 또 확인했다. 예정된 오후 8시에 공연이 가능하다는 확인을 받고 다시 공연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공연 1시간 전. 이번에는 음향이 도착하지 않았다. 45분 전에야 간신히 도착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음향을 설치하는 그들을 보며 우리는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마지막 예배 시간에 걸려서 또 음향 리허설 시간이 부족했다.
8시 15분. 음향 체크 후 마침내 공연이 시작되었다. 대기 시간이 길면 단원들 근육이 굳어가기에 바로 시작 큐를 날렸다. 대사관 임직원분들은 공연에 앞서 걱정을 많이 하셨다. 공연 날인 6일이 휴일이라 리비아인 대부분은 떨어져 있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시외로 나간다고 했다. 또한 안전 때문에 공연장 외곽 입구에 경찰이 진을 치고 있으니 일반 시민들의 왕래도 드물었다. 과연 1,000석의 객석이 얼마나 채워질지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밤이 되니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객석이 80% 이상 채워진 것을 보니 어제 공연에 대한 소문이 많이 퍼진 듯했다.
한국인들을 위해서 공연 시작 부분에 민요를 첨부해서 분위기를 만들어가려고 했지만 역시나 음향이 말썽을 부린다. 하지만 단원들의 애드리브로 위기를 넘기며 한국식 난장을 펼치면서 공연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시간, 형식, 약속의 의미가 다른 나라에서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무리하며, 공연단에 포함되지 못한 음향 스태프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공연을 정리했다. 장동희 주 리비아 대사님은 이젠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열심히 홍보해야 할 시기로, 그 역할을 꾸준히 해야 세계와 함께할 수 있다고 당부하셨다. 예술은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인류의 자산이다.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남사당놀이는 이젠 세계인의 자산이다. 2010년 또 다른 국가와 민족에게 한국의 신명을 전해줄 날을 기다리며 리비아에서의 파란만장한 공연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