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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 교육: 무엇이 한국의 이익인가?

최근 AKSE(유럽한국학회) 한국학 게시판에 오른 ‘한자 교육’에 대한 의견은 필자에게 많은 의문점을 불러일으켰는데, 이들 모두는 북미의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이후 ‘한국어 교육’으로 약칭) 현황에 대한 것들이다. 지금 필자는 서울에서 안식년 휴가 중으로, 16년만에 처음으로 이러한 장기 휴가를 보내면서 미국과 캐나다의 한국어 교육 현황에 대해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북미의 어느 대학에서 과연 한국어 교육의 일환으로 한자 교육을 진지하게 시행하고 있는가를 돌이켜볼 때, 떠오르는 학교가 얼마 되지 않는다. 이에 서울에서 한국어 교육 관련 동료들에게 한자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학생들 대부분이 이미 한자를 알고 있기 때문에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한국에서 한국어 고급과정을 배우는 외국인은 대부분 일본인이나 중국인이며, 이에 비해 북미 학생의 수는 너무 적어서 그들을 위한 한자 교육자료를 개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사실 북미의 한국어 교육 과정에서는 3학년이나 4학년 무렵에 한자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단과대학이 2학년 이후에 한자를 가르치고 있는가? 또 4년제 한국어 과정을 운영하는 극소수의 북미 대학에서도 한자 교육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재정적 투자를 하고 있는가? 이와 비교해 보건대 북미에서 일본어와 중국어 프로그램이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처음부터 2년간은 5시간이 아닌 주당 10시간 수업을 통해 ‘집중적으로’ 가르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중국어나 일본어에 대해 집중수업이 필요하다면 한국어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 2년간 집중 수업을 하고 있는가? 설령 집중수업이나 한국어 전공 과정이 있다고 해도 수강생이 얼마나 될 것인가? 아울러 교수는 차치하고 한국어 전임강사라도 1명 이상 있는 대학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더욱이 한국어 전공 과정이 있는 대학조차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북미의 한국어 교육에 대한 투자가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투자가 거의 전무한 원인은 북미의 교육기관, 북미 한인 교포사회, 국내 한국어 교육 지원단체 등의 세 가지 요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북미의 상황
내가 아는 한 미국과 캐나다 전체에서 한국어 및 언어학이나 한국어 교육 분야의 정규 교수직이 있는 대학은 10개가 채 안 된다. 일본어와 중국어 교수직에 대한 통계를 알 수는 없으나, 비교가 안 되는 숫자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여기에 더해서 첫째, 북미인들은 대학 내에서마저 한국에 대해 전반적으로 아는 바가 없고, 둘째, 대개의 동아시아학과에서 언어학 및 어학교육 분야의 교수직 임용을 꺼리고 있으며, 셋째,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외국과 외국어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다는 배경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결국 미국의 민간기관이 갑자기 한국어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북미의 한국어 교육이 ‘시장논리에 따라’자생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까지는 적어도 한 세기는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한인 교포사회의 분위기
한인 교포 1세대들은 자녀들의 형편없는 한국어 실력에 대해 ‘애국심 넘치는’우려 및 탄식과 함께 2세대에 대한 한국어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열정적으로 토로하곤 한다. 또한 캐나다와 미국 전역에 걸쳐 1,000개가 넘는 한인학교가 교포 2세대의 ‘어쩔 수 없는’영어 전용 현상을 조금이나마 지연시키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재미교포들은 지역사회의 한국어 교육에 어느 정도나 투자하고 있을까? 한인사회에서의 한국어 교육은 주로 ‘우리말, 우리끼리’ 정도의 개념일 뿐, 지역사회로 넘어서지는 못한다. 이와 관련해 재미교포들이 자녀들의 일반 교육에는 엄청난 투자를 아끼지 않는 반면, 한국어 교육에는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대개의 한인 토요학교는 30주 과정에 150달러 정도 하는데, 수업료를 인상하려고 하면 학부모들은 너무 비싸다고 반대하는 실정이니 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국가적 자원으로서의 언어유산(Heritage Languages)’에 대한 논의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그나마 고무적인 징조이기는 하지만 한인사회가 이러한 관점에서 얼마나 많이 투자하려고 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넓은 관점에서 보면 북미의 한국학계와 한국어 교육계, 한인사회는 모두 한국어 교육 증진에 관심이 있음을 알 수 있으므로, 앞으로는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보다 구체적인 방안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북미 한국어 교육 지원에 대한 최근 한국의 분위기
필자는 또한 북미 대학에 대해 한국 내에 만연되어 있는 실망감과 더불어 일종의 ‘지원에 대한 피로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부유한 미국을 가난한 한국이 언제까지 지원해야 하는가? 정말로 한국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있다면 미국 스스로 한국어 교육을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미국 대학이 한국에서 생각하는 만큼 그렇게 재정적으로 풍족한가? 그리고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에 필요한 적정 규모의 투자를 하지 못할 만큼 한국은 아직도 그렇게 가난한 것일까? 특히 최근의 국제 현실을 감안할 때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투자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일까?

미국에 대한 분위기나 태도는 최근 동유럽과 구 소련, 동남 아시아 등지에서 부는 ‘한국어 열풍’에 대한 한국 내 한국어 교육 전문가의 자부심과 좋은 대비가 된다. “이 사람들은 우리말을 배우는 데 정말 열심이다. 게다가 이 나라들은 우리보다 가난하지 않은가!”

또한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예컨대 2003년 1월에 방영된 해외 한국학에 대한 MBC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었듯이 15,000달러로는 북미 대학 한 곳에 2학기 동안 대학원생 강의 조교 1명을 겨우 고용할 수 있는 반면에, 1,000달러면 인도네시아 한 대학의 한국학센터 전체를 1년간 지원할 수 있다는 현실이다. 따라서 ‘거액이 필요한 미국에 대한 지원은 그만하고 모두가 우리말 공부에 열심이고 지원을 고마워하는 곳에 투자하자. 적은 돈이지만 투자하는 보람이 훨씬 크지 않은가’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여기에 한국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과 미국인이 한국에 대해 무지하도록 내버려둬도 괜찮을 것인가? 어떻게든 북미 지역에서의 한국에 대한 교육을 지원하여 발전시키는 것이 한국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길이 아닐까? 한국어 교육에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함으로써 북미 내 친한 인사나 한국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 아닐까?

불행하게도 요즘 한국에서는 미국을 경시할 경우의 장기적 손실을 깨닫지 못하고 소수의 한국어 교사들과 학자들이 북미 외 지역에서의 새로운 인기에 힘입어 한국어의 세계화를 외치는 목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한국어 교육에 대한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투자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는 없고, 현재의 미약한 수준의 지원에 대한 자기만족만이 있는 듯 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국제교류재단 및 다른 지원 단체가 최근 북미 외 지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그것은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어야 할 일이며, 한국의 장기적 이해관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가장 현명한 방안은 해외 한국학과 한국어 교육에 대한 지원을 ‘전반적으로’ 강화해야 하고, 더불어 북미의 한국어 교육에 대한 투자도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한국을 위한 최선의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