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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를 뛰어넘은 한국학

"나는 이제야 내 젊은 날의 꿈을 실현하였다.” 1786년 겨울, 로마에 온 괴테는 이렇게 읊조렸다. 그 옛날보다 혼란스러울지 모르지만 여전히 낭만과 환상이 사라지지 않은 매력적인 나라, 유럽 지도 위에 자리잡은 부츠 형상만큼이나 평범하지 않은, 독특한 것들이 다 모여있는 나라 이탈리아. 옛 로마 황제들의 휴양지이자 백포도주로 유명한 로마 근교의 작은 전원도시 Frascati에서 지난 4월 10일부터 13일까지 4일간의 일정으로 제21차 AKSE 학술회의(The 21st Conference of the Association for Korean Studies in Europe)가 개최되었다.

AKSE 학술회의는 유럽 내 한국학 진흥을 도모하기 위하여 한국학자 및 학생들간의 교류 활성화, 연구결과 확대 보급 등을 목적으로 1977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발족된 유럽지역내 대표적인 한국학 학술회의로서 1991년까지 매년 개최되어 왔으며, 이후 격년제로 전환되어 올해로 21회째를 맞을 정도로 매우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이번 회의는 행사준비를 총괄담당한 La Sapienza Roma대학의 Antonetta Bruno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로마제국시대 카르타고의 하니발 장군이 로마 정복을 위해 알프스를 최초로 넘어온 것처럼 AKSE가 ‘한국학’이라는 무기를 들고 평화적으로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서 최초로 개최되는 회의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 관련 70여 연구논문 발표
이번 회의에는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 등 서구 유럽은 물론 러시아·폴란드·헝가리·체크·카자흐스탄 등 구 동구권, 그리고 한국을 비롯한 미국·일본의 관련학자 및 학생 등 약 140여 명이 참가하여 역대 회의 사상 규모 면에서 최대를 기록하였으며, 발표 논문의 전반적인 수준 또한 상당히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회의는 4일간의 일정으로 총 15개 세션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는데, 한국의 역사·문화·언어 및 정치·경제·사회·종교·예술 등 한국 관련 전 분야를 주제로 70여 편이 넘는 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 각 세션별로는 약 5편의 연구논문이 각 20분간 발표되었고, 이어 10분간의 질의 응답,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회의 일정상 다소 부족한 시간이었으나 참가자들의 진지하고도 활발한 참여로 매우 심도 있게 진행되었으며, 세션 중간의 휴식시간중에도 발표자와 참가자 간의 열띤 토론이 계속되는 등 회의장은 4일간의 회의 기간 내내 한국학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펠로십 사업 등의 재단 지원 효과 실감
특히 이번 회의 참석자들 중에는 Martina Deuchler 전 런던대 교수, Werner Sasse 함부르크대 교수, Boudewijn Walraven 레이든대 교수 등 유럽 내 한국학의 초석을 다져온 기존의 1세대 한국학 교수들 뿐만 아니라, 새로이 교편을 잡은 소장학자나 한국전공 석·박사과정생들도 다수 참석하여 많은 우수 연구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유럽 내 한국학계의 저변이 점차 확대되어가고 있음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이들 소장학자나 학생들의 대부분은 재단으로부터 펠로십을 받은 수혜자였거나 직·간접적으로 재단의 지원을 받은바 있어 해외 한국학의 기반 확대를 위해 각종 펠로십 사업을 시행해 온 재단의 지원이 이들에게 커다란 밑거름이 되고 있음을 실감하였다.

더욱 세심한 관심과 실질적 지원 필요
비록 4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참가자들은 이 회의를 통해 다양한 한국학 연구주제를 접함으로써 한국학에 대한 시야를 넓히는 한편, 최근의 유럽 내 한국학 동향을 파악하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는 활발한 인적 교류의 장으로 활용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일부 참가자들이 논문을 발표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비를 들여 회의 세션 참가는 물론 참가 학자들과의 토론에도 적극 참여하는 것을 볼 때 유럽 한국학계에서 AKSE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지역 한국학자들에 대한 지원을 담당하고 있는 재단 직원으로서 이들과의 직접적이고도 허심탄회한 만남을 통해 그들의 개인적인 고충과 바람을 전해 들으면서 이들에 대한 더욱 세심한 관심과 함께 보다 효율적이고도 실질적인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다만 회의 기간 내내 틈틈이 시간을 내어 되도록 많은 참가자들을 만나보려 욕심을 냈지만 모자라는 시간을 핑계삼아 그렇지 못한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이 남는 소중한 회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