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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바라본 한국의 과거와 현재

최근 러시아에는 한국에 대한 여러 논문과 학술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한국학센터도 계속 신설되는 추세에 있다. 또한 모스크바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한국과 북한 학자들이 참가하는 한국 관련 회의와 세미나가 다수 개최되고 있다. 러시아 한국 전문가들은 해외에서 학문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으며, AKSE 회의를 비롯한 각종 주요 한국학 국제회의에 참가하고 있다. 특히, 독창적인 생각과 성장 가능성을 지닌 젊은 연구자들이 한국학계에 많이 유입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경향은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한국’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제 8차 러시아 한국연구 학자 학술대회에서 명확하게 나타났다. 이 학술대회는 지난 3월 25~ 26일 이틀 동안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과학원 산하 극동문제연구소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개최되었는데, 러시아 전역의 연구소와 대학의 학자 및 학생들과 정계, 재계, 국내외 언론계 인사 60여 명이 참가하였다. 개회식에서는 M. Titarenko 극동문제연구소장과 정태익 주러시아 한국대사, V. Sukhinin 러시아 외무성 제 1 아주국 부국장이 환영사를 했다.

학술대회 참가자들은 1990년대 중반에 극동문제연구소 한국학센터가 창설한 이 러시아 한국연구 학자 학술대회가 러시아내 한국 전문가들 간의 대표적인 회의로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모스크바 이외에도 각지의 주요 한국학센터 대표가 모두 참석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부리야티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이전 참가자들 말고도, 이번에는 마그니토고르스크, 수르구트와 같이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온 참가자들도 있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한국학 전공 학부생들도 참가하여, 결과적으로 참가자의 절반 정도를 35세 이하 소장 학자와 대학원생, 학부생들이 차지하였다. 이들은 처음으로 권위있는 학술대회에서 진행되는 토론에 참가하는 기회를 가졌을 터였다. 미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활동 중인 유수의 러시아 학자들이 정기적으로 참가하는 것을 보면 역시 이 학술대회가 한국학 분야에서 독창적인 생각과 새로운 연구 결과의 산실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러시아 한국학 연구의 주요 분야를 모두 다루었는데, 역사, 문화, 정치, 경제의 4개 분과로 나뉘어 소개되었다.

역사분과
역사분과는 2004년도가 한·러 국교 수립 120주년, 한인의 러시아 극동지역 이주 140주년, 러·일 전쟁 발발 100주년 등 한·러 관계사에서 중요한 해임을 기념하여 마련되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역할은 오늘날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전 주북한 러시아대사이자 러시아 외무성 산하 모스크바국제관계연구소(MGIMO) V. Denisov 교수는 현재의 시각에서 보면 당시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였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에 흡수되는 것을 막고 독립을 유지시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극동지역에서 경제나 군사적으로 러시아가 힘이 약했기 때문에 한국의 독립을 지킬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또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러시아가 남북한의 평화적 통일을 바라고 있다는 점이 논의되었다. 즉, 모스크바는 통일 한국이 민주국가로 번영하여 러시아를 비롯한 이웃 국가들에 대해 평화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하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현재 극동문제연구소 객원 연구원으로 와 있는 한국의 신효숙 박사는 러시아 교과서의 한국사 기술 부분을 분석한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하였고, 여기에서 제기된 문제점들에 대해 모스크바 동양학연구소의 T. Simbirtseva 교수는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였다.

블라디보스톡 극동국립대 한국학센터 I. Tolstokulakov 소장은 한국의 전통적 정치문화가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 정치적 근대화의 속도와 형태에 미친 영향에 대해 발표했다.

문화분과
문화분과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한국인의 민족적 기원’(러시아 자연과학원 한국학센터 G. Yugai 소장), ‘샤머니즘 등 한국의 고대 신앙’(러시아 외무성 A. Efimov)부터 ‘러시아 과학 발전에 대한 한인의 공헌’(모스크바국립대 한국학센터 J. Piskulova 연구원)까지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현대 한국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은 모스크바 뿐만 아니라 지방에서도 높았는데, 마그니토고르스크대학의 L. Kireeva 교수는 한국 영화의 성과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다.

정치분과
전통적으로 학술대회에서는 남북한의 최근 정세, 한반도 안보 문제 및 한·러 관계가 가장 많이 다루어졌었는데, 이번에는 특히 한반도의 핵 문제와 해결 전망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극동문제연구소 M. Titarenko 소장과 필자는 이 문제를 둘러싼 긴장이 아직 쉽사리 사라질 수 없는 것임을 지적하였다. 제 2차 베이징 6자 회담이 실질적인 결과를 도출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북한의 고집스러움 뿐만 아니라 미국의 완고한 태도도 문제가 있으며, 미국과 북한 사이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회담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 발표자들의 견해였다.

극동문제연구소의 V. Tkachenko 박사는 미국 정부가 분쟁 해결에 무력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하는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평했다.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 국경 인근에서 군사적 행동을 취하는 것이 이들 국가의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됨을 고려해야 하며, 북한 때문에 모스크바나 베이징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결정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극동문제연구소의 K. Asmolov 박사는 한반도 현 상황에 대한 미국 군사 전문가의 견해를 발표하였다.

동양학연구소 한국학과 A. Vorontsov 과장과 MGIMO의 V. Dmitrieva 교수, N. Kobozev 박사는 북한의 국내 정치 상황에 대해 평양이 이데올로기적 도그마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학자들은 미국이 사용하는 ‘악의 축’과 같은 극단적인 표현은 삼가하면서 북한 체제의 이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자 노력하고 있다. 김일성 사후 10년 동안 북한 사회는 분명히 어떤 변화를 겪었으며, 그 변화의 규모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김정일은 자신의 국제적인 이미지를 바꾸고 싶어할 뿐 아니라, 뛰어난 위기 대처 능력을 입증한 한국 군사 정권 통치자들의 사례를 연구하고 있는데, 특히 박정희의 경제 성장 업적을 여러 차례 긍정적으로 평가하곤 했다.

경제분과
남북한 및 동북아 전반의 경제, 한·러 무역 및 경제 관계의 현황과 전망은 학술대회의 마지막 분과였다. 극동문제연구소의 S. Suslina 박사는 러시아가 동북아 통합 과정에 더 빨리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향후 동북아 경제 연합 참가국의 행보를 가속시킬 수도 있으며, 이 경제 연합에 가입함으로써 목표 달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자유 무역 지대와 유사한 기구가 될 것이며,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을 포함하게 될 것이며, 북한도 참여하면 좋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논평했다. 러시아는 한반도 관련 3자 및 다자 협력에 참여함으로써 동북아 지역에서 경제적 입지를 강화하고 지역 통합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MGIMO의 M. Steklov 박사는 에너지 분야에서 러시아의 한국 및 북한과의 협력 전망에 대해 발표했는데, 이 문제 해결 과정의 어려움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가가 미칠 영향을 분석했다.

또한, 러시아의 한국 전문가들은 오늘날 러시아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한 현대 노동시장의 생성, 노동 입법을 포함한 한국의 근대화 경험을 면밀하게 분석하였는데, 극동문제연구소의 V. Pak, 러시아 외무성 외교아카데미의 E. Kim과 같은 소장 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번 2004년도 학술대회는 작년에 이어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을 받았다. 이 지원으로 러시아내 모스크바 이외 지역에서 많은 학자들을 초청할 수 있었다. 학술대회 주최측과 참가자들은 앞으로도 러시아의 한국학 연구에 대한 재단의 이러한 지원이 계속되기를 희망한다. 학술대회 논문집은 오는 가을에 발간될 예정이며, 이미 발간된 지난 학술대회 논문집 7권과 함께 러시아의 한국학 동향을 탐색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다음 제 9차 러시아 한국연구학자학술대회는 2005년 봄, 모스크바 극동문제연구소에서 개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