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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위해 누가 화해의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가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아시아학 입문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필자는 수업중에 평화중재자가 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계 교환학생의 수가 늘어나면서 일본인, 한국인과 여러 인종의 미국인 학생들이 강좌를 신청하고 있어 교실은 국제적 인종모자이크와도 같다. 강의주제는 동아시아의 인류, 역사, 경제, 민속학 등이며, 특히 한국에 중점을 두고 있다.

다국적 학생들의 대화
강의실에서 보통 다음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한 용감한 한국학생이 손을 든다. 그의 표정만 보아도 다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그림이 그려진다. 그 학생은 2차대전을 한국, 중국, 대만, 동남아의 시각에서 발표한 후에 일본 학생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제안한다. 시간제한이나 토론에 따르는 여러 규칙을 주지시키고 토론에 들어가지만, 곧 도발적인 질문과 혹독한 비판이 쏟아지고, 한국학생이 2차대전 당시 일본이 저지른 잔혹행위를 폭로한다. 일본학생들은 놀라서 의자 깊숙이 움츠러들고 당황하여 얼굴이 상기되거나 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인다. 수업을 끝내고 자료를 더 읽어보라고 하고 학생들을 돌려보내지만, 이런 첫 수업 후에는 무리지어 토론을 계속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다.

다음 시간에 먼저 반응을 보이는 쪽은 주로 일본학생들인데, 우선 일본이 전시에 저지른 잔혹 행위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본인들은 그런 어두운 부분에 대해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지만 한국학생들은 이를 반박하거나 잘 믿지 않는다.

강의 수강생이 대부분 어린 학부생들임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일본학생들은 왜 일본정부가 역사의 중요한 진실을 은폐하고 자신들을 완전 무지한 상태로 다른 나라 청년들과 맞닥뜨리게 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이는 무책임하고 비겁한 행위이며, 일본 교육제도에서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때늦게 전후의 상처를 치유하는 동안 한편으로 필자는 미국인 학생들의 관심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 대부분의 미국학생에게 이런 토론은 2차대전을 21세기까지 연장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은 할아버지한테 들었을 법한 태평양전쟁 이야기를 하거나, 원자폭탄 투하가 불가피했는가를 재평가하기도 하고, 종전 후 왜 일본이 아닌 한국이 분단되었는지에 의아해 하는 등 많은 새로운 문제들을 제기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누군가 필자가 독일에서 자라났음을 생각해내고는 독일에서는 전쟁범죄와 보상 문제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질문한다. 필자는 독일이 잘못을 인정하고 유럽과 특히 이스라엘에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연합국의 감시가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고 말해준다. 또 누구나 자신의 추한 범죄는 인정하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연합국의 감시와 세계의 이목이 없었더라면 독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덧붙인다. 그러면 한국 학생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의문이 남는다. 왜 일본에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는가?

유럽과 동아시아의 전후 상황 비교
이제 필자의 목소리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계속 하자. 종전 후 유럽은 끔찍한 전쟁의 상처를 입었음에도 신속하게 유럽을 통합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었다는 점에서 태평양의 경우와 구분이 된다. 유럽통합은 미국의 주도로 큰 차원에서 이루어졌지만, 마셜 정책, NATO, IMF보다 훨씬 ‘낮은’ 차원에서도 이루어졌다. 독일에서는 사회 전체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정치적 다수세력이 투명한 민주적 절차로 국정을 운영하며 적대국들과 화해를 추진하였다. 그러는 한편 새로운 유럽을 건설하고자 하는 범유럽적 움직임 속에서 여러 가지 문화교류 수단들도 활용되었던 것이다. 특히 국가간에 오케스트라나 사진전 등 교환공연·전시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대학생은 물론 수많은 초·중·고등학생 간에 교류가 이루어졌던 점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부간에 교류협정을 체결할 때, 청소년들이 사용할 교과서에 역사적 사실을 올바로 기술하고 교육하도록 분명히 규정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와 같은 교육과 교류 프로그램이 우리 세대에게는 분명 효과가 있었으며, 성공의 열쇠는 바로 국수주의적인 낡은 태도를 버리는 것이었다.

불행히도 동아시아에서는 냉전, 중국의 공산화, 한반도 분단,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과 일본의 리더십 부족으로 전쟁 범죄가 적절히 처리되지 못했다. 그 결과, 오늘날 아시아 지역에는 일본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는 여전히 자기비판적인 역사책이 드물고, 사실을 알지 못하는 일본인들은 해외에 나가서 당황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동아시아 지역의 무역과 경제활동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반면, 이 지역 내의 장기적 안정을 보장할 수 있는 건설적인 사회재건 움직임은 뒷받침이 되지 못한 것이다.

집중적인 청소년 교류 활성화
2차대전 종전 후 50여 년이 넘었지만, 동아시아 지역민들의 감정과 개인적인 경험차원에서 이 지역을 융합할 사회재건을 시작하는 일은 아직도 늦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시작을 누가 이끌어 갈 것인가? 일본이 역사책을 다시 쓰고 죄의식을 보다 유연하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한국과 중국은 냉담한 태도를 버리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한국과 중국도 일본이 처한 곤란한 상황을 우회하는 방법을 써서 이 상황을 지혜롭게 이끌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첫 단계는 중국과 한국의 학교와 역사책에서 민족적, 반일적인 태도를 좀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일본의 잘못을 알리는 것은 전쟁에 대한 사실을 기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단계는 새 출발을 위해 유럽이 했던 것처럼 세 나라의 어린 학생들을 집중적으로 교류하게 하는 것이다. 서로 만나 교류하게 된 청소년과 젊은이들은 새로운 공동체의 기반으로 어울리지 않는 낡은 장애물들을 걷어내게 될 것이다. 이들이 나눌 허심탄회한 대화는 이데올로기와 국가적 의제로 가득한 정치석상의 토론보다 훨씬 풍성한 결실을 맺으리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기성세대는 안보와 협력이 보장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상징적으로나마 용서의 표현을 보여주어야 한다. 유럽에서 이런 행동이 필요했을 때, 보수진영은 진보세력이 국가를 팔아먹는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당시 그와 같은 상징적 행위를 주도할 용기를 지녔던 인물들은 오늘날 유럽통합의 진정한 지도자로 존경받고 있다.

동아시아의 안녕에 높은 관심을 가진 한 사람으로서, 강의실에서 본 감동적인 장면을 하나의 희망의 싹으로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충돌, 혼란, 고뇌의 과정과 치유의 노력이 교차한 한 학기가 끝나고 한국학생과 일본학생이 서로 화해하고 끌어안는 모습이었다. 이들 젊은이들은 함께 배우고 성장할 친구이자 같은 인간으로서 자신들의 나라가 함께 번영할 수 있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해 걸어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