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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선비문화를 찾아서

주한 외국 공관 문화담당관들은 우리나라와 자국과의 문화 교류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이들의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무척 중요하다. 따라서, 재단은 이들을 위한 문화 이해 프로그램인 안동 선비문화 답사를 기획하여 참가자들이 한국인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유교적 정서를 이해하고,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한 차원 높이는 기회로 삼기를 기대했다.

답사 첫 날인 4월 22일. 그 동안 화창했던 날씨는 자취를 감추고, 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출발 시간인 오후 1시가 되어서는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져 긴장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은 덴마크, 베네수엘라, 브루나이, 스위스, 온두라스, 페루 등 6개 공관의 참가자 10명, 행사 진행단 5명, 동행 취재하는 MBC 문화방송의 취재단 3명 등 모두 18명으로 비교적 단출했다.

해학 넘치는 정서, 유구한 선비 정신
첫 방문지인 안동 사대부 민가 겸암정사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오지 않아 가옥을 둘러보고 멀리서 하회마을을 조망하며, 그 내력과 풍수지리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이 하룻밤을 머문 숙소는 ‘지례예술촌’이라는 한옥이었는데 , 이곳은 조선 숙종 때에 대사성(성균관의 관장)을 지낸 지촌 김방걸(1623-1695)의 종가집으로, 지금은 지촌의 13대 종손인 김원길 씨가 이 곳을 숙박시설 및 문인, 화가들을 위한 작품 활동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우선 여장을 풀고 안동 간고등어를 곁들인 토속음식으로 배를 채운 후, 예술촌에서 제공하는 인간문화재 이상호 선생의 하회탈춤 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선생은 현존하는 하회탈 10종의 이름과 인물의 성격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그에 따른 춤동작을 보여 주었는데, 환갑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날아갈 듯 가볍고 유연한 몸놀림과 재치 있고 구수한 설명으로 분위기를 사로잡았다. 공연 후반부에는 우리들 모두 이 선생을 따라 덩실덩실 어깨춤을 배웠다. 온두라스대사관의 Ren?Uma뻕 대사와 스위스대사관의 Siri Walt참사관, 페루대사관의 Wilbert Haya Enriquez 서기관은 이 선생의 손에 이끌려 나와 각기 선비탈, 부네탈(바람기 많은 여자탈), 이매탈(바보탈)을 쓰고 함께 신명나게 탈춤을 추었는데, 참가자들은‘각각의 탈이 표현하는 인물에 대한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춤 동작을 쉽게 따라할 수 있고, 탈로 얼굴을 가리니 창피함이 없어져 춤추는 것이 더욱 즐겁다’고 했다.

한국전통문화학교의 최선호 교수가 도산서원에서 참가자들에게 설명중이다.화창한 아침을 맞이한 둘째 날은 안동 지역의 대표적인 두 서원인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답사로 시작되었다. 도산서원은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학자 퇴계 이황이 후학 양성을 위해 지은 사립 교육 기관으로, 외교 사절들은 서원 안의 곳곳을 흥미로운 눈으로 살펴봤다. 또한, 이황의 제자들이 기거했던 건물인 농운정사에서는 공부방 안에 잠시 들어가 앉아 당시 유림들의 고된 면학 생활과 정신 수행 등을 상상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퇴계 이황의 뛰어난 제자이자 임진왜란 당시 군사업무를 총괄하며 큰 공을 세운 서애 유성룡을 배향한 병산서원은 자연과 하나 됨을 최고의 미로 여겼던 조선시대 미학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한국 건축사의 백미로 꼽힌다. 병산서원에 이른 외교사절들은 만대루에 올라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과 그 앞을 흐르는 낙동강을 바라보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특히 ‘자연과 하나가 된다’는 말을 실감한다며, 자연을 인간의 편리를 위해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인간이 곧 자연의 일부로 그 속에 융화되는 삶을 추구한 조선의 사상이 몸으로 전해지는 듯 흐뭇한 표정이었다. 또 못 하나 쓰지 않고 지은 우리의 전통 건축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세계에 알려야 할 빛나는 문화 유산
안동 선비 문화 답사에 영주 부석사를 포함한 것은 유교문화권에서의 불교 사찰이 어떤 기능을 했으며, 또 고려시대 건축인 부석사 무량수전이 조선시대 건축과는 어떻게 다른 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는 뜻이었다. 무량수전, 영겁의 수명을 가진 극락정토의 부처를 모신 전당. 그 이름이 전하는 의미와 600여 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이 불전(佛殿)의 고색창연한 자태는 우리들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숙연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은 물질 문명의 개발에 치중하느라 정신 문명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그 결과, 빠른 시간 안에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룩하며 국제 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으로는 관심 갖는 나라가 되었지만, 한국문화에 대한 세계의 관심은 아직도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미미한 편이다. 필자는 이번 주한 외국 공관 문화담당관을 위한 문화 답사가 이러한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참가자들의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