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우정이 만든 환상적인 무대

서울발레시어터와 네바다발레시어터가 한국의 국립극장과 미국의 라스베이거스 햄 홀에서 가진 합동공연은 동양과 서양이 함께 어우러진 경이로운 광경을 연출했다. 뛰어난 무대로 인해 객석과 무대는 혼연일체가 되었으며, 한국 창작발레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예술이 만든 인연, 그리고 한국 공연
서울발레시어터는 1995년 창단 이후 발레의 대중화와 창작 발레의 역수출을 모토로 하여 이탈리아, 미국, 일본, 터키, 이스라엘, 세르비아 등지의 해외 공연과 전국 공연을 활발하게 펼쳐온 민간 발레단이다. 네바다발레시어터는 라스베이거스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주립발레단으로, 두 발레단 모두 창작 발레를 지향하는 단체다.
두 발레단은 2001년 서울발레시어터의 상임안무가인 제임스 전이 네바다발레시어터의 의뢰에 따라 최초로 저작권을 인정받으며 그의 작품 <생명의 선>을 안무하면서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 후 제임스 전은 해마다 네바다발레시어터의 초청을 받아왔으며, 2007년 초에 두 발레단은 본격적인 교류 프로젝트를 결정했다. 이 프로젝트는 발레단 전체가 교류하면서 먼저 각 발레단의 대표 작품을 소개하고 두 발레단의 무용수들이 공동으로 참여해 제임스 전의 대표 작품인 < Inner Moves >를 공연하는 것이었다. 는 2002년에 네바다발레시어터를 위해 안무한 작품으로 주디 베일리 극장에서 초연되어 미국 관객들에게 이미 검증받은 작품이다. 한국 작곡가 장석문의 음악, 에너지와 정열이 넘치는 무용수들의 기량, 입체적으로 돋보이는 조명의 조화가 제임스전의 감각적인 안무와 어울려 공연 후 뜨거운 찬사를 받았으며 언론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바 있다.
3월 14일과 15일 서울발레시어터와 네바다발레시어터의 < East MeetsWest > 한국 공연을 끝내자마자 라스베이거스로 향한 서울발레시어터단원들은 한국 공연의 피곤함도 잊고 다시 네바다발레시어터의 일정에 맞추어 연습에 임했다. 이상기온으로 약간 추워진 라스베이거스의 기온은 한국의 꽃샘추위와 같은 느낌이었다. 단원들의 건강도 걱정됐지만 그보다 더욱 걱정스러웠던 것은 짧은 준비 기간과 특히 비자 문제 때문에 스태프들이 무용수들과 함께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끝까지 결코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공연이었다. 이런 어려움을 알고 있었던 네바다발레시어터는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공연 전에 이사회와 후원회 임원들, 지역인사들을 모시고 환영 리셉션을 열어주었다.
과거 무용수였던 낸시 휴셀과 그녀의 남편인 바실리 누리히에 의해 1972년에 설립된 네바다발레시어터. 세계적인 쇼 비즈니스의 집산지이자 엄청난 제작비가 투자된 상상을 초월하는 볼거리가 매일 쏟아지는 라스베이거스에서 과연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네바다발레아카데미가 발굴한 무용수와 세계 각지에서 온 수준 높고 예술성 있는 무용수들은 전통 있는 고전발레와 신선한 모던발레로 이루어진 다양한 레퍼토리를 해마다 성공적으로 공연함으로써 탄탄한 고정 관객층을 거느리며 라스베이거스를 문화 도시 이미지로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환호와 찬사, 한국 창작발레의 가능성
라스베이거스주립대학에 위치한 햄 홀은 1966년에 세워진 예술센터로 약 1,600여 석을 갖춘 대극장이다. 과연 이곳이 다 찰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관객들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어느덧 객석을 꽉 메웠다. 첫날은 주로 발레단과 연관이 있는 관객들, 무용 전문인들로 이뤄졌고, 둘째 날은 가족 단위의 관객들과 노년 관객들 등 세대를 아우른 일반 관객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막이 오르며 네바다발레시어터의 작품인 < The Class >의 공연이 펼쳐졌다. 이 작품은 약 10여 년 동안 네바다발레시어터의 예술감독을 지낸 브루스 스타이블의 창작품으로 무용수들의 발레 수업 풍경을 작품화한 것이다.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것은 서울발레시어터의 2008년 신작 < R.O.Y.Remembering of You… >였다. 이 작품은 2006년 타계한 고(故) 로이토비아스를 추모하며 두 발레단과 토비아스의 인연을 기리고자 만든 헌정 작품이다. 토비아스가 평소 좋아했던 독일 낭만파 작곡가 브람스의 서정적인 선율을 바탕으로 인간의 희망, 사랑, 행복, 자유의 감정을 담아내고자 했다. 작품은 제임스 전의 독무로 시작했는데, 그의 애절한 몸짓은 격정적이면서도 아름다워 죽은 영혼을 위한 진혼무 같았다. 다양한 장면의 변화는 무용수들의 의상과 동작으로 표현했으며, 배경으로 상영한 토비아스의 영상은 생전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라스베이거스에도 토비아스를 기억하는 이가 많기에 작품이 끝나고 이어진 기립박수는 모두가 함께 떠나간 안무가를 애도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1막이 끝난 뒤 이어진 휴식시간에는 많은 관객들이 안무가와 대화를 나누며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소중한 추억을 남기려 는 듯 안무가와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피날레 작품으로 선보인 < Inner Moves >는 이 공연의 의도를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동양이 서양을 만나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하는 의문에 해답을 제시하는 작품이었다.
한국의 전통 가락이 섞인 장석문의 음악과 한국인 안무가 제임스 전의 우리 춤사위를 변형시킨 발레 동작을 서양 무용수들이 동양 무용수들과 함께 어울려 춤추는 모습은 참으로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세계 공통어인 몸의 언어 ‘발레’이기에 짧은 연습 기간에도 공동 작업이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양 발레단 무용수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하모니는 객석과 무대가 혼연일체가 되는 장관을 연출했다. 빠르고 직선적인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잘 발달한 무용수의 근육질과 몸이 드러나게 하여 경탄을 자아냈고, 속도감 있게 전개되는 역동성은 관중들을 무아지경으로 이끌기에 충분했다. 또한 2002년 초연 때와 달리 한국 무용수들이 공동으로 참여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관중들의 환호와 찬사 속에 공연은 막을 내렸고, 그 박수 속에서 한국 창작발레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공연 직후 네바다발레시어터 단장은 최고의 공연이었다며 2011년에 세워질 스미스 공연센터로 보금자리를 옮기면 또다시 서울발레시어터와 교류 작업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더불어 애리조나발레단 단장 또한 제임스 전의 작품 구입 의사를 밝혀와 또 다른 성과를 남겼다. 이번 교류 공연 < East Meets West >는 결코 잠들지 않는 네바다 사막에서 피어난 한 송이 꽃 같은 성과라고 자부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창작예술이 세계 속에서 충분히 대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