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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속의 한국문화기행

일본에서 근무하면서 연초에 시간을 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도쿄의 북서쪽에 위치한 사이타마 현의 히다카(日高) 시가 바로 그 곳이다. 이곳은 코마진자를 비롯해 우리나라 삼국 시대의 고구려 유민과 관련된 유적과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로부터 이곳에서는 ‘고구려’를 ‘코마’라고 불렀으며 이를 한자로 ‘고려’라 표시하였다. 이 근방을 지나는 전철역의 일본식 발음은 코마에키(高麗驛)와 코마가와에키(高麗川驛)로, 한자 표기에 고려(高麗)가 들어간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성을 추정할 수 있다.
도쿄의 이케부쿠로(池袋)에서 전철로 40여 분을 달려 도착한 코마에키의 개찰구를 나오면, 우리에게 낯익은 장승이 우뚝 솟아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역 주변의 상점이나 학교, 안내판을 둘러보니 ‘코마’가 들어가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4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코마진자(高麗神社), 즉 고려신사가 있다.



고려촌과 고려신사
히다카시(日高市) 동쪽 산자락에 자리잡은 고려신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고려촌에는 곳곳에 고구려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고려신사는 일본의 다른 유명한 신사처럼 숲을 병풍처럼 끼고 있다. 주변에는 아기자기한 조경이 꾸며져 있는데, 특히 신사 뒤쪽에 위치한 고려 고택은 일본의 중요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고려촌과 고려신사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인 나라(奈良)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동아시아의 맹주였던 고구려는 668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했다. 『속일본기』에 의하면 고구려 멸망직전, 국난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 사신으로 갔던 고구려 왕족 약광(若光)이 고국이 망하자 716년 도쿄 주변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 망명객과 유민 1,799명을 이끌어 모아 무사시노 벌판 일대에 정착했다고 한다. 그후 이곳은 고려군이 되었다. 고려군은 고려촌(高麗村)과 고려천촌(高麗川村)으로 이뤄졌다. 아마도 역사기록상 해외에 형성된 한인타운의 시초가 아닐까 한다. 고려군이 설치된 지 42년 뒤에는 인근 지역에 신라군도 생겨났다. 일본은 당시 선진 문물을 배우기 위해 고구려·백제·신라인을 우대해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구려인은 일본인에게 말타기, 싸움 전술, 그리고 농업을 가르쳐 주었으며, 신라인은 건축과 미술을 전수해주었다.
고구려 보장왕의 아들 약광은 이 지역 사람들에게 잠상(蠶桑)을 비롯한 여러 선진 기술을 보급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추앙을 받았고 그가 죽자 군민들은 그의 위덕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면서 고려신사가 유래되었다.
사람이 살지 않던 변방의 무사시노 벌판은 한반도 유민이 개척해 비옥한 곡창 지대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국수주의를 강화하면서 1896년 한국과 관련된 지명을 없애버렸다. 고려군을 이루마군으로 바꾸고 이를 다시 히다카 시, 쓰루가시마시, 한노 시의 3개 시로 나눴다. 그래서 지금은 고려촌이 히다카 시에속한 조그만 동네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고려신사의 역사적 의미
연간 40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개운과 출세의 명신으로 유명해진 고려신사에는 사제직을 대대로 계승한 것을 기록한 고려 씨족 가계도가 전해진다. 가계도는 고려 씨족들의 선조가 약광 왕의 후손임을 알려준다. 약광의 후손인 고려 씨는 26대 500년 동안 고구려인 자손들끼리만 혼인해왔다. 그러나 27대부터는 일본인과 통혼했고, 현재는 60대 손인 고마 후미야스(高麗文康) 씨가 신사의 궁사를 이어가고 있다. 고려신사는 한때 군국주의자들이 악용하기도 했다. 일제는 조선 침략기에 고려신사를 ‘외래 민족이 일본에 동화된 전형’으로 선전하며 많은 이들은 참배하게 했다. 이 때문에 새로 부임하는 조선 총독이나 고위 관리들은 이곳을 참배하고 조선으로 떠났다고 한다. 비록 일제의식민 지배에 이용되긴 했지만, 고려신사가 지니는 본래의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고려신사에는 고구려 유민들의 망국의 한이 절절히 배어 있다. 그만큼 이곳은 이역만리 일본 땅에서 1,300년이라는 시간을 초월해 고구려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고구려 조상을 섬겨온 한민족의 역사와 함께 고구려의 기상과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재일동포들에겐 일본속에 우리 민족의 문화와 역사의 일부분을 담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한류 드라마와 고려신사
일본에서는 몇 년 전부터 한류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한류의 영역은 영화나 드라마 등 예능 분야를 넘어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려신사는 나름대로 뚜렷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고려신사와 고려촌을 찾는 사람들은 개운과 출세를 빌기 위해 참배하는 일본인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욘사마로 잘 알려진 배용준이 출연한 <태왕사신기>를 비롯해 <대조영>, <주몽> 등 고구려와 관련된 역사 드라마가 방영되면서 이곳을 찾는 방문자 수가 많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 사람들이 무척 많은데도 그들에게 고려신사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도쿄의 관광 안내 책자나 인터넷 사이트에서도 고려신사를 찾기가 어려워 매우 안타깝다. 하지만 1,300년 전 고구려의 역사가 일본에 그대로 살아 있는 현장을 살펴보고, 또한 일본 지방 소도시의 참모습을 돌아보는 것은 이름난 관광지를 둘러보는 것 이상으로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도쿄 시내 신주쿠 역이나 이케부쿠로 역 등에서 전철로 연결되어 있어 비교적 접근성도 좋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