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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 펼쳐진 조선시대 문화와 예술

2009년 3월 17일부터 6월 21일까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한국실에서 <한국 예술의 르네상스 1400~1600(Art of the Korean Renaissance, 1400~1600)> 전시회가 열린다. 이 전시는 미국 최초로 조선시대 전기의 한국 미술을 조명하는 행사로 조선 전기의 강력한 문화 예술 르네상스에 관한 생생하고 차별화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난 3월 17일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개막된 <한국 예술의 르네상스 1400~1600> 전시회는 전 세계 기관과 컬렉션에서 선별한 45점 이상의 조선 전기 예술품을 소개한다. 미술의 주요 후원자였던 조선시대 유교 왕실과 선비들은 세속적인 예술과 문화가 융성한 사회를 만들었다. 한국과 동아시아의 고전 전통이 부활해 강조, 변형되었으며 혁신적인 미술 형태도 높이 평가 받았다. 한반도에서 천년 넘게 국교로 자리 잡았던 불교 역시 비록 공적으로는 강한 탄압을 받았지만 조선 전기에 여전히 지속적으로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 국제적인 대여 전시를 위해 한국, 일본, 독일, 미국의 유수 박물관, 기관, 개인 컬렉션 18개 처 소장 걸작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어떤 작품은 과거 개최된 바 있는 한국 미술전(특히 1980년대 초에 열린 <한국미술 5000년전>)에서 소개한 것이기도 하지만, 많은 것들이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품들이다. 좀처럼 외부 나들이를 하지 않는 클리블랜드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등 미국 내 기관의 미술품도 선보이고 있다. 이렇게 많은 기관과 개인들이 기꺼이 그리고 적극적으로 회화와 여러 작품들을 대여해주어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매력적인 통합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또 고맙게도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제임스 와트 아시아 미술과장과 필자가 지난 2007년 여름 서울에 있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을 방문했을 때 임성준 이사장과 문화교류부 직원들은 우리 프로젝트에 크게 공감했으며, 그 목적과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현 경제 상황을 감안하여 재단은 이 전시회 및 도록, 관련 프로그램에 결정적인 지원(기존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기금 수익금과 함께)을 제공했다.
이번 전시회는 3년이 넘게 진행된 협상과 연구 및 준비 작업의 정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한국 미술사의 서로 다른 시기에 초점을 맞추는 전시회를 기획했고, 그 첫 번째로 조선 전기를 택했다. 이번 전시회뿐 아니라 시리즈 전체를 위해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을 주요 대여처로 확보하고 싶었던 우리는 2006년 초부터 국립중앙박물관 측과 예비 협상을 시작했다. 또한 삼성미술관 리움의 뛰어난 컬렉션도 전시회가 성공하는 데 필수라고 여겼으며, 곧이어 삼성미술관 리움도 우리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 미술품을 대여해준 또 다른 한국 기관으로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동국대학교 박물관 및 도서관, 고령 신씨 영성군파, 호림 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 등이 있다.
우리는 시각적으로 탁월하고,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조선 전기 미술의 흥미진진한 조합을 한자리에서 보기 위해 한국 밖에서도 미술품을 대여하기로 했다. 일본에서는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미술관, 요메이분코(陽明文庫, 교토), 세이잔분코(靑山文庫, 고치), 규슈 국립박물관, 미국에서는 메리 & 잭슨버크 재단, 플로렌스 & 허버트 어빙 컬렉션, 보스턴 미술관, 클리블랜드 미술관, 독일에서는 쾰른 동양미술관이 참여했다.
전시품 대여 협상의 시도와 성공 뒤에는 알려지지 않은 몇몇 뒷이야기가 있다. 다른 곳에서 불교 회화를 대여해주겠다는 약속이 깨지자 우리는 다소 뒤늦게 쾰른 동아시아미술관과 접촉했다. 그리고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동료들의 제안과 귀중한 도움 그리고 쾰른 측의 관대함에 힘입어 너무나 아름다운 불교 회화 두 점을 대여할 수 있었다. 신숙주 초상화와 관련해서도 뒷이야기가 있다. 원래 우리는 좀 더 잘 알려진 15세기 장말손의 초상을 대여하려고 했다. 그러나 장말손 후손 원로들이 선조의 초상이 해외로 나가는 것으로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관을 갖춘 조선 전기 선비 초상화의 진수를 다른 곳에서 찾아야 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조선 전기 초상화 작품이 너무나 적었기 때문에 이는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신유학자이자 정치가의 표본인 신숙주의 15세기 초상화가 이상적으로 보였다. 결국 우리를 대신하여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령 신씨 가문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초상화 상태가 좋지 않아서 다른 곳으로 가져가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령 신씨 영성군파가 현재 소장하고 있는 18세기 모사본의 대여를 논의했다. 이 작품은 비록 조선 후기의 것이긴 하나 원본을 충실하게 모사했고, 더구나 조선 전기 시대의 초상화와 관련하여 ‘원본’ 대 ‘모사본’의 개념 같은 주요 쟁점을 부각시키는 기회도 제공했다.



전시회는 소수의 강력한 작품으로 꾸민 극적인 도입부에 이어 확연히 구분되면서도 서로 연관된 다섯 가지의 주제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섹션 ‘과거에 구애하다(Romancing the Past)’는 이전의 고전 전통, 특히 송대(960~1279)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가 조선에서 부활한 것을 보여준다. 15세기에 이르러 이런 풍경화 전통을 부활시키고 변화를 준 이들은 명나라 시대와 동시대인이라기보다는 안견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린 조선의 화가들이었다. 제2섹션 ‘선비의 본질(Literati Essentials)’은 사대부 관리들의 회합을 그린 계회도(契會圖)를 선보이는데, 이것은 직업적관계나 학연으로 묶인 사람들(이런 관계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반향을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의 사교 모임을 묘사한, 특별히 한국적인 미술 장르의 하나다. 이들 그림을 보완하여 나전칠기 문방도구와 청아한 자기병 같은 선비들의 미학적 도구가 함께 전시되어 있다.
제3섹션 ‘왕가의 가계(Royal Pedigree)’는 왕가에서 기른 강아지와 매를 그린 독특한 그림으로 유명한 이암을 포함하여 뛰어난 왕족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백자를 포함하여 왕실의 취향을 보여주는 자기도 이 섹션에 전시되어 있다. 제4섹션 ‘탁월함의 용기들(Vessels of Distinction)’은 시선을 끄는 범상치 않은 자기와 분청자기 등 독특한 양식과 기능(유교 제례 의식이나 부장품 용도)을 가지고 있거나 유교미학의 이상을 구현한 도예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제5섹션 ‘숭배와 이상향(Worship and Paradise)’은 왕실을 위해 제작된 불교 미술 작품들을 보여주며 조선 전기 유교 사회에서도 계속된 불교의 존재와 연관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조선 미술사에서 놀랄 정도로 활기찬 시기였던 조선 전기에 대해 일반 대중과 학계의 이해가 좀 더 높아지길 바란다. 이를 위해 김자현(컬럼비아대), 홍순표(이화여대), 장진성(서울대) 교수의 권위 있고 이해하기 쉬운 소논문이 들어 있는 도록도 발간했다. 모든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게 분명한 좋은 글을 기고해준 공저자들에게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싶다. 또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기획하고 있는 이 전시회 시리즈(각각의 전시회는 한국사의 특정한 시기에 이룩한 예술적 성과를 부각시키고 규정할 것이다)가 한국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대중, 특히 북미인들의 이해와 평가에 변화를 가져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