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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한 우호 관계와 문화 교류를 이끄는 선구자가 되겠습니다”

나는 중국 허난(하남) 성의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났으며, 1984년에 내가 태어나서 자라난 고향 마을을 떠나 카이펑(개봉)으로 몸을 옮겨 허난대학 역사학과에 입학했다.4년 뒤에 대학 생활을 뒤로하고, 상하이 소재 화둥(화동) 사범대학교 역사학과에 석사생으로 입학하여 아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의 근대사를 전공했다. 석사 과정을 공부하는 중에 지도교수님께서 내게 일찍이 상하이에서 활동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사항을 연구해볼 것을 권유하신 것을 계기로 나와 한국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한국 유학의 꿈을 실현시켜준 한국국제교류재단
3년여의 석사 과정 기간 동안, 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공부했지만 당시 한국사 관련 서적은 매우 적었다. 그때 만일 앞으로 한국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어 서적들을 보고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93년 나는 상하이에서 전 고려대학교 총장 김준엽 선생님을 뵙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 이때 김준엽 선생님을 통해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한국어 펠로십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한국어 펠로십 신청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1993년 12월에 나는 재단의 입학 선정 통지서와 함께 수속 절차에 필요한 관련 서류들을 수령했다. 그리고 1994년 4월 3일, 드디어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서 오랜 기간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꿈을 마침내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 도착 이후 나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의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다 고려대 한국사 박사 과정에 입학했다. 타향에서 힘겨운 학업생활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으나 다행히도 한국국제교류재단은 나와 같은 유학생들을 위해 풍부하고 다채로운 활동을 준비해주었고, 덕분에 머나먼 조국을 떠나온 유학생으로서 생활의 답답함과 고향에 대한 향수를 떨쳐버릴 수 있었다. 우리 모두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을 한국에 있는 ‘우리 집’ 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재단에서 제공해준 활동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1994년 11월에 있었던 한국의 남부 지방 문화 여행이었다. 이 문화 여행은 내게는 첫 번째로 한국의 지방 도시를 여행하는 기회였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직접 찾아가기 힘든 한국의 고대 역사 유적을 볼 수 있었던 행운의 기회였다. 지금도 그때의 문화 여행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다.
그 후 나는 한국국제로터리문화장학재단 및 한양로터리클럽의 도움으로 마침내 박사 과정을 마칠 수 있었으며, 이로써 중국인으로 한국에서 인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첫 번째 유학생이 되었다. 재단의 도움으로 나의 한국 유학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이었기에, 나는 졸업 논문을 가지고 재단을 방문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한국 연구의 꿈
졸업 후 나는 중국의 명문 대학인 푸단(복단)대학 역사학과 교수가 되었다. 내가 막 푸단 대학에 왔을 때, 역사학과 수업 과목 중에는 한국사 과정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한국사에 대해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후 수년 간의 노력을 거쳐, 한국사 수업을 신청하는 학생 수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고, 학생들 사이에서 한국사 수업의 인기도 높아졌다.
석사 과정에서도 한국사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이 생겨 지금까지 6명의 학생이 한국사를 전공했고, 이 학생들은 졸업 후 각처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또 이들이 가르친 학생들은 더 많은 학생들에게 한국사를 가르치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면 한국을 이해하는 중국 젊은이들이 점점 늘어날 것이고, 중한 양국의 우호 관계 발전을 위한 초석은 더욱 더 공고해질 것이다.
2007년 나는 <근대천진한인사회연구(近代天津韩人社会研究)>라는 연구 주제로 한국국제교류재단에 체한 연구 펠로쉽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이 신청이 받아들여져, 그해 3월 재단의 도움으로 다시 한국 땅을 밟게 되었다. 당시 나는‘집으로 돌아왔구나’하는 감회를 느꼈다.
한국국제교류재단 및 여러 선생님들의 아낌없는 지원을 바탕으로 나 자신 역시 중국의 청년 학생들이 한국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한다면, 중한 양 국민의 우의를 증진시키는 일은 더욱 순조롭게 발전해갈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주요 업무는 해외 한국학 연구의 발전을 지원하고, 한국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한국과 세계 여러 나라 국민들과의 발전적 우의를 도모하는 일이다. 내가 한국사를 강의, 연구하는 목적도 중국 학생들의 한국과 한국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촉진시키고, 중한 양 국민의 우의를 증진시킴으로써 중한 양국의 문화 교류를 강화하는 데 있다.
대학교수 한 사람의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여전히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사와 한국 문화를 가르칠 것이고, 나의 학생들도 자신들의 학생들에게 한국사와 한국 문화를 가르칠 것이며, 나의 학생들의 학생들 역시 그들의 학생들에게 한국사와 한국 문화를 가르칠 것이다. 이러한 고리가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갈수록 많은 중국의 젊은 학생들이 한국을 알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함으로써 중한 우호 관계의 발전은 견실한 기초를 다져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사람의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지만 미약한 힘으로나마 중한 우호 관계 발전과 문화 교류를 위해 노력하는 민간 사절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이는 매우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며 앞으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한국국제교류재단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앞으로 중한 양국 국민의 우호 관계 발전과 문화 교류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선구자를 더 많이 키워나갈 것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