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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미디어

음식 배달 서비스

  • 조회수 257
  • 행사기간 2016.08.16 - 2016.08.16
  • 등록일 2016.08.16

LIFE

LIFESTYLE 음식 배달 서비스

한국 가정에는 외식과 집밥의 중간 지대에 ‘시켜먹는 밥’이라는 선택이 있다. 주문 가능한 음식도 패스트푸드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전통 한식의 국, 찌개류까지 매우 다양하다. 최근에는 메뉴 선택과 가격 비교, 할인 적용 주문부터 결제까지 간편하게 해결해주는 음식배달 어플리케이션들이 등장해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한국에서 살아본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기억하게 만드는 특별한 경험 중 하나가 음식을 집으로 주문해 먹었던 일일 것이다. 음식을 집으로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음식 배달 서비스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적 요소들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한밤에도 휴일에도 주문할 수 있다
우선, 배달료가 따로 붙지 않는다. 집에 온 배달원에게 팁을 주는 관행도 거의 없다. 다음으로, 다른 나라에도 피자, 샌드위치 정도 간편식의 배달 주문 시스템이 있지만(대개 배달료와 팁이 청구될 것이다), 한국에서 배달 주문이 가능한 음식 종류는 놀랍도록 다양하며, 매우 신속하게 가져다줄 뿐 아니라, 밤늦게까지, 아예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곳도 흔하고, 심지어 휴일에도 영업을 한다. 중식이나 한식의 경우 1회용 포장이 아니라 일반 식기에 담아다 주고 먹고 난 뒤 다시 찾아가는 점도 특징이다.
아파트 1층의 전단함에는 흔히 할인쿠폰까지 첨부된 다양한 인근 음식점 전단들이 꽂혀 있고, 인터넷은 이용자의 집 근처 배달 음식점들에 관한 정보를 더 자세하게 제공해준다. 더욱 화끈한 최신의 방법은 주문 전화를 거는 과정조차 생략해준다. 스마트폰 배달 어플리케이션으로 메뉴 선택에서 주문, 결제까지 클릭 몇 번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배달 음식의 역사
역사책에 기록된 한국 최초의 배달 음식은 ‘효종갱(曉鐘羹)’이다. 효종갱이란 ‘새벽 통금 해제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 먹는 해장국’이란 뜻이다.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 최영년(崔永年)이 1925년에 펴낸 『해동죽지(海東竹枝)』에서는 효종갱에 대하여 “광주 성내 사람들이 잘 끓인다. 배추속대, 콩나물, 송이, 표고, 쇠갈비, 해삼, 전복에 토장을 풀어 온종일 푹 곤다. 밤에 국 항아리를 솜에 싸서 서울로 보내면 새벽종이 울릴 무렵에 재상의 집에 도착한다. 국 항아리가 그때까지 따뜻하고 해장에 더없이 좋다”고 조선시대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조리된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다는 것은 근대 상업문화의 특징이니, 조선시대에 미세하게나마 이미 근대 자본주의의 맹아가 움트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후 조선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서구 근대를 수용한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근대화의 변화를 겪게 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강제적으로 근대 자본주의 체제를 수용하면서 농촌 지역을 떠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찾아 든 지역민들로 인해 도시의 문화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특히 개항장이었던 인천은 평안도와 황해도, 충청도 지역에서 모여든 이주민들, 일본과 중국에서 이주해온 외국인들로 인해 음식 문화도 영향을 받았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한국화된 중국음식의 대명사 ‘짜장면’이고 다른 하나가 이북의 대표적인 겨울 음식 ‘냉면’이었다. 북한 지역의 대표적인 겨울음식이었던 냉면을 사시사철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공장에서 얼음을 생산하면서부터였다. 인천은 항구도시였기 때문에 얼음공장이 일찍이 세워져 얼음을 대량으로 구할 수 있었다.
한국 사진사의 산증인인 원로 사진작가 김석배(金碩培, 1925년생) 선생은 자신이 14살 무렵이던 1938년 밤참으로 인천에서 서울 을지로입구까지 냉면을 배달시켜 먹었던 기억을 회고한 바 있다. 당시 서울에도 종로3가(극장 단성사 앞)와 청진동에 냉면집이 있었지만, 인천이 냉면의 명소였기 때문에 굳이 100리 길이 넘는 인천에 전화로 배달을 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진귀했던 음식 배달문화는 태평양전쟁 말기에 이르러 일시적 단절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군수품 조달로 인해 식량마저도 배급제를 실시하게 되었고, 더 이상 식당영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음식 배달 문화의 맥이 끊기고 말았던 것이다.

음식 배달 문화가 발달한 이유
한국에서 음식 배달 문화가 특별히 발달한 배경에는 한국 사회가 압축적 근대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이른바 ‘빨리 빨리 문화’가 있다. 1945년에 찾아 온 해방 직후에는 분단과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을 다시 한번 경험했지만, 빠른 시간에 세계경제 교역규모 10위권의 중강국(中强國)으로 성장했다. 그 과정에서 ‘빨리 빨리 문화’는 1960년대의 경제도약과 1980년대의 민주화로 근대화의 두 가지 과제를 모두 해결하는 저력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고도성장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한국인들은 밤늦게까지 일했고, 밥 먹으러 갈 시간도 아껴가며 일해야 했다.
한국의 시장 환경이 이를 뒷받침했다. 업계의 전문가들은 한국은 음식 배달에 적합한 인구밀도, 배달 음식을 즐기는 야식 습관 등이 있어 현재와 같은 배달 시스템이 자리 잡는 데 큰 몫을 했다고 분석한다. 배달 서비스는 배달 가능한 거리 내에 충분한 수요가 있어야만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즈음에는 국내 경기 하락에 따른 실업률 증가와 베이비부머 세대의 조기 은퇴로 인해 외식산업으로 유입되는 노동인구는 늘어나고 있지만 외식산업의 성장은 정체된 상황에서, 경쟁이 심화된 시장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배달 서비스가 더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배달 앱의 등장
이처럼 음식 배달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지난 2010년부터 이용자의 위치 정보를 기반으로 배달이 가능한 음식점 정보를 제공하는 어플리케이션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이른바 ‘배달 앱’의 등장이다.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되면서 이 서비스는 소비자와의 연결성을 강화해나갔다. 음식점 이용후기 작성을 비롯해 결제, 할인 혜택 제공 등 다양한 기능이 연동되기 시작했다. IT강국답게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은 한국의 소비자들은 스마트폰을 통한 새로운 서비스 이용에 익숙하다.
한국외식산업연구원의 ‘2013 외식 트렌드 조사’ 에서 이미 소비자의 84.2%가 모바일 기기 보급으로 외식생활이 변했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53.5%는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음식점 정보를 수집하고, 25.3%는 앱을 내려 받아 수시로 새로운 음식점과 메뉴를 체크한다고 답했다. 배달 어플리케이션 문항을 신설한 2014년의 같은 보고서에서는 응답자의 18.2퍼센트가 배달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사용 연령대는 아직 2-30대에 집중되어 있었다.

현재 30~40개에 이르는 배달 앱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상위 3개 서비스인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 ‘배달통’을 포함한 배달 앱 누적 다운로드 수는 4,000만 건을 넘었다. 특히 ‘배달의 민족’ 앱은 접속만 하면 위치, 주문자 정보 등을 별도로 입력하지 않고도 곧바로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직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위치기반 서비스 동의 절차를 거치면 휴대폰의 개인 정보가 그대로 연동되는 시스템이다). 이것은 사물인터넷이라는 첨단 네트워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배달 어플리케이션 회사들은 국내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이제 한국의 배달 문화에 단지 즉각적인 욕망 해소라는 가치 이외에도 새로운 가치를 더하기 위한 연구도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에게 야식이나 배달음식이란 혼자 먹기 위한 것이기보다 가족, 또는 함께 일하는 동료와 나눠먹는 음식 문화에서 유래한 것이란 사실에 유념하여 보다 인간적인 가치, 공공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도록 발전해나갈 필요가 있다.

‘2014년 외식 트렌드 조사’ 보고서에서는 응답자의 18.2퍼센트가 배달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현재 30~40개에 이르는 배달 앱들이 서로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2010년 첫 등장 이래 누적 다운로드 수는 4,000만 건을 넘었다.

전성원(Jeon Sung-won 全盛源)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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