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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미디어

소설, 평화와 사랑을 부르는 마술

  • 조회수 212
  • 행사기간 2017.01.10 - 2017.01.10
  • 등록일 2017.01.10

문학산책

문학 산책 평론 소설, 평화와 사랑을 부르는 마술


“어떤 일이 마술이고 어떤 일이 마술이 아니겠는가? 지금 벌어지는 일들이, 어쩔 수 없는,
결코 바꿀 수 없는 단단한 현실이라고 믿는, 그 마음은 얼마나 속지 않고 있는 걸까?”

<거리의 마술사>는 김종옥(金鍾沃 Kim Jong-ok)의 201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그의 문단 데뷔 작품이자 이듬해 ‘젊은작가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젊은작가상’은 등단 10년 이내 작가들이 한 해 동안 발표한 중단편소설을 대상으로 출판사 문학동네가 시상하는 상이다. 그러니까 길게는 경력 10년에 이르는 선배 작가들을 제치고 신인 작가의 등단작이 비중 있는 문학상을 받은 것. 이 작품의 어떤 특별함이 그런 ‘마술’을 부린 것일까.
이 소설은 학교 내 집단 따돌림 문제를 다룬다. 남우라는 학생이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학교 창턱에서 뛰어내려 숨진 사건을 그의 급우인 여학생 희수의 시점에서 재구성하는 것이 소설의 얼개를 이룬다. 희수는 남우를 괴롭혀 결국 자살하게 만든 것으로 지목되는 또 다른 급우 태영의 엄마 친구인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사건을 복기하는 한편, 죽음에 이르기까지 남우의 학교 생활을 기억 속에서 되살려내고 반추한다.
피해자의 죽음으로 귀결된 집단 따돌림 사건이라면 가해와 피해, 선과 악의 구분이 단순하고 사건의 전후 관계 역시 명쾌해야겠지만, <거리의 마술사>는 그런 뻔한 접근법을 택하지 않는다. 작가는 가해자나 피해자가 아니라 제3자인 희수의 시점을 택함으로써 윤리적 단죄에서 벗어나 사건을 다층적이고 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거리와 여유를 확보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죄 없는 어린 학생의 죽음까지 불러온 긴박한 사태에 대한 무책임한 방관을 옹호하는 태도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 남우가 창턱에서 뛰어내려 바닥에 떨어진 순간, “세상이 일순간 아주 평화로워진 것 같았다”거나 “이 세상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는 희수의 기억을 도덕적 해이나 윤리 감각의 마비로 타매할 일은 아니다. 이어지는, “남우가 그들 모두를 대신해서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라는 문장은 남우를 희생양 내지는 대속자(代贖者)로 보는 희수의 관점을 짐작하게 한다.
작가 역시 남우를 희생양 내지는 대속자로 보는 것일까? 소설의 초점 화자인 희수의 관점과 작가의 그것이 동일한 것인지 여부는 다양한 해석과 논란의 대상이 될 법하다. 희수가 남우의 죽음에 대해 어떤 간접적인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남우는 왕따는 아니었어요. 그냥 친구가 없었을 뿐이죠”라거나 “우리가 남우를 따돌린 게 아니라 남우가 우리를 따돌렸다고 볼 수도 있겠죠”라는 말로 사태를 미화하고 모호하게 만든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희수는 역시 소설 속 등장인물들 가운데에서는 가장 남우에게 우호적인 인물이라 보아야 한다. 그녀가 남우에 대한 이해와 애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점을 탓할 수는 있겠지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범 내지는 살인 방조자로 희수를 ‘기소’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
소설 제목 <거리의 마술사>는 남우가 거리에서 목격했다는 마술사를 가리킨다. 남우에게 마술사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일어나게” 하는 인물로 비친다. 희수에게 그 마술사를 목격한 이야기를 하던 끝에 남우는 “내가 마술을 보여줄게”라고 말하는데, 그가 보인 일련의 행동이 그가 말한 ‘마술’이었음을 독자는 소설 말미에 가서야 알아차리게 된다.
소설 마지막은 희수 자신이 거리의 마술사를 만나고 그를 통해 자신이 간직해 온 남우라는 이름과 그에 대한 애틋한 기억을 마술적으로 재확인하는 장면으로 처리된다.

그러나 이 마지막 장면마저도 현실인지 아니면 그저 상상일 뿐인지를 독자는 알 수가 없다.
희수가 가해자도 아니고 방관자도 아니라고 앞에서 말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모종의 윤리적 잣대 구실을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변호사와의 대화에서 희수는 “마치 기적처럼 평화가 가득한 그런 세계가 어딘가 있겠죠. (…) 누군가, 어떤 힘이, 선한 힘이 그런 장소를 만들고 지켜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여기까지만 해도 어린 학생다운 순진한 공상 내지는 바람의 차원이라 하겠는데, 이어지는 발언은 철학적 깊이를 지니고 독자에게 다가온다: “선은 악을 바라보는 눈이 없으면 볼 수 없어요. 악을 통하지 않으면 볼 수 없어요.” 태영이라는 구체적인 가해자라기보다는 집단 따돌림이라는 현상과 그 본질 곧 악을 직시하고 어떤 식으로든 그에 맞서는 것이 선을 확인하고 또 확보하는 길이라는 생각. 어린 학생답지 않은 이런 냉철한 판단과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는 뜨거운 눈물은 희수를 신뢰할 만한 화자의 자리로 끌어올린다. ‘젊은작가상’ 수상을 계기로 쓴 짧은 산문에서 김종옥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마술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일순간 평화로워지는 마술, 모두가 모두를 사랑하게 하는, 서로의 이름을 가장 애타는 목소리로 부르게 하는 마술.”
남우가 보여주었고 희수가 보았던 마술은 사실 작가 김종옥이 소설로 보여준 마술이 아니겠는가. 소설이라는 마술에 대한 그의 매혹과 신념은 이 작품을 포함해 단편 열두 편을 묶어 2015년에 낸 그의 첫 소설집 <과천, 우리가 하지 않은 일>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최재봉 (Choi Jae-bong, 崔在鳳) 한겨레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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