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아츠&미디어

더 깊은 소리, 따뜻한 소리를 찾아서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 조회수 213
  • 행사기간 2017.04.25 - 2017.04.25
  • 등록일 2017.04.25

문화 예술

인터뷰 더 깊은 소리, 따뜻한 소리를 찾아서: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전제덕은 스승도 악보도 없이 오로지 청음에만 의지해 홀로 하모니카 연주를 터득했고, 2004년 데뷔 이래 하모니카를 단순 소품 악기에서 주류 솔로악기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으며 꾸준히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왔다.

전제덕은 스승도 악보도 없이 청음에 의지해 독학으로 정상에 오른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이다.

태어난 지 보름 만에 열병으로 시력을 잃은 전제덕(Jeon Je-duk 全齊德)은 두 눈 대신 소리로 세상을 느낀다. 그를 세상과 소통하게 하는 건 한 뼘 남짓한 크기의 작은 하모니카. 하모니카를 입에 물면 별이 뜨고 꽃이 핀다. 그리고 그는 어느덧 하늘을 날고 있다. 그 희열을 그는 직접 노래로 불러 음반에 실었다.

“하모니카 입에 물면 내 가슴엔 별이 뜨고/ 외로운 소리 위로 꽃이 핀다네/.../ 하모니카 소리 따라 올라가/ 저 하늘 외로운 구름이 될까.”
(1집 수록곡 ‘나의 하모니카’ 중)

하모니카를 처음 입에 문 지 꼭 20년이 된 2016년 11월, 그는 한국인 최초로 ‘호너 아티스트’가 됐다. 독일에 본사를 둔 호너는 세계 최고의 하모니카 브랜드다.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 클래식 하모니카의 전설 토미 레일리, 포크 가수 밥 딜런, 비틀스의 존 레넌 등이 대표적인 호너 아티스트다. 세계적인 음악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전제덕을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음반의 성공과 실패
서정민: 호너 아티스트로 선정된 걸 축하합니다.
전제덕: 감사합니다. 좋은 일이죠. 다만, 예전에 내가 발표한 하모니카 음반이 한창 사람들에게 들려질 때 선정되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물론 인정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고 이번 선정은 분명 보람된 결과이지만 전제덕은 호너 아티스트 선정 자체를 대단히 기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신이 10여 년 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는 몰라주다가 왜 이제야, 하는 서운함 같은 것도 살짝 느껴졌다. 내가 전제덕을 처음 접한 건 2004년 1집 음반을 통해서였다. ‘정말 하모니카 맞아? 하모니카로 이렇게 펑키한 소리도 낼 수 있었나?’ 하고 감탄하며 음반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더 놀라웠던 건 앞을 볼 수 없는 장애를 딛고 높은 완성도의 음반을 만들어냈다는 거였다.
서: 2004년 첫 음반이 큰 관심을 받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전: 국내에 하모니카 연주 음반이 없었던 상황이고, 또 내가 앞이 안 보인다고 해서 신기해하는 것도 있고. 어쨌든 일간지 열세 군데 인터뷰도 하고, 한국대중음악상 재즈 크로스오버 부문 상도 받고 그랬죠. 그때는 날아갈 것 같았어요. 하모니카도 많이 팔렸다고 들었구요. 좋았던 한 시절입니다.
서: 1집 성공 이후 2년 뒤 2집 앨범을 발표하셨는데 놀라운 변신을 시도하셨습니다. 일렉트로닉 사운드와의 접목에 흑인음악 가수, 래퍼와의 협연도 들어 있었죠. 트렌디하고 실험적인 성격이 돋보였는데, 대중과 언론은 1집만큼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요. 전형적인 소포모어 징크스….
전: 왜 하모니카는 피아노, 베이스와 해야만 하나?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해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행동에 옮겼죠. 그런데 변신의 폭이 너무 컸나 봐요. 나는 만족했지만 듣는 분들이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음악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 처음 스타일을 고수하는 게 대중에게 집중적으로 어필하는 데 유리하지만 음악 하는 입장에서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걸 경계하게 되고. 변화를 시도했는데, 결과적으론 잘 안 돼서 안타까웠습니다.

“공연 때, 특히 스윙 연주를 할 때는 예전에 라이브 클럽에 놀러 가서 뭣도 모르고 막 연주하던 순간을 떠올리곤 해요. 그때 실력은 부족해도 열정만은 대단했죠. 발라드를 연주할 때는 주로 자연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야외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혹은 눈을 맞으며 연주하는 느낌으로.”

사물놀이에서 하모니카 연주로
성공하든 실패하든 앨범과 앨범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변신을 꿈꾸는 전제덕. 사실 그 자신이 살아온 삶과 음악이 변화와 역동 그 자체였다. 하모니카와 만나기 전 그가 본격적으로 음악에 발을 들인 건 전통음악 사물놀이를 통해서였다. 장애인 특수학교에 다니던 시절 선생님이 사물놀이 소리를 들려주며 해볼 것을 권유했다.
서: 사물놀이로 꽤 인정을 받으셨지요?
전: 앞을 못 봐도 앉아서 장구를 칠 수 있어요. 열심히 해서 대회에 나가 상도 받았어요. 하지만 앉아서 연주하는 점이 결국 한계가 되었지요. 1부에서 앉아서 하다가도 2부가 되면 놀이의 측면에서일어서서 흥겹게 연주하며 상모도 돌리고 해야 하는데, 나는 그걸 할 수 없으니까요. 결국 그런 점이 나중에 그만두게 되는 요인이 됐지요.
서: 사물놀이 할 때 다른 음악에도 관심이 있었나요?
전: 10대 때 스티비 원더의 ‘수퍼스티션’을 듣고는 며칠 동안 잠을 못 잤어요. 다른 세계의 음악, 그 느낌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했어요. 나는 사물놀이를 하는 사람인데, 나도 저런 걸 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서: 내가 아는 전제덕은 흥이 넘치는 음악가입니다. 리드미컬하고 신나는 음악을 좋아하고요. 이런 성향이 사물놀이에서 하모니카 연주로 이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하모니카로도 들썩거리는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하는 게 음악에서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런데 하모니카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됐나요?
전: 1996년 라디오에서 우연히 벨기에의 재즈 아티스트이자 하모니카 연주자 투츠 틸레망의 따뜻하고 감미로운 발라드 연주를 들었습니다. 그때까지 듣던 날카로운 하모니카 소리가 아니어서 ‘하모니카가 이런 소리를 내나? 저 정도 연주 속도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하모니카를 샀어요. 아마 빠른 곡이었다면 엄두를 못 냈겠죠. 하지만 막상 불어보니 느린 곡도 전혀 쉽지 않았어요.
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거네요.
전: 독학으로 연주를 터득했어요. 계속 불어서 입술이 터지고 혀도 까지고 그랬죠. 사물놀이 공연을 할 때가 아니면 내내 하모니카와 살았어요. 어느 순간 사물놀이에 대한 진전이 없어졌고, 그 열정이 하모니카로 옮겨갔어요.

전제덕이 2015년 12월 16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열린 “전제덕, 나의 하모니카” 콘서트에서 그의 밴드와 함께 연주하고 있다. (유창호 Yoo Chang-ho 사진)

투츠 틸레망을 보내며
그가 속해 있었던 사물놀이패가 해체된 뒤 전제덕은 광고와 드라마 음악, 가수 음반 녹음에서 세션 연주자로 하모니카를 불었다. 두어 해 그렇게 활동하던 중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 음반 녹음에 참여하다 솔로 음반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1집과 2집을 연이어 내고는 오랜 침묵에 들어갔다. 중간에 음악적 욕심은 잠시 내려놓고 대중성을 의식한 가요 리메이크 앨범을 하나 내긴 했다.
서: 2014년 3집을 내기까지 그 오랜 시간을 어떻게 지내셨나요?
전: 곡을 쓰는 게 쉽지 않았고, 신곡 담은 음반을 내는 것만이 음악 활동의 전부인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공연하는 게 재미있어서 그쪽에 치중하기도 했구요. 그러다 좀 더 깊은 소리로 자연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어요. 그런 바람을 담아 3집을 냈어요. 투츠 틸레망의 소리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가지고 가야 할, 따뜻한 소리.
서: 당신의 오늘을 있게 한 투츠 틸레망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전: 2004년 내한공연 왔을 때 공연이 끝나고 대기실에서 잠깐 만났어요. 음반에 사인을 받고 나서 나도 하모니카 연주자라고 했더니 “그래? 열심히 해봐라. 하모니카는 좋은 악기다”라고 격려해줬어요. 잠깐이었지만 그 만남이 참 좋았습니다.
서: 투츠 틸레망이 2016년 8월 세상을 떠나자 12월30일에 헌정공연을 했지요?
전: 콘서트 제목이 ‘Bye, Toots’. 존경했던 한 아티스트를 나만의 방식으로 떠나 보내는 마음으로 공연했어요.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그 공연을 통해 마음속에 품어온 아티스트를 하늘나라로 잘보냈습니다. 투츠 틸레망으로 20년 동안 나를 지탱해왔어요. 물론 앞으로도 그럴 거지만.
서: 하모니카의 매력이 뭔가요?
전: 하모니카에는 따뜻함, 부드러움이 있고 귀여운 이미지도 있어요. 투츠 틸레망이 가르쳐줬어요. 그는 바로 곁에서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 들게 연주했어요. 블루스 하모니카 연주자는 전기기타도 이기는 힘을 느끼게 해줘요. 이와 대조적으로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듯한 투츠 틸레망의 하모니카 소리, 그게 궁극적으로 내가 실현하고자 하는 음악입니다.
서: 연주할 때는 대체로 어떤 감정에 몰입하나요?
전: 공연 때, 특히 스윙 연주를 할 때는 예전에 라이브 클럽에 놀러 가서 뭣도 모르고 막 연주하던 순간을 떠올리곤 해요. 그때 실력은 부족해도 열정만은 대단했죠. 발라드를 연주할 때는 주로 자연에 대한 생각을 합니다. 야외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혹은 눈을 맞으며 연주하는 느낌으로.
서: 만약 앞이 보였더라면 음악적 표현이 달라졌을까요?
전: 그랬다면 더 많은 정보가 들어왔겠지요. 그렇다고 음악이 더 좋아질 거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내 몸이 느낄 수 있는 것, 내 감각이 느낄 수 있는 것을 표현하는 게 나의 음악이고,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걸 남들한테 소리로 들려주는 것이 내 음악이니까요.
서: 하모니카 연주자로서 평생의 꿈이 있다면?
전: 사운드에 이야기가 담긴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5분짜리 곡에도 기승전결이 뚜렷한 음악. 단편소설 하나, 뮤지컬의 한 장면, 이런 걸 음악으로 들려주는 겁니다. 나에게는 얘기가 되는 소리들이 있어요. 예컨대 교통사고가 나고 사람들이 뛰고 구급차가 등장하고, 그러면 스토리 하나가 나옵니다. 그런 걸 음악적으로, 철학적으로 표현하고 싶어요. 그런 음악으로만 꽉 짜여진 공연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검은 안경 너머 그의 눈빛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을 것만 같았다. 꿈을 말할 때 그는 살짝 흥분한 듯 들떠 올랐다. 인터뷰 초반, 한참 스포트라이트 받던 때를 그리워하며 지금을 아쉬워하는 듯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어졌다. 하모니카로 울고 웃는 그에게 결국 꿈과 희망을 주는 건 역시 하모니카인가보다. 문득 하모니카 입에 물면 별이 뜨고 꽃이 피고 하늘을 난다는 그의 노래가 다시 떠올랐다. 그는 이 순간 하늘을 날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서정민 (Surh Jung-min, 徐政珉) 씨네플레이 대표, 대중음악칼럼니스트

코리아나웹진

코리아나웹진 바로가기

코리아나 홈페이지에 방문하시면 10개 언어로 출판된 콘텐츠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