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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미디어

이춘숙 씨의 즐겁고 오래된 가위질

  • 조회수 48
  • 행사기간 2017.08.03 - 2017.08.03
  • 등록일 2017.08.03

생활

이 사람의 일상 이춘숙 씨의 즐겁고 오래된 가위질

좋은 미용사를 오래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미용사를 친구로 두었다면 그 행운은 당신의 것이다. 손님을 오랜 친구로 만드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미용사를 소개한다. 두세 시간 정도 머물다 가는 미용실을 편안히 쉴 수 있는 치유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그녀의 비결이다.

이춘숙 씨는 10시에 출근한다. 자신의 개명한 이름을 간판에 내건 서울 이문동 ‘이지은 미용실’로. 가게 안엔 거울 걸린 벽을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네 개씩 모두 8개의 미용의자가 놓여 있다. 이 자리들이 손님으로 꽉 채워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날마다 다르다. 어제가 오전부터 손님이 끊임없이 이어져 늦은 점심을 먹어야 했다면 오늘은 점심시간 이후 부쩍 손님이 몰리는 식이다.

미용실의 사랑방 손님들
홀의 한쪽에는 긴 탁자가 놓여 있다. 손님들의 쉼터다.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 염색약을 바른 머리를 랩으로 휘휘 감은 사람, 크고 작은 로드(rod)를 머리에 알록달록 매단 사람이 긴 탁자를 중심으로 둘러 앉아 잡지를 뒤적이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엷은 졸음에 빠져 있다. 탁자 위에는 커피, 과일, 사탕, 비스킷, 초콜릿 같은 간식거리들이 보인다. 겨울에는 한구석에 고구마를 아예 박스째 갖다 놓고 탁자에 고구마 굽는 기계를 올려둔다고 했다.
올해 62살인 이춘숙 원장은 26살에 미용 일을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쉬지 않았다. 인근 석관동에 터 잡아 오래 일하다가 그 지역이 재개발에 들어가는 바람에 이문동으로 옮겨왔는데 수십 년 단골손님들을 거의 잃지 않았다. 그들에게 미용실은 머리를 감거나 손질하고 두피 마사지를 받는 틈틈이 음식을 나눠먹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푸는 사랑방이기 때문이다.
“원래 동네 손님보다 멀리서 오는 손님이 더 많을걸요. 가까운 의정부에서부터 멀리는 천안, 대전, 심지어 광주에서도 와요. 그분들이 꼭 머리 손질만을 위해 오는 것은 아니죠. 얼굴 보려고 오고, 얘기하려고 오고…”라고 말하며 이 원장이 환하게 웃는다.

이춘숙 원장이 수십 년 단골손님들의 머리손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손님의 모발 건강이다. 그녀는 좋은 인상은 좋은 머릿결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스타일보다 중요한 머릿결
전에는 머리칼 손질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의 호칭이 ‘미용사’였는데 최근에는 ‘헤어디자이너’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 원장은 용모 전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기술자라는 의미의 예전 호칭을 더 좋아한다. 자신의 이름이 간판에 내걸기에는 촌스럽다고 여겨 좀더 현대적인 이름으로 바꿔 간판에 내걸었지만 새록새록 원래 이름이 훨씬 더 정답고 푸근하게 느껴지듯이.
몸이 야물고 행동이 민첩하고 피부가 흰 이 원장은 첫눈에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 “손님들 머리 모양을 예쁘게 가다듬는 일에 푹 빠져 지내다 보니 늙을 새도 없었나 봐요. 머리칼을 다루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롭고 잔잔해져요. 마무리할 때 성취감이랄까 묘한 기쁨이 찾아오고요.”
그는 사람을 볼 때 우선 머릿결부터 본다.
“나는 손님들의 머리칼을 아껴요. 펌은 일년에 세 번 이상은 절대 못 하게 해요. 어차피 내 손님이니까 머리칼 상하면 나만 손해잖아요. 아무리 스타일이 멋지고 좋은 옷을 입어도 머릿결이 나쁘면 초라해 보이거든요.”
머리칼에 대해서라면 할말이 넘쳐난다.
“머리칼도 늙거나 낡아요. 현미경으로 보면 속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어요. 좋은 단백질로 그 구멍을 채워주고 약산성을 유지해줘야 결이 좋아져요. 머릿결이 좋으면 커트만 잘해도 스타일이 살아나거든요. 머리 말리는 방법도 중요해요. 머리를 숙이고 마를 때까지 부드럽게 꼼꼼히 타올 드라이를 하는 게 가장 좋죠.”
그는 젊어서 한때는 가회동의 예식장 안에 미용실을 따로 운영할 만큼 번창한 적도 있었다. 수입도 많아서 교회 헌금으로 수백만 원을 내기도 했고 백화점의 VIP고객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사치도 누렸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결국엔 허망하데요. 남는 건 그저 손님들 머리를 예쁘게 손질해내는 기분 좋은 순간이라는 걸 알았어요. 머리칼을 만지면 손님은 대개 잠이 들죠. 그럴 때 가위질을 하고 있거나 두피 마사지를 하고 있으면 나도 참 편안해져요.”

“춘숙이의 머리 빗는 솜씨”
이 원장은 강릉의 바닷가 마을에서 자랐다. 고등학생 때부터 남의 머리 손질하는 것이 좋았다. 학교 가면 친구들의 머리를 노상 빗겨주곤 했다. “춘숙이가 머리를 다시 묶어주곤 했어요. 그러면 내가 묶은 것과는 다르게 뭔지 더 이쁘고 세련된 모양새가 됐죠.” 강릉여고 동창생인 손님의 기억이다. “춘숙이 머리 빗는 솜씨를 못 잊어서 평생 머리를 맡긴다”는 고향 친구가 이 동창생 말고도 여럿 더 있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직장 다닐 때 친척 한 분이 일본에 다녀오면서 전기 고데기를 선물했어요. 그걸로 아침에 머리를 빗고 나가면 다들 제 머리가 너무 이쁘다고 하는 거예요. 나중에는 여직원들이 제가 일하는 경리과에 와서 머리를 빗겨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직업으로 하면 어떨까 싶어 퇴근 후에 미용학원에 다니며 공부했어요. 그때는 미용사 시험 합격자 명단이 서울시청 게시판에 나붙었어요. 200명이 응시해서 11명이 붙었으니 꽤나 치열했지요.”
1981년에 처음 미용실을 열어 세월이 이만큼 흘렀다. 임신 중에 드나들던 손님이 아기 엄마가 되어 아이를 업고 오면 그 아기가 울어도 전혀 시끄럽지 않았다. 자신의 두 아이들도 미용실에서 키웠으니까. 대학생이 된 딸은 시간 날 때마다 엄마 미용실에 나와 일손을 거들곤 한다.

‘윤시내 머리’에서 ‘가볍고 젊게’
“직원이 보조까지 모두 7명이에요. 20년 넘게 같이 있는 언니도 셋이나 돼요. 이 언니들은 자기 손님이 각자 따로 있지요. 제가 월급을 주는 게 아니라 도구, 약품, 장소만 제공해요. 각자 수입에서 일부만 내게 떼어주고 개인사업자 형식으로 운영해요. 경력도 많고 솜씨도 좋아서 대충 한달 수입이 350-400만 원 정도 돼요. 제 몫은 그들보다 훨씬 못해요. 내 나이가 있으니 나를 보겠다고 찾아오는 단골들이 고마워서 하는 거죠.”
이 원장이 처음 미용실을 열었을 때는 머리칼을 되도록 부풀리는 ‘윤시내 머리’가 유행이었다. 펌이든 세팅이든 불륨을 어떻게 키우느냐가 관건이었고 그 기술로 미용사의 실력을 판가름하곤 했다. 같은 펌이라도 컬을 강조하고 한번 만들어진 컬이 오래 가는 것을 선호하던 시절이었다. 생머리 그대로 나다니는 사람들이 자칫 초라해 보였다. 그러나 점차로 자연스러운 헤어스타일을 선호하는 쪽으로 흐름이 바뀌어 요즘은 오히려 금방 미용실에서 나온 듯한 머리를 부자연스럽다고 기피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이 원장의 미감도 당연히 변해왔다.
유명 프랜차이즈 미용실들에 치이지 않으려면 소규모 독립 미용실들도 손님의 감각을 앞에서 이끌어가야 한다. 원하는 대로 잘라주되 결과는 그 이상이 돼야 한다. 파마 기법만 해도 해마다 새롭게 개발된다. 커팅 기법은 더 자주 바뀐다. 부지런히 배우고 익혀서 손님들에게 새로운 기분을 안겨줘야 한다. 최근에도 이 원장은 세미나에 참석해 올해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을 배워왔다고 했다.

이젠 머리칼만 만져봐도 안다. 그 사람이 고집이 센 사람인지 아닌지. 새로운 스타일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미용사는 머리카락이 아니라 마음을 만지는 직업이에요.”

이 원장이 새로 방문한 손님과 머리 모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녀의 작업은 손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귀 기울여 듣는 일로 시작된다.

“제 손님들이 나이가 든 분이 많아서 머리털이 가벼워 보여야 해요. 가볍고 젊게! 그게 올해 헤어스타일의 모토예요. 머리 모양에 보수적인 손님일수록 새로운 기술로 커팅을 해줘야 해요. 그래야 빗었을 때 어딘지 더 예뻐 보이거든요. 변화나 유행을 기피하는 손님에게 미세한 변화를 살짝 선물하는 겁니다. 같은 단발이라도 커팅법에 따라 느낌이 천차만별이니까요.”
미용사에게 머리를 통째로 내맡기는 사람과 자신이 원하는 모양을 요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반반의 비율이다. 예나 지금이나 연예인이나 잡지 모델의 머리 모양 그대로 해달라고 주문하는 손님도 많다. 그럴 때 본인의 두상과 얼굴형에 어울리지 않는 요구이면 부드럽게 설득하는 노하우도 필요하다.
이젠 머리칼만 만져봐도 안다. 그 사람이 고집이 센 사람인지 아닌지. 새로운 스타일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미용사는 머리카락이 아니라 마음을 만지는 직업이에요. 머리 손질하는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든 입을 꾹 다물고 있든 미용실은 치유의 공간입니다. 제가 휴게실을 크게 만들고 간식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도 같은 이유예요. 파마나 염색을 하려면 손님은 두세 시간을 머물고 갑니다. 그 시간 동안 ‘세상에서 젤 편안하다!’는 느낌으로 쉬게 해드리고 싶어요.”
이춘숙 씨는 내일도 아침 10시면 가게 문을 열고 손님들 간식거리를 탁자에 차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김서령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 대표
하지권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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