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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미디어

냉장고 속에서 부활한 기막힌 요리 vs 신선한 토크

  • 조회수 178
  • 행사기간 2017.08.03 - 2017.08.03
  • 등록일 2017.08.03

생활

연예 토픽 냉장고 속에서 부활한 기막힌 요리 vs 신선한 토크

냉장고 속은 주인의 식성, 취향, 생활 습관, 심지어 교우 관계와 연애 상태까지 보여주는 매우 사적인 공간이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그 영역의 금기를 깨고 유명인이 쓰는 실제 냉장고의 내용물을 코를 킁킁거리며 샅샅이 까발린다.
여기서 획득한 재료로 일류 셰프들이 제한된 시간에 자존심을 건 요리 대결을 펼치는 틈틈이 팝콘처럼 터지는 이야깃거리는 이 프로그램의 신선도를 끌어올린다.

최근 환경부에서 발표한 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한국 가정의 냉장고에는 평균 34종의 음식물이 보관되어 있으며, 그중에 채소류의 12.5퍼센트, 과일의 5.7퍼센트, 냉동식품류의 4.1퍼센트가 버려진다고 한다. 케이블 채널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는 유명 연예인, 스포츠 선수, 패션모델의 냉장고를 통째로 스튜디오로 옮겨와서 시청자 눈앞에서 문을 활짝 열어젖힌 다음, 그 안의 재료만으로 셰프들이 15분 요리 대결을 한다는 기발한 발상으로 요리 예능의 최고 히트작이 된 프로그램이다. 셰프테이너의 등장 “처치곤란 천덕꾸러기 냉장고 재료의 신분 상승 프로젝트!”
“대한민국 최고의 셰프들이 당신의 냉장고를 탈탈 털어드립니다!”
2014년 11월 17일, 첫 방송은 두 남자 진행자의 떠들썩한 오프닝 멘트와 함께 시작했다. 지난해 10월에 100회를 돌파하고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지금도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잘 담은 이 오프닝 멘트는 그대로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한 셰프는 첫 방송을 앞두고 제작진과 사전 모임을 한 뒤에 길게 가야 6회일 거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과연 어느 연예인이 자기 냉장고를 번거롭게 스튜디오까지 끌고 나와 공개할 것이며 자존심 강한 최고 셰프들이 요리 대결이라는 이런 포맷에 응할지, 또 15분 동안에 할 수 있는 요리가 몇이나 될지….
그러나 <냉장고를 부탁해>는 2015년을 쿡방(cook과 방송을 합친 말로써 요리를 소재로 한 예능 방송을 일컫는 신조어)의 해로 규정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JTBC의 간판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각종 상을 휩쓸었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아시아를 겨냥한 푸드 버리아어티 쇼에 주력하겠다며 설립된 한 컨텐츠 회사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만든 책임 프로듀서를 데려갔고, 중국 인터넷 기업 텐센트와 공동 제작한 리메이크 프로그램 <배탁료빙상>은 최근에 시즌2까지 방영되었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자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출연을 희망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고 최현석, 샘킴, 이연복, 미카엘 등 고정 출연 셰프들 또한 요리 실력을 넘어서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며 ‘셰프테이너’로 자리잡았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서 요리를 하는 사람이 소문난 식당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이름 있는 남자 셰프들이라는 점을 주목할 일이다. 여자 요리연구인이 나와 조근조근 요리 과정을 설명하는 전통적인 요리 프로그램과는 아예 출발이 다르다. 여자로는 미국의 요리학교 CIA를 나온, 메이저 리거 출신 야구선수 박찬호의 아내 박리혜가 유일했다. 한국의 쿡방은 남자들이 이끌고 있는 것이다.

연예인들은 뭐 해먹고 사나…
냉장고는 녹화 전날 게스트 의뢰인의 부엌에서 옮겨온다. 그들은 냉장고가 없어서 간밤에 맥주도 못 마시고 물도 못 마셨다고 투덜대곤 한다. 냉장고는 아이스박스에 옮겨 담은 내용물과 함께 이삿짐 차량으로 스튜디오로 옮겨진 다음 미리 찍어놓은 사진에 따라 원래 상태로 복원된다. 고무장갑까지 낀 MC들이 ‘수사’에 돌입하여 냉장고 주인과 짓궂은 실랑이를 벌이며 내용물을 탈탈 터는 과정이 프로그램의 전반부 웃음을 담당한다.
소녀시대 멤버 써니의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막걸리와 비닐봉지에 싸인 설렁탕이 나오고 ‘패셔니스타’로 알려진 방송인 김나영의 냉장고에서 개미가 죽어 있는 꿀단지가 나온다. 장어즙이니 양파즙이니 파우치에 담긴 건강 보조 식품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유통 기한이 몇 년씩 지난 식재료는 예사이고 뜯어먹고 남은 뼈가 그대로인 족발, 악취 나는 생선전, 곰팡이 꽃이 핀 고기, 물러서 잼이 되어가는 딸기 등을 보면서 연예인들은 뭐 해먹고 사는지 궁금해 했던 시청자들은 잘 나가는 아이돌도 들여다보면 끼니 챙겨 먹을 시간조차 없는 썰렁한 청춘들임을 느낀다. 그래도 텔레비전에 나간다는데 저렇게 정리 안 된 냉장고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을까? 제작진은 “그 집 냉장고의 가감없는 실상이 재미를 주는 요소라는 걸 알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가지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해명했다.
남편이 유명 셰프인 배우 소유진이나 빅뱅 멤버 지드레곤의 냉장고에서처럼 어란이며 송로버섯, 푸아그라, 캐비어 같은 진귀한 재료가 나와 셰프들을 흥분시키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유명인의 냉장고도 대체로 평균 한국인의 냉장고와 내용물에서 별 다를 게 없다는 걸 보여주며 본격 요리대결로 들어간다.

JT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한 ‘셰프테이너’들이 유명인사의 집 냉장고에서 나온 식재들료로 즉흥 요리 대결을 펼치고 있다.

최고 셰프들의 요리 대결
요리의 주제는 그날의 냉장고 주인이 주문한다. 한 가수는 콘서트를 앞두고 먹기에 좋은, 달지도 짜지도 맵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힘 나는 음식을 주문하고, 연로한 어머니 얘기를 하며 눈가를 적시던 탤런트는 어머니 생신에 만들어드릴 보양식을 배우고 싶다고 요청한다. 누군가에게 선물 받아 냉동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먹기에는 엄두가 안 나고 아까워서 버릴 수도 없는 옥수수나 반건조 오징어를 ‘부탁’하기도 한다.
여기서부터 프로그램은 요리를 소재로 한 스포츠 중계로 바뀐다. 15분에 맞춘 전광판 시계의 숫자가 숨가쁘게 변하고 셰프들의 칼질이 현란해진다. 진행자 김성주는 탁월한 스포츠 캐스터이기도 한 재능을 아낌없이 발휘해서 박진감 넘치는 중계를 펼친다. 그 자리에서 반죽한 생면으로 파스타를 만들거나 각종 약재를 넣은 돌솥밥을 짓고 수삼을 무치고 미역국을 끓여 한상 차리는 게 진짜로 15분에 가능할까?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는 장면에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품는 의문이 바로 그것인데 답은 ‘진짜’이다. 제한 시간의 압박감은 대단해서 셰프들이 손을 덜덜 떠는 장면도 심심치 않게 보이고 43년 경력의 중식 대가 이연복이 칼에 손을 베어 피가 나기도 한다.
마침내 완성한 음식을 냉장고 주인이 신중하게 시식하고 버튼을 눌러 승부를 결정한다. 이긴다고 해서 상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작은 별 모양의 배지를 하나 가슴에 달아줄 뿐인데 미슐랭 원스타를 받은 식당의 총괄 세프 출신인 한 셰프는 “미슐랭 별을 딴 것보다 더 기쁘다”고 즐거워했다.
방송 후에 화제가 되는 음식이 최고의 셰프들보다 오히려 유일한 아마추어 요리사인 웹툰 작가 김풍이 만든 것인 경우가 더 많다. ‘자취 요리’의 대가라는 캐릭터로 확실히 자리잡은 김풍은 엉성한 조리 과정에도 의뢰인의 입맛에 딱 맞춘 음식을 내놓아 갈수록 승률을 높이고 있다. 먹을 수 있는 식재료가 거의 없었던 인피니트 멤버 성규의 냉장고 편에서 그가 으깬 토마토와 달걀물만으로 만들어낸 초간단 해장 요리는 ‘토달토달’(토마토와 달걀에서 한 글자씩 딴 이름) 이라는 재미있는 이름을 얻었고 ‘SNS에서 가장 따라하기 좋은 음식’으로 꼽혔다.

대용량만큼 커진 재미
가정에서도 충분히 해볼 만한 15분 간단 요리 레시피를 전달한다는 것도 분명히 처음 제작 의도 중에 하나이기는 했다. 그러나 높은 시청률과 화제성에도 불구하고 이 프로그램에 나온 요리를 해 먹어봤다는 주부는 그리 많지 않다. 난다 긴다 하는 셰프들의 화끈한 정면 승부 끝에 나온 요리를 일반인의 부엌에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정확한 조리 분량을 제시하기 어려운 것 또한 아쉬운 점이다. 그러나 시청자들도 쏟아지는 쿡방 속에서 요령껏 필요한 대목을 챙긴다. 이를테면 간단 레시피는 <집밥 백선생>이나 <오늘 뭐 먹지>, <삼시 세끼>에서 구하고 <냉장고를 부탁해>에서는 아이디어와 소스, 플레이팅을 눈여겨본다는 식이다.
1960년대에 처음 등장할 때 용량이 120리터였던 한국의 가정용 냉장고가 점점 대형화하더니 이제는 문이 네 개 달린 900리터가 넘는 것도 나온다. 식구 수가 줄고 1인 가구가 늘지만 여전히 한국인은 대용량 냉장고를 선호한다. 혼자 사는 유명 연예인들의 냉장고도 한결같이 크고 그 안에는 얘깃거리도 많다.

김연옥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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