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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미디어

‘우리는 모두 전쟁 중이다’

  • 조회수 178
  • 행사기간 2017.11.03 - 2017.11.03
  • 등록일 2017.11.03

문화 예술

아트리뷰 ‘우리는 모두 전쟁 중이다’

극작가이면서 연출가인 박근형(Park Kun-hyung 朴根亨)은 소시민들의 삶을 통해 사회 문제를 이야기한다. 지난해 그가 선보인 작품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에 힘입어 올해도 공연을 이어 가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폭넓은 공감과 지지는 사회 변화에 대한 대중의 열망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2016년 3월 남산문화센터에서 극단 골목길이 초연한 박근형 작, 연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포스터 사진이다. 이 작품은 큰 반향을 일으키며 2017년 인천문화예술회관과 성남아트센터에서도 공연을 이어 갔다.

연출가 박근형의 최근작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2016년 서울에서 막을 올린 후 올해는 인천, 성남 등 인근 도시에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공연을 이어 갔다. 이 작품은 지난해 국내의 권위 있는 연극상 중 하나인 동아연극상에서 작품상과 시청각디자인상을 수상했다. 또한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하는 ‘올해의 연극 베스트 3’, 한국연극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한국연극』(Korean Theatre Review)의 ‘2016 공연 베스트 7’으로 뽑혔다. 한편 일본에서 열리는 공연예술 축제인 ‘페스티벌 도쿄’에 공식 초청을 받기도 했다.

정치사회적으로 더 자주 언급되는 연극 연출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문화예술계에서 대대적으로 환영받았지만, 사실 지난 몇 년간 박근형과 그의 작품들은 오히려 정치사회계에서 더 자주 거론되었다. 지난 정권에서 만들었던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그의 이름이 올랐기 때문이다. 기준은 당시 정권에 대한 시각과 태도였다. 정권을 비판하거나 정치인을 풍자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이 명단에 올랐다.
박근형은 2013년 9월, 국립극단이 기획한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3부작 중 하나인「개구리」를 현재 시점으로 각색해 연출했다. 기원전 4세기에 희극 작가로 명성을 떨쳤던 아리스토파네스의 작품은 유명 인물들을 패러디하는 것이 특징이다. 박근형은 「개구리」를 원작 그대로 무대에 올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고, 2013년 당시 한국 정치와 사회를 대입해 풍자적으로 해석했다. 당시 이 작품은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일부 평론가들이 연극적 완성도 측면에서 의문을 제기하기는 했으나, 일반 관객들은 대부분 “재밌었다”, “통쾌했다”, “속이 후련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편 보수 성향의 언론 매체들은 이전 대통령, 즉 박정희(Park Chung-hee 朴正熙)를 비하했다는 비난 기사를 내보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2015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창작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지만, “군인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관계자들에게 포기 종용을 받았고, 결국 박근형은 참여 의사를 철회하고 말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작품은 사회면의 주요 뉴스가 되었고, 2016년 3월 남산예술센터에서 올린 초연 무대는 관객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소시민의 삶을 통해 가족과 사회 문제를 다루는 연출가 박근형은 시대정신이 결여된 예술지상주의를 경계한다.

연출가 박근형이 이 연극에서 주목한 것은 정작 군대도, 군인도 아니다. 어떤 조직에서든 권력의 횡포에 희생되는 대상은 그 조직의 힘없는 구성원들이다. 국가 혹은 애국심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며 사실은 개인적 권력을 추구하는 소수의 권력층 때문에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다수의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네 개의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하나의 진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의 공연 안내문은 이 연극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역사는 시대 순으로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외침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극단 골목길의 신작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한국사에서 공통된 외침을 지닌 1945년, 2004년, 2010년, 2016년의 어떤 순간들을 조명한다.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들려오는 하나의 동일한 외침은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 연극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나는 네 개의 사건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된다. 2016년 한국 경상남도에 있는 한 군대에서 탈영한 병사, 1945년 일본 오키나와에서 자살특공대에 자진해 들어간 조선인 병사, 2004년 이라크 팔루자에서 미군을 위해 일하다가 무장 단체에 납치된 한국 청년, 그리고 2010년 한국 백령도에서 군함이 침몰할 때 죽어간 해군들까지 위기에 처해 죽음을 맞는 군인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 박근형이 주목한 것은 정작 군대도, 군인도 아니다. 어떤 조직에서든 권력의 횡포에 희생되는 대상은 그 조직의 힘없는 구성원들이다. 국가 혹은 애국심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우며 사실은 개인적 권력을 추구하는 소수의 권력층 때문에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것은 다수의 평범한 소시민들이다. 이들은 죽음 앞에서 정의나 명분 대신 생존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충성심보다 가족에 대한 사랑이 우선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군인을 빗대 소시민들의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바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근형은 탈영병의 입을 통해서 말한다.
“우린 모두 전쟁 중이고, 누군가를 죽이거나 누군가에게 죽어야 하는 우린 모두 군인이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을 수 없는 사회가 두려웠던 탈영병은 결국 동료들이 겨누는 총구 앞에 나아가 타의에 의한 자살을 선택한다. 인생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싶어 했고, 그 누구보다 잘 살아보고 싶었던 한 젊은 군인의 심정은 그렇게 안타깝게 전달되었다.
시대마다 양상은 다르지만, 모두 똑같은 쓸쓸함과 허무함을 안고 사라져 갔던 이름 모를 ‘군인’들의 죽음은 본질적으로 하나다. 세계 평화처럼 거창한 희망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싶은 작은 소망. 그런 그들의 꿈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권력자들의 허상과 욕망이며, 이 허상과 욕망이 멈추지 않는 한 소시민들의 기대와 바람은 헛된 반복으로 불행을 낳고, 불운한 결과를 벗어날 수 없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나는 네 개의 사건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되며, 급박한 상황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는 군인들을 빗대 소시민들의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바람을 이야기한다.

예술지상주의를 경계하다
박근형은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 덥수룩한 머리칼에 오래된 안경을 쓰고 있는 그는 차림새도 수수해서 그다지 특별할 게 없어 보인다. 머쓱해지면 앞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거나 가만히 입을 꼭 다문 채로 가끔 웃는 그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 같다. 무대 연출은 늘 별 다른 장치 없이 박스 몇 개, 막대기 한두 개 정도가 고작이고, 대사도 딱히 멋지지 않다. 그런 연출가의 작품이 특별하다고 느낀 건 평론가들보다 관객들이 먼저였다. TV 탤런트, 영화배우에게나 있을 법한 골수팬들이 늘어나면서 그의 공연들은 자주 매진된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생생하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혹은 거리에서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무대 위 배우들이 나누는 대사와 상황은 진짜처럼 보인다. 실제로 그의 초기작 「청춘 예찬」은 배우들의 실제 삶을 바탕으로 대본을 구성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소시민의 삶을 통해 가족과 사회 문제를 다루는데, 청소년부터 장년층까지 다양한 관객층에게 호응을 얻어 냈고, 이를 통해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소극장 전성기를 이끌어낸 주역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조용하고 수줍은 외모와 달리 박근형의 내면은 단단하고 다부지다. 연습장에서는 큰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배우들을 설득하는 포용력과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예술의 실천적 역할을 고민하는 그의 연극 정신은 소극장 성격과도 잘 맞는다. 그는 예술지상주의를 경계한다. 10여 년 전, 필자와 나눈 인터뷰에서 박근형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연기를 아무리 잘해도 시대정신이 없다면 사회에 아주 나쁜 독이 될 수 있어요. 예술인이 예술을 못하는 게 낫지, 시대에 독이 되는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정치가 안 바뀌는 건 다 우리 잘못이에요. 예술이 아무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니까. 예술지상주의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분별력과 지성, 동시대에 대한 태도, 예술에 필요한 건 바로 그거죠. 지금은 혁명의 시대가 아니니까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어요. 투표도 안 하면서 정치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자격 없습니다.”
그는 남루하고 궁핍한 삶을 돋보기로 들여다봤던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가 자신일 뿐이라고, 그저 운이 좋아서 주목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조용하지만 끈질기게 파고들 줄 아는 연출가이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러한 저력이다.
2016년 겨울, 시민들의 거대한 촛불 집회가 마침내 국가 지도자를 바꿨고, 문화예술계를 좌절시켰던 ‘블랙리스트’를 만든 세력도 물러나게 했다. 그야말로 평화로운 시민혁명이었다. 변화를 일으키는 힘은 이렇듯 낮고 조용히, 천천히 움직인다.

김수미(Kim Su-mi, 金壽美)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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