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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미디어

치유할 수 없는 질병으로서의 운명

  • 조회수 210
  • 행사기간 2018.07.17 - 2018.07.17
  • 등록일 2018.07.17

문학산책

비평 치유할 수 없는 질병으로서의 운명

강영숙(Kang Young-sook 姜英淑)은 비극적 세계관을 토대로 삶의 이면에 숨겨진 불안과 고통을 끈질기게 파헤쳐 왔다. 그의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내면은 여러 가지 상처로 인해 균열되어 있는데, 작가는 이런 상황을 무심한 듯 관조적인 어조로 묘사한다.

강영숙은 199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8월의 식사」가 당선되어 등단해 올해로 20년을 맞았다. 그동안 단편집 다섯 권과 장편 셋을 냈으니, 한국 문단의 기준으로 보면 평균적인 생산 속도라 하겠다.
강영숙의 장편들과 단편들은 서로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여겨질 만큼 이질적이다. 2006년 발표한 대표적 장편 『리나』는 열여섯 살 탈북 소녀 리나를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여느 탈북 이야기와는 확연히 결이 다르다. 리나는 탈북자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고난과 시련에 노출되지만, 씩씩하게 그것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탈북자들의 통상적인 선택과 상반되는 결정을 내린다. 애초에 국경을 넘으면서 목표로 삼았던 ‘P국’으로 향할 수 있었음에도 그것을 포기하고 몽골로 추정되는 ‘유목민의 나라’로 또 다른 월경(越境)을 감행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 국경을 넘었던 때로부터 여러 해가 흐르고, 이제 누구보다 넓고 두터운 경험을 축적한 리나에게 월경과 유목은 일종의 세계관이 되었다. 어둡고 고통스러운 서사임에도 짐짓 낙천적이고 유쾌한 문체가 리나의 그런 세계관을 뒷받침한다.
작가의 다른 두 장편 『라이팅 클럽』과 『슬프고 유쾌한 텔레토비 소녀』는 각각 글쓰기의 가치와 의미를 깨닫는 모녀, 그리고 삼십대 후반 남자와 열일곱 살 소녀의 사랑을 비교적 무겁지 않은 분위기에 담았다. 이 세 장편과 다섯 단편집에 묶인 단편들 사이에는 매우 큰 낙차가 존재한다.
강영숙의 단편들은 무엇보다 세계에 대한 비관적이며 허무주의적인 태도를 특징으로 삼는다. 2002년 엮어낸 첫 소설집 『흔들리다』에서부터 그런 징후가 나타났는데, 이 책에 실린 열한 개 단편의 주인공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각자의 상처에 신음하며 막막한 어둠과도 같은 세상에 맞선다. 하지만 맞선다고 해서 그들에게 무슨 뚜렷한 해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상처 입은 자들끼리 연대하고 위로하면서 약간의 온기가 피어오를 뿐이다.
두 번째 단편집 『날마다 축제』(2004)와 세 번째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2009), 그리고 네 번째 『아령 하는 밤』(2011)에서도 기조는 다르지 않다. 불쾌한 날씨와 황폐한 풍경, 생기를 잃은 인간들과 동물들, 가뭄과 홍수, 해일 같은 자연재해, 전염병과 살인 및 사고사 등은 이 세계가 살 만한 곳이 아니라는 강력한 암시를 풍긴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이 말하는 ‘위험 사회’의 징후와도 같은 지옥의 풍경을 한 문장에 집약한 것이 네 번째 단편집에 실린 단편 「재해지역투어버스」의 이런 대목이다.

“소설을 통해 사회적 아픔을 얘기하고 싶었다. 소설도 일종의 기록 보관이 아닐까 싶다.”

“깨진 유리 조각들, 시멘트 바닥과 흰 운동화에 점점이 떨어진 피, 소금을 끼얹은 듯 따끔거리는 피부, 버둥거리며 죽어가는 소들, 암 환자의 등을 비추는 긴 거울, 불에 타 죽는 사람들, 여자들의 통곡 소리, 내리는 산성비, 그리고 천지사방으로 흩어지려는 내 몸뚱이.”
당시 한국 사회의 상황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이 문장으로부터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불에 타 죽은 철거민들, 구제역이라는 가축 전염병 때문에 수천 마리 가축을 생매장해야 했던 이른바 ‘살처분’, 그리고 각종 환경 재앙과 질병, 사고 등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첫 소설집을 낸 후 나와 인터뷰를 했을 때 강영숙은 “소설을 통해 사회적 아픔을 얘기하고 싶었다. 소설도 일종의 기록 보관이 아닐까 싶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어서 “막상 단편들을 모아 놓고 보니 너무 미시적이고 심지어 현실 도피적이기까지 한 것 같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소설을 쓰게 된 동기와 그 결과에 대한 아쉬움은 아마도 첫 소설집뿐 아니라 그 이후의 작품들에서도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이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그 점은 강영숙 특유의 모호하며 파편적인 글쓰기 방식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강영숙의 단편들은 사태의 전개를 시시콜콜 좇기보다는 과감한 생략과 에두르는 진술로 구성된다.
단편 「불치」(不治)는 2016년에 나온 다섯 번째 단편집 『회색문헌』에 실려 있다. 첫 문장은 주인공의 삶이 단조롭지만 매우 단단한 기반 위에 놓여 있음을 알려준다.
“진욱은 어떤 나쁜 일도 일어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생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소설이 성립하려면 무언가 사건이 일어나야 하고, 기왕이면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흥미로운 서사를 가능케 한다.

더구나 앞에서 보았다시피 비관적이며 허무주의적 세계관이 특징인 강영숙의 소설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늘 공격적으로 일했고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었”으며 “자신감으로 충만했고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던 은행원 진욱에게 나쁜 일은 수연의 등장과 더불어 찾아왔다.
수연이 진욱의 의사에 반해 그의 삶에 ‘침입’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수연을 적극적으로 제 삶 속으로 끌어들인 것은 오히려 진욱이었다. 신용 상태는 최악인데 정기적으로 통장에 유입되는 돈은 없고 예금도 없다시피 한 수연을 위해 진욱은 아마도 은행원으로서 재량을 발휘해 도움을 주었던 모양이다. 물론 수연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강영숙의 소설은 모호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 정확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알기 어렵다. “나의 모든 악행을 알고 있으니” “진욱이 죽어버렸으면 싶었다”는 수연의 혼잣말을 통해 어느 정도 사정을 짐작할 따름이다.
이 소설은 진욱의 시점과 수연의 시점을 오가며 진행되는데, 고향에 내려온 진욱을 만난 친구의 말을 통해서야 독자는 마흔이 넘은 그가 명예 퇴직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전후 사정은 역시 알 수 없는데, 그것이 그가 수연의 편의를 봐준 일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마디로 말해서 수연을 향한 사랑이 그의 삶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럼에도 수연은 진욱이 죽기를 바란다. 이런 사랑이라니!
진욱과 마주쳐 극단적인 말이 오갈 경우에 대비해 극약을 구하려는 데에서 보듯 수연에게도 진욱과의 관계는 부정적이고 파멸적인 결과를 낳았다. 약을 구하고자 거리에서 기다리던 수연은 카드 빚에 대한 불만과 두려움을 토로하는 공사 현장 인부들의 말을 엿듣게 되는데, 그 장면에서 인부들은 수연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발음과 비명은 앞으로 일어날 파국을 상징한다고 하겠다.
진욱에게 파국은 우연히 보게 된 손금에서부터 비롯되었다. 소설은 진욱이 어느 저녁 모임에서 손금을 본 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궤를 받아 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본인의 인생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친구의 일, 가족에게 일어난 일이 본인의 손에 하나의 선으로 남는 것이 손금”이라고 손금쟁이는 정의하는데, 수연을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수연의 일이 진욱 자신의 문제로 바뀌어 그의 삶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손금쟁이의 점궤는 적중했다.
그렇다면 수수께끼 같았던 이 소설의 제목 ‘불치’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된다. 진욱의 특이한 손금이란 치유할 수 없는 질병과도 같은,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을 상징하는 것 아니겠는가. 강영숙의 비관주의가 다시금 확인되는 대목이다.

최재봉(Choi Jae-bong 崔在鳳) 한겨레신문 기자(Reporter, The Hankyor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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