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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미디어

정형성을 벗어난 자유의 심성과 미감

  • 조회수 205
  • 행사기간 2019.01.02 - 2019.01.02
  • 등록일 2019.01.02

기획특집

​K-뷰티: 세계 여성을 사로잡는 한국 화장품,
그리고 한국인의 미의식
기획특집 1 정형성을 벗어난 자유의 심성과 미감

오랜 세월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은 억압하는 것들에 맞서 춤과 노래와 해학으로 자신을 지켰고, 세상의 모든 존재들과 연대하고자 했다. 무엇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상을 꿈꾸는 마음이 한국인의 미의식 기본 지표 중 하나일 것이다.

2018년 8월 출시된 방탄소년단의 리패키지 앨범 <LOVE YOURSELF 結 ‘Answer’>의 타이틀곡인 ‘IDOL’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이다. 이 뮤직비디오에는 옥토끼, 소나무, 호랑이, 탈춤 등 한국 전통문화의 요소가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흥겹게 어우러졌다.

나는 어느 글에선가 “시가 아름다움에 대한 기록 의지라고 믿는다”라고 쓴 적이 있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그것의 창조와 수용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백 명의 사람에게는 아름다움에 이르는 백 가지 길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한국인의 미의식’에 대한 보편적 정의를 내릴 수 없다. 다만 아름다움을 늘 주시하는 한 사람의 시인으로서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한국 것’들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최근에 내 입에서 “아름답다!”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한 인물들이 있다. 바로 보이 그룹 방탄소년단이다. 그들은 활동 초기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특별한 하나의 이미지를 환기시켜 준다. 한국호랑이, 또는 백두산호랑이라고도 부르는 시베리아호랑이가 그것이다.
방탄소년단의 초기 무대에서 나는 소년의 태가 남아 있는 어린 호랑이들이 서로 장난치며 자유롭게 노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들에게서 더욱 근사하게 성장해 전 세계 동세대의 아픔을 위로하는 의젓한 청년 호랑이들의 모습을 본다. 개성 넘치는 재능과 외양을 가진 호랑이들이 한데 모여 마치 한 마리 대호처럼 리드미컬한 도약을 보여 주는 퍼포먼스에 전율하게 된다. 그들의 무대를 나는 종종 ‘야성의 아름다움’이라고 칭한다. 이 땅에서 살아온 선조들의 재능이 문화적 유전자로 면면히 흐르다가 저렇게 꽃피는구나 싶은 느낌마저 든다.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 김홍도(1745~c. 1806), 강세황(1713~1791), 18세기 후반, 견본담채, 90.4 × 43.8 cm. 몸집이 크고 줄무늬가 아름다운 한국호랑이의 진모를 조선 후기 도화서 화원 김홍도가 극사실주의 기법을 통해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림 속 소나무는 그의 스승인 문인 화가 강세황이 그렸다고 전해진다. Ⓒ 삼성미술관 리움

야성의 아름다움
‘한국적 야성’의 기원은 리얼리티다. 예술이 삶과 분리되지 않고 삶의 현장에 밀착해서 발현되는 아름다움 말이다. 그 리얼리티는 놀이와 잇닿아 있다. 한국인들은 잘 논다. 틈만 나면 판을 벌리고 어디서든 춤을 추며 노래한다. 심지어 ‘노래방’이라는 유니크한 공간을 만들었을 정도다.
가무에 관한 한국인들의 넘치는 끼는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우리가 노래와 춤을 즐긴 역사는 3,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계속 새겨진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 이미 춤추는 인물이 등장했다. 고구려(37 BC~AD 668) 고분 벽화의 춤추는 인물들을 비롯해 그 이전부터도 공동체의 제천 의식은 모두 ‘노는 시간’이었다. “날마다 크게 모여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고, 행인들도 노래 부르기를 즐겨서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옛 기록도 전한다.
악기를 연주하며 춤추고 노래하는 일은 이 땅 조상들의 아름다운 생활 습성이었다. 파종기, 노동기, 추수기 등 일상의 모든 현장에 향기로운 술과 춤과 노래가 함께했다. 이들에겐 무대도 따로 필요 없었다. 논밭이건 시장이건 집 마당이건 살아가는 모든 장소가 곧 놀이판이었다. 그래서 노동요이기도 한 민요가 전국의 각 지역마다 특색있게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잘 알려진 아리랑 같은 민요가 하나의 가사와 곡조로 불리지 않고 지역마다 다른 수백 가지 형태로 불리며 전해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연스러운 놀이 본능을 지닌 이 땅의 조상들은 기질이 무척 낙관적이어서 춤과 노래로 맺힌 마음을 풀며 살아왔다. 하늘의 뜻에 감사했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했다. 그래서 생의 불완전성과 비극성에 몰입하는 멜랑콜리의 정서가 별로 없다. 맺힌 것은 해학과 풍자로 풀고 오늘을 즐겼기에 고통의 현장에서도 웃음과 노래와 춤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기질이 바로 ‘흥’이고 ‘신명’이다. 한국인들은 흥이 나면 어디든 놀이판으로 만들어 버린다. 놀면서 스스로 자유로워진다. 자유로워진 사람들이 서로 손을 잡고 연대한다.
21세기에 들어와서 한국인의 신명이 찬란하게 발현된 역사를 나는 ‘촛불집회’에서 보았다. 비상식적 권력과 싸우는 현장마저 축제로 만들어 버리는 힘은 한국인의 독특한 저력이다. 한국의 역사를 만들어 온 것은 일부 영웅들이 아니라 평범한 다수의 보통 사람들이었다. 지배 계급과 정치가 민중을 배신해도 민중은 한결같이 역사의 어려운 고비마다 스스로 일어나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20세기 한국의 현대사만 보아도 그렇다. 일제 식민지 시대 이름 없는 의병들이 그랬고, 1960년 독재에 항거해 4.19혁명을 주도한 학생들이 그랬고, 1987년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이 그랬다.
전 세계가 놀라움으로 지켜봤던 2016년 겨울의 촛불집회는 갑자기 생겨난 돌연변이가 아니다. 우리들의 핏속에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역사적 산물이다. 촛불집회에서도 우리는 놀았다. 광장과 거리에서 춤을 추고 노래하며 불의를 질타했다. 저항의 현장을 축제로 만드는 능력이야말로 아주 오래전부터 한국인이 터득한 아름다운 생명력이다.

<백자대호>, 조선 시대, 높이 43.8 cm, 몸통 지름 44 cm. 달항아리는 조선 백자 중에서도 높이가 40 cm 이상이고 몸통이 둥근 형태의 그릇을 가리킨다. 대형이기 때문에 상하를 따로 만든 후 두 부분을 접합하여 완성하는데, 완벽하지 않은 좌우 대칭이 자연스럽고 너그러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국보 제310호. Ⓒ 국립고궁박물관

순수한 생동감
나는 날렵하고 강한 한국호랑이에 반해서 호랑이 그림을 모은 적이 있다. 한국호랑이는 벵갈호랑이 같은 열대 지방 호랑이보다 몸집이 크고 털이 풍성하며 아름다운 줄무늬를 가졌다. 강력한 힘과 부드러운 우아함, 팽팽한 긴장과 느슨한 여유를 동시에 갖고 있는 한국호랑이는 수많은 예술품에 묘사된다.
민화에 그려진 한국호랑이들에겐 자유로움과 장난기가 있다. 거기에는 낙천적인 우리 조상들의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순수한 생동감이 있다. 민화 속 호랑이들도 좋지만, 한국호랑이 그림 중 최고는 단연코 조선 시대 궁중 화가 단원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이다. 아름다운 소나무와 호랑이의 절묘한 조화는 물론 여백의 구성까지 완벽한 작품이다.
한국화에 있어 여백은 한국인이 자연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기도 하다. 여백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것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서 새롭게 구성되는 ‘감각의 지평’이다. 나는 기분이 울적할 때면 이 그림을 들여다보곤 한다. 내딛는 호랑이 발의 두툼한 양감과 기운이 생동하는 꼬리를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기분이 좋아진다. 호랑이는 두려운 동물이지만 이 한국호랑이는 사납게 느껴지기보다 위엄 가득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당당하고 도도한 기개가 있으나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 보이며 상대를 위협하는 호랑이는 우리 옛 그림에 없다. 유독 호랑이가 많았던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모습이 호랑이 속에 투영되어 있을 뿐이다. 힘을 가졌지만 과시하지 않고, 기운찬데 포악하지 않고, 평화로운 공존감이 느껴지는 묘한 조화다. 호랑이의 안광을 들여다보다가 다시 큼직한 발을 쓰다듬어 본다. 수천 번 붓질을 해 털 하나하나의 느낌까지 생생히 살아 있다. 뭐든 단박에 그려 내었을 단원 같은 천재 화가도 한국호랑이를 그릴 때만큼은 마치 수행을 하듯 이렇게 정성을 들였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호랑이 털 하나하나를 눈으로 훑어 가는 동안 어느새 나에게 기운이 돌아온다.

차가운 금속 조형물에서 어떻게 이런 따뜻한 흙과 바람의 느낌이 전해지는 것일까? 꽃, 구름, 바람과 불꽃이 종소리의 파동을 타고 내 온몸의 모든 미세한 감각까지 열어 주는 것 같다.

파격의 미의식
한국호랑이만큼이나 나는 한국의 사찰을 좋아한다. 한반도엔 어느 지역이나 가장 아름다운 명당 터에 사찰이 있다. 그러니 한국을 여행할 때엔 그 지역의 중요한 사찰에 꼭 들러볼 일이다. 사찰에 가서 내가 언제나 경험하는 것은 새벽 예불이다. 새벽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를 들을 때면 ‘신성한 소리’의 기원을 만나는 듯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범종인 ‘성덕대왕신종’은 8세기 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흔히 에밀레종이라고도 부르는 전설적인 종이다. 제작 기간만 34년이 걸렸다고 전하는 이 종은 현대의 과학 기술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깊고 신비한 울림을 가졌다.
사찰에서는 이른 새벽과 석양 무렵 행해지는 예불 시간에 범종을 치면서 세상 만물이 고통에서 벗어나 평화롭기를 빈다. 웅장한 규모만큼이나 범종 소리의 파장은 깊고 넓고 진하다. 그 소리는 세상 모든 존재의 치유를 기원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범종 소리에 몰입하다 보면, 온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러다 감았던 눈을 뜨면, 한국인이 아껴 온 아름다움의 한 전형과 만난다.
한국의 범종이 가진 구조적 특색 중에 단연 눈에 띄는 것이 ‘용뉴(龍鈕)’이다. 종을 매달기 위해 상단에 만든 고리를 가리키는 용뉴는 용의 형상을 해서 붙은 이름이다. 우리보다 먼저 범종을 만든 중국의 종은 보통 두 마리 용이 대칭을 이룬다. 하지만 신라의 종은 한 마리 용이 비대칭 구조로 조형되어 있다. 대칭된 용에는 고리의 기능성에 주목한 안정감이 있지만, 비대칭의 용에는 기능성에 머물지 않는 독자적인 미감이 있다. 한국인들은 정적인 대칭성에 안주하길 좋아하지 않는다. 파격을 미의식 속에 깊이 끌어들인다. 생동감 넘치는 용뉴는 마치 일렁이는 종의 울림을 형상화한 듯하다. 종소리가 지닌 파동의 힘이 고스란히 표현되어 있다.
현재까지 보존된 신라 시대 (57 BC~AD 935) 범종으로 성덕대왕신종과 더불어 ‘상원사동종’이 있다. 이 두 종의 몸통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비천상 무늬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도 역시 대칭을 벗어난 파격과 율동이 넘친다. 차가운 금속 조형물에서 어떻게 이런 따뜻한 흙과 바람의 느낌이 전해지는 것일까? 꽃, 구름, 바람과 불꽃이 종소리의 파동을 타고 내 온몸의 모든 미세한 감각까지 열어 주는 것 같다.

<성덕대왕신종>(부분), 771년, 높이 366 cm, 입지름 227 cm. 한국의 대표적 범종인 성덕대왕신종에 새겨진 비천상이다. 비천은 일반적으로 허공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으로 형상화되는 천인인데, 이 비천상은 연꽃 방석 위에 앉아 두 손에 향로를 들고 공양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국보 제29호. Ⓒ 하지권

평화로운 공존
한국적 아름다움을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조선 시대(1392~1910) 백자 달항아리를 예로 들어 찬탄한다. 나 역시 달항아리를 좋아하지만, 달항아리 같은 소박한 아름다움으로는 담기 어려운 ‘지극한 아름다움’을 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이렇듯 아름다움에 대한 허기를 채우고 싶을 때면 나는 극강의 아이템으로 ‘백제금동대향로’를 떠올린다.
향 피우기를 좋아하는 나는 전 세계의 아주 많은 향로들을 보았다. 그러나 이 향로만큼 나를 설레게 한 것은 아직 없다. 백제금동대향로는 하나의 완벽한 음악이자 춤이다. 봉황새가 턱 밑에 여의주를 끼고 꼬리를 바람처럼 흩날리며 산꼭대기에 앉아 있다. 아름다운 곡선들의 향연으로 형상화된 것은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사는 산이다. 봉황과 산을 연꽃이 받치고 있고, 용 한 마리가 연꽃 봉오리를 물어 하늘로 피워 올리듯 떠받치고 있다.
이상 세계의 상징으로 묘사된 산의 디테일을 찬찬히 살펴보라. 봉황 아래 5명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한다. 유연한 곡선의 부조 한 장 한 장이 하나씩의 산봉우리를 이루는 사이사이로 폭포와 시냇물이 흐른다. 39마리 각종 동물과 11명의 신선들이 보인다. 연꽃잎 모양의 몸체에도 모두 24마리의 각종 동물들이 꽃잎 하나하나에 조각되어 있고, 두 사람의 신선이 있다. 산봉우리 사이사이와 봉황의 가슴에 뚫려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향이 피어오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마치 산안개처럼 이상향의 산을 감싸며 하늘로 봉헌되는 향내음을 맡아 보라.
한국인이 소망해 온 이상향은 이렇듯 평화로운 공존이었다. 백제인들은 동물과 인간이 더불어 살고, 자연과 인간이 합일된 경지를 추구한 것이다. 향로를 구성하는 모든 부분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범종의 용뉴와 마찬가지로 향로의 받침대는 몸체를 안정적으로 떠받치는 기능적인 면에 충실하면 그만이겠지만, 이 땅의 선조들은 그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받침대마저 율동하는 노래이자 숨결로 표현했다. 나는 이 향로 받침대를 ‘노래하는 바람의 용’이라고 부른다. 용이자 음악이고 바람이고 춤이다.

김선우(Kim Seon-woo 金宣佑)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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