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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미디어

한옥, 르네상스의 시작

  • 조회수 228
  • 행사기간 2020.04.04 - 2020.04.04
  • 등록일 2020.04.04

기획특집

꿈과 욕망의 둥지, 우리 시대의 집 기획특집 4 한옥 르네상스의 시작

근대화 이후 대중적 주거 공간으로서 역할을 잃었던 한옥의 가치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주로 개발이 제한되었던 대도시의 구도심 지역에 남아 있던 전통 가옥들이 상업 시설로 바뀌며 현대적 기능을 갖춘 매력적인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때 현대적 생활 양식에 어울리지 않는 불편한 집으로 인식되었던 한옥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물론 전통 건축 방식대로 지은 집이 대중의 일상적 주거 공간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실용적 목구조를 기반으로 실내 냉난방과 단열 및 방음, 보안의 문제점들을 안고 있어 외면 받았던 전통식 가옥들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한 아름다운 공간으로 변신하여 각광을 받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은 일제강점기 지역 상권을 지배했던 일본 상인들에 대항하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현재는 지역의 대표적 관광지이다. 한옥 600여 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다. ⓒ imagetoday

한옥 밀집 지역
한옥에 대한 조명은 개발에서 낙후된 도심부의 한옥 밀집 지역에서 비롯되었다. 서울의 북촌 지역이 대표적인데, 이곳은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 중요 시설들과 가까울 뿐 아니라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고층 개발이 제한되어 오래된 한옥들이 노후한 채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 각종 규제가 완화되면서 3~4층짜리 건물들이 마구잡이로 지어지게 되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며 부동산 거품이 꺼지자, 이러한 무분별한 과밀 개발이 집주인과 시민들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후 서울시는 북촌을 한옥 밀집 지구로 보존하면서 개발하는 계획을 수립해 실행했다. 한옥 밀집 지역은 비록 낙후되었다고는 해도 옛 도심부에 자리하고 있어 상업적 수요가 크다. 개발을 주관하는 시의 의도 역시 관광지를 염두에 둔 것이었기 때문에 새롭게 고쳐 짓는 한옥은 카페와 상점, 병원과 도서관, 동사무소 등 다양한 용도를 갖게 되었다. 이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파트에서 생활하며 밖에 나가서는 한옥 시설을 즐겨 이용하게 되었다. 근대화의 초기에 한복을 입고 한옥에서 생활하면서 서양식 건물에 있는 직장으로 출근했던 것과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서 시작된 낙후된 한옥 밀집 지역 재생 정책은 이후 지방 도시로 확산되었다. 20세기 후반의 도시 개발이 외곽의 신도심 중심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어느 도시든 원도심은 낙후된 채로 방치돼 있기 마련이었다. 좁은 골목과 소규모 건물이 밀집한 이들 원도심의 슬럼화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이 유일한 대안으로 생각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도시들이 앞다퉈 한옥이 밀집한 원도심의 경관을 보존하고 개발하는 사업에 힘을 기울였다.

지금 불고 있는 바람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한옥의 르네상스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유는 현대인들이 전통 가옥에서 살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불편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1. 서울 종로구 계동길에 있는 베이커리 카페 어니언은 조선 시대 포도청으로 사용되던 한옥을 개조해 만들었다. 탁 트인 대청에 좌식 테이블을 놓아 손님들이 차를 마시며 전통 한옥의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론리플래닛』 제공
2.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갤러리. 한옥의 독특한 공간감을 활용하기 위해 노후한 가옥을 개조해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 gettyimages
3. 1940년대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을 개조해 동사무소로 활용하고 있는 서울 혜화동사무소. 전국 최초의 한옥 공공청사로 기록된 이곳은 한옥이 오늘날 도시 행정 업무를 담아내는 공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 박영채(Park Young-chae 朴榮采)

친환경 주거
한옥 보존 정책은 시민 사회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아파트 중심의 개발 결과 획일화된 주거 문화에 싫증을 느낀 사람들이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때마침 삶의 질을 중시하는 ‘웰빙’ 추구 현상이 확산되면서 한옥의 가치도 재발견되었다. 고급스럽고 품격 있는 주거 양식으로 재인식하게 된 것이다.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한옥 붐의 또 다른 동인이 되었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비하여 목조 구조는 건축과 폐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사용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산업 폐기물 배출량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즉 친환경 소재로서 목구조가 갖는 가치를 재발견하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국제화의 진전 역시 큰 영향을 미쳤다. 연간 겨우 100만 명을 넘겼던 외국인 관광객 수효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치른 이후 꾸준히 증가해 1,800만 명이 넘는 규모로 성장하였고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내국인의 숫자도 비슷한 규모에 이르게 되었다. 이처럼 국제적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색 있는 도시 경관 조성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높아지게 되었다. 물론 여행자들은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표준적인 맛의 커피를 원한다. 하지만 동시에 현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경관과 경험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옥은 도시 경관을 조성하는 측면에서 매우 유리한 건축 양식이다. 한옥의 특성은 구조와 형태, 그리고 실내 공간의 사용이라는 두 가지의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구조와 형태적 측면에서 한옥은 나무 기둥과 보를 수직 수평으로 짜 맞추어 골격을 만들고 그 위로 서까래를 올려 경사진 기와 지붕을 갖는 건축이라고 요약된다. 기둥과 보를 이용하는 프레임 구조이기 때문에 벽면의 구성을 다채롭게 변화시킬 수 있고,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문과 창 등 개구부의 구성도 다양해진다.

또한 구조적 이유로 생겨난 경사 지붕이 일정한 형태적 제약을 갖기 때문에 여러 건물이 모여 있어도 통일성을 유지할 수 있다. 최근 들어 늘고 있는 비주택 한옥의 경우는 구조와 형태를 한옥으로 유지하고 실내 공간은 현대적 감각과 요구에 맞춰 개량하는 것이 일반적 추세이다.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감솔채(Three Pines)는 스튜디오더원(Studiothewon)이 목구조와 중목구조를 혼용해 지었으며, 기둥과 보가 그대로 노출되어 한옥의 멋을 느낄 수 있다. 거실 겸 주방으로 쓰이는 이 공간에는 조리와 수납을 위한 용도로 중앙에 아일랜드 식탁을 배치해 전통 한옥의 불편함을 보완했다. 『행복이 가득한 집』 제공

바닥 난방 방식
주택으로서 한옥이 갖는 가장 큰 특성은 실내 공간의 구성과 사용에 있다. 한옥의 실내 공간은 온돌방과 마루로 이루어지는데, 특히 한국 고유의 바닥 난방 방식인 온돌은 한옥을 다른 나라의 주택과 구분 짓는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온돌은 아궁이에서 땐 불의 열기가 지나가는 통로인 고래가 배열되어 있는 공간 위에 돌판을 얹어 바닥을 만든다. 한반도에서도 초기에는 방의 일부에만 고래를 두는 부분 온돌이 사용되었다가 12세기경에 현재와 같은 전면 온돌이 개발되어 여러 세기에 걸쳐 한반도 전역으로 보급되었다. 방 전체에 고래가 깔린 온돌이 가져온 가장 큰 변화는 바닥의 온기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좌식 생활 양식이다. 이에 따라 실내의 바닥은 항상 깨끗하게 유지되어야 했고, 실내에서는 반드시 신발을 벗고 생활하게 되었다.

이처럼 전통 한옥은 온돌 사용으로 인해 ‘딱딱하고 따뜻하고 깨끗한’ 바닥을 갖게 되었고, 이것이 한국식 주거 문화의 가장 큰 특성을 이루게 되었다. 오늘날에도 한국인들은 여전히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신발부터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거나 맨발로 거실과 침실을 이용한다. 이러한 습성은 아파트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따라서 한국의 아파트는 온돌을 응용한 바닥 난방 방식을 채택하고 있고, 이로 인해 여전히 한국인들은 딱딱하고 따뜻하고 깨끗한 바닥 위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옥의 실내 공간이 아파트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적 설비
예전의 한옥은 단열이 잘 안 되어 춥고, 욕실과 주방 등의 공간에 현대적 설비를 갖추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첨단 기술이 이 같은 단점들을 보완해 주고 있다. 지금 불고 있는 바람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한옥의 르네상스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유는 현대인들이 전통 가옥에서 살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불편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전봉희(Jeon Bong-hee 田鳳熙)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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