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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미디어

트로트, 발라드, 그리고 댄스 음악

  • 조회수 887
  • 행사기간 2020.07.06 - 2020.07.06
  • 등록일 2020.07.06

기획특집

한국전쟁과 대중음악: 끝나지 않은 노래 기획특집 3 트로트, 발라드, 그리고 댄스 음악

1930년대 식민 치하 민족 정서에 뿌리를 두고 본격적으로 탄생한 트로트,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 그리고 K-pop의 주축을 이루는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 – 시작과 발전 과정이 제각기 다른 이 세 장르의 대중음악이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난영의 히트곡들을 모아 LKL레코드가 1960년대에 발매한 12인치 LP 음반이다. 지금까지도 널리 애창되고 있는 대표곡 <목포의 눈물>을 비롯해 총 12곡이 복각되어 실려 있다.

1935년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노래가 탄생했다. 한국 가요계의 전설로 불리는 가수 이난영(李蘭影 1916~1965)이 부른 <목포의 눈물>. 아직도 이 노래는 항구 도시 목포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한국인이 즐겨 부르고 사랑하는 노래이다.

대체로 4음과 7음이 빠진 5음계 단조에 2박자가 결합된 전형적인 트로트 형식의 <목포의 눈물>은 그해 초 오케(Okeh)레코드가 주최한 제1회 향토 노래 현상 모집에서 당선된 문일석(文一石)의 가사에 손목인(孫牧人)이 곡을 붙여 만들었다. 임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노랫말에 나라 잃은 설움을 은유적으로 담고 있다고 여겨져 당시 대중에게 ‘민족의 노래’로 인식되었다. 음악적으로는 새로운 형식이었으나 가사는 당대인들의 애달픈 정서를 반영하면서 토착화에 크게 성공했다.



트로트와 민족 정서
20세기 전반 일제강점기에 처음 형성된 트로트는 이 음악 형식을 왜색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고 심지어 천박하다는 인식도 팽배했다. 하지만 트로트에 영향을 주었다는 엔카(enka 演歌)도 사실 일본 고유의 음악은 아니다. 일본은 일찍이 서양의 문화와 음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데, 그 과정에서 기존의 일본 음악과 새로 유입된 서양 음악이 만나 새로운 형태의 대중가요가 태어났다. 당시 일본에서는 이런 노래들을 ‘류코카(ryūkōka 流行歌)’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한국에 들어와서 ‘유행가’라고 불리다가 1950년대 이후 ‘트로트’라는 장르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한편 일본은 1970년대에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류코카를 ‘엔카’로 부르며 전통 음악으로 숭상하기 시작했다. 국내에서 트로트를 엔카라 부르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일본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전통’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트로트의 음악적 어법은 1945년 해방 이후부터 달라졌다. 점차 음계의 제한은 사라졌고, 빠른 템포와 다양한 리듬을 활용한 각양각색의 트로트 노래들이 등장하여 대중의 호응을 받았다. 주로 임, 고향, 망국의 설움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던 초창기 트로트의 노랫말은 이제 즉각적이고도 직접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방향으로 변하였다.

1. 1964년 개봉작 <동백 아가씨(Camellia Lady)>의 OST 음반이다. 미도파(MIDOPA 美都波)레코드가 발매한 이 앨범에는 6명의 가수가 부른 12곡이 담겨 있는데, 그중 이미자(李美子 1941~)가 부른 동명의 주제가는 무명이었던 그에게 ‘엘레지의 여왕’이란 별칭을 안겨 주었으며, 스탠더드 팝 경향의 노래들이 주도하고 있던 당시 대중가요계에 트로트의 새로운 전성기가 열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2. 당시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트로트 가수 나훈아(羅勳兒1947~)가 지구레코드로 전속 회사를 옮긴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72년 발매한 독집 음반이다. 그는 1969년부터 1971년까지 3년 연속 MBC 방송국 선정 10대 가수상을 수상했는데, 이 앨범의 타이틀곡 <물레방아 도는데>가 크게 히트하면서 4년 연속10대 가수상을 받게 되었다.
3. 1973년 지구레코드가 발매한 컴필레이션 음반으로 인기 가수 5명이 부른 10곡이 수록되어 있다. 타이틀곡을 부른 트로트 가수 남진(南鎭 1946~)은 나훈아와 함께 1970년대 대중가요계의 쌍벽을 이루며 침체된 대중음악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4. 서라벌레코드가 1976년 발매한 스플릿 음반으로 앞면에는 조용필(趙容弼 1950~), 뒷면에는 밴드 영사운드의 노래들이 실려 있다. 100만 장 판매라는 대기록을 세운 이 앨범의 백미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Return to Busan Port)>다. 당시 조총련계 재일교포에게 처음으로 고국 방문이 허용된 시대 상황과 맞물리면서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도 크게 히트했다.

질긴 생명력
1930년대 중반에 등장해 지금까지 한국 대중가요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는 트로트의 생명력은 한마디로 ‘시대 적응력’에서 찾을 수 있다.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과 피난에서 휴전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 이 노래들은 언제나 대중과 함께했다.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을 절절하게 그려내면서 호응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1964년에 발표돼 전국적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이미자(李美子)의 <동백아가씨>는 트로트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 노래는 음악적으로는 트로트의 전형성을 보여주었으나, 문학적으로는 향토성을 강조하는 노래였다. 하지만 1965년 군사정부 아래‘왜색 가요 시비’에 휘말리면서 방송 금지를 당했다가 1987년에야 풀려났다. 그런 와중에도 배호(裵湖), 남진(南珍), 나훈아(羅勳兒) 등 걸출한 음악성의 가수들로 이어진 트로트의 열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트로트는 다른 갈래의 대중음악과 만나 새롭게 변신하기도 했다. 1970년대 초 젊은 세대가 심취했던 록과 포크 음악이 새로이 부상했는데, 인기 가수들이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면서 정부가 건전 가요 보급의 기치 아래 ‘가요 정화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으로 대중음악계에 커다란 시련이 닥쳤고, 특히 록 음악은 불온한 이미지로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록과 트로트가 결합된 형태의 ‘록 트로트’였다. 1976년 발매된 조용필(趙容弼)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크게 히트하면서 록 가수들은 대중 친화적인 트로트를 접목시키는 방법으로 생존의 길을 찾았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이라는 국제 스포츠 행사를 치른 후 한국에서는 개방적이고 유흥적인 분위기가 크게 확산되었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트로트가 성인 유흥 문화의 핵심 요소로 다시 부상했고, 이 시기에 나온 트로트를 ‘성인 가요’란 명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트로트는 단지 성인을 위한 가요에 머물지 않았다. 2004년에 발매된 장윤정(張允瀞)의 <어머나>는 어린아이에서 어른까지 모든 사람들이 따라 부를 정도로 전례 없이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슬픔과 눈물을 상징했던 트로트가 이 곡을 시작으로 웃음과 즐거움을 주는 노래라는 인식이 퍼졌다.

1. 1987년 발표된 유재하(柳在夏1962~1987)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앨범이다. 9곡이 수록된 이 LP 음반은 크로스오버를 바탕으로 한 진보적인 사운드로 발라드의 진화를 이끌어 냈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후배 뮤지션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다.
2. 1988년 발매된 변진섭(卞眞燮1966~)의 첫 번째 정규 음반. 18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골든디스크 신인상과 대상을 동시에 받았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발라드 시장을 이끌며, 이문세의 뒤를 이은 ‘발라드의 황태자’로 불렸다.
3. 한국 발라드의 계보 맨 앞에자리한 이문세(李文世 1959~)의 4집 앨범(1987)이다. 1980년대 중반, 작곡가 이영훈(李永勳 1960~2008)과 함께한 3집 이후부터는 거의 모든 작품들이 히트곡이 되어, 두 사람은 국내 최고의 가수-작곡가 듀오로 지금까지도 명성을 이어 오고 있다.

서정적인 발라드
‘춤추다’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ballare’에서 파생된 발라드는 중세에 ‘춤을 추기 위한 노래’를 지칭했다. 그러다가 점차 춤의 의미는 사라지고, 16세기에 들어서 통속적인 가곡을 지칭하게 되었다. 반면에 한국에서 발라드는 주로 느린 템포의 아름다운 사랑 노래 전반을 가리킨다. 그러다 보니 가사는 자연스럽게 남녀 간 연정을 주제로 하는 것이 많고, 선율은 대체로 부드럽고 서정적이다.

한국에서 대중적 발라드의 기원은 1930년대 서양 대중음악의 영향을 받아서 형성된 ‘재즈 송’이나 1960년대 유행한 미국식 ‘스탠더드 팝’ 계열의 노래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 본격적인 발라드가 등장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다. 작곡가 이영훈(李永勳)과 가수 이문세(李文世)의 만남은 1980년대를 발라드 전성 시대로 만들었다. 1987년에 1집 음반 <홀로 된다는 것>을 내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변진섭(卞眞燮)도 이문세와 더불어 초창기 한국 발라드를 대표하는 가수였다. 또한 1987년 단 한 장의 앨범만 남기고 교통 사고로 운명을 달리한 유재하(柳在夏)의 노래들도 발라드에 클래식과 재즈를 접목하면서 품격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의 노래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대중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크게 버스(verse)와 코러스(chorus)로 구성되는 발라드는 일반적으로 조용하게 천천히 시작된 다음 감정을 강조하는 절정에 이르렀다가 마무리되는 형식이다. 시대에 따라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가수들의 창법이 조금씩 변화를 보이기도 했는데, 예를 들어 1980년대 초창기 발라드와 비교하여 요즘 발라드의 노랫말에서는 구어체나 일상어를 빈번하게 사용한다. 한편 가수들의 창법은 보통 곱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미성과 성대를 갈아서 내는 이른바 갈성으로 나눌 수 있다. 전형적인 발라드 가수가 대체로 미성으로 노래한다면 록 발라드 가수들은 갈성 창법으로 노래하기도 한다. 1980년대 이후 발라드는 록과 만나고, 알앤비나 소울 등과 교차하면서 대중음악의 주요 장르로 기능하고 있다.

1992년 3월 발표된 서태지(徐太志)와 아이들(1991~1996 활동)의 1집 앨범. 댄스에 메탈을 결합하고 랩을 시도한 이 음반은 “한국 가요계는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K-pop의 힘, 댄스 음악
한민족은 수천 년 전부터 술 마시고 노래 부르면서 춤을 추는 일(飮酒歌舞)에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중적 댄스 음악은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 이 장르가 주류로 등장한 것도 1980년대부터이다. 1970년대 말 디스코 열풍 이후에 강한 비트와 쉽고 단순한 노래 구조를 특징으로 하는 댄스 팝을 주로 선보였던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등의 음악이 국내에서도 유행했고, 이와 유사한 한국식 댄스 음악이 등장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 컬러 TV가 전국에 보급되자 ‘듣는 음악’ 이상으로 ‘보는 음악’이 중요해지면서 댄스 음악이 부상했다. 당시 국내 댄스 음악 시장을 이끈 주역은 김완선(金緩宣)과 박남정(朴南政), 그리고 3인조 댄스 그룹 소방차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 들어서는 힙합과 록의 영향으로 새로운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흐름을 이끈 주인공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위시한 여러 그룹들이었다. 댄스 음악은 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다시 주목할 만한 세대 교체를 이루게 된다. 대형 기획사가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아이돌 그룹 위주의 댄스 음악을 양산했고, 한류의 성황을 이루어 냈다. 2012년, 전 세계적으로 ‘말춤’을 유행시켰던 싸이의 <강남스타일> 흥행도 특기할 만하다.

2020년 현재는 BTS를 위시해서 트와이스, 블랙핑크, 엑소 등 제3세대 아이돌 그룹이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비록 최근 2~3년 사이 K-pop 공연 수익 비중은 줄었지만, 디지털 음악 콘텐츠의 점유율은 늘어났다. 아이돌 그룹의 모든 음악을 댄스 음악으로 볼 수는 없다. 또한 댄스 음악이라 해도 그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으로 보여주는 그들의 퍼포먼스는 댄스 음악이란 갈래로 다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대중음악의 갈래가 언제나 정확하게 나눠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한 가수가 한 장르만 고집하라는 법도 없다. 결국 다양한 갈래의 음악이 공존하고 상생해야 대중음악계의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관점에서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은 위에서 언급한 주류 음악 장르들이 3파전을 이루며 건강한 진화를 이루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트로트가 중장년층을 위시한 전 국민에게 유흥의 노래로 소비되고 있다면, 발라드는 느린 템포의 사랑 노래로 지속적인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다. 그리고 댄스 음악은 K-pop을 견인하며 한국 대중음악의 저력을 세계에 알리고 있는 중이다.

1930년대 식민 치하 민족 정서에 뿌리를 두고 본격적으로 탄생한 트로트, 남녀의 사랑을 노래하는 발라드, 그리고 K-pop의 주축을 이루는 아이돌 그룹의 댄스 음악

시작과 발전 과정이 제각기 다른 이 세 장르의 대중음악이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으며 계속 진화하고 있다.

1, 2. 2012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기자 회견을 마친 싸이(PSY 1977~)가 말춤을 추며 퇴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의 6번째 정규 앨범의 타이틀곡 <강남 스타일>은 2012년 빌보드 HOT 100에서 7주 연속 2위를 차지해 전 세계적인 인기곡으로 떠올랐다. ⓒ 한국일보
3, 4. 9인조 보이그룹 엑소의 정규 2집(위)과 4인조 걸그룹 블랙핑크의 첫 미니 앨범. 2000년대에 들어 대형 기획사의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아이돌 그룹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의 댄스 음악이 대중음악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장유정(Zhang Eu-jeong 張攸汀) 음악사학자;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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