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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

“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 특별전 ‘한글의 미래’를 본 사람과 ‘한글’에서 미래를 읽는 사람들

  • 조회수 323
  • 행사기간 2017.08.03 - 2017.08.03
  • 등록일 2017.08.03

문화 예술

포커스“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 특별전
‘한글의 미래’를 본 사람과 ‘한글’에서 미래를 읽는 사람들

“한글보다 뛰어난 문자는 없다”느니,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는 세계인의 찬사를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지다가 곧 머쓱해지고 만다. 공기나 물처럼 익숙한 덕에 그 가치를 잊고 소홀히 하진 않았나 하는 생각에서다. 오래전 간송 전형필이 어려운 여건에서도 한글의 미래를 내다보고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을 보존했듯이, 지금의 디자이너들이 ‘한글’의 글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전시회를 가졌다. 그 시도가 여간 고맙지 않다.

국립한글박물관의 “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 전시장 입구에, 1446년 새 문자의 창제를 발표할 때 백성들에게 문자의 원리와 사용 방법을 알리기 위해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 33면을 네온 처리한 투명 아크릴판 설치물이 어둠 속에 늘어서 있다.<span id=" />

국립한글박물관의 “훈민정음과 한글디자인” 전시장 입구에,1446년 새 문자의 창제를 발표할 때 백성들에게 문자의 원리와사용 방법을 알리기 위해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 33면을 네온처리한 투명 아크릴판 설치물이 어둠 속에 늘어서 있다.

한민족의 대표 문화유산인 한글의 역사와 가치를 일깨우는 전시관이자 배움터인 국립한글박물관은 2014년 10월 9일 한글날에 문을 연 뒤 다양한 기획전과 특별행사를 통해 한글의 독창성과 유용함을 알려왔다. 세종대왕 탄신 620주년을 기념한 이번 전시의 들머리에는 총 33면의 <훈민정음> 해례본 원형이 낱장 설치물로 펼쳐져, 관객들로 하여금 한글 창제의 현장으로 들어서는 타임머신에 올라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채병록(Chae Byung-rok)의 <톱>은 글자를 초성 ㅌ, 중성 ㅗ , 종성 ㅂ 으로 나누고 톱의 이미지로 그 글자의 의미를 표현한 작품이다.

채병록(Chae Byung-rok)의 <톱>은 글자를 초성 ㅌ, 중성 ㅗ , 종성 ㅂ 으로 나누고 톱의 이미지로 그 글자의 의미를 표현한 작품이다.

하지훈(Ha Jee-hoon)의 <장석장>은 조선시대 전통 목가구에 금속 장식 요소가 어우러지는 점에 착안해서 금속으로 제작한 한글 자과음모음으로 가구 표면을 장식했다.<span id=" />

하지훈(Ha Jee-hoon)의 <장석장>은 조선시대 전통 목가구에 금속 장식 요소가 어우러지는 점에 착안해서 금속으로 제작한 한글 자과음모음으로 가구 표면을 장식했다.

탄생의 기록을 가진 유일한 문자
오랜 세월에 걸쳐 중국 문자를 빌려 쓰다 비로소 나라 문자를 만들어 널리 선포하는 국왕의 가슴 벅찬 순간이 전해져 온다. 자주, 애민, 실용의 정신이 우뚝하다. 세종을 도와 새 문자를 만든 신하들 또한 감개무량했으리라. <훈민정음>에는 그 학자들 중 한 명인 정인지(1396–1487)의 서문도 실려 있는데 “슬기로운 사람은 하루아침을 마치기 전에 깨우치고, 어리석은 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라는 구절에 자부심이 묻어난다.
한글에 대해 전문가들이 쏟아내는 찬사는 세계에서 가장 젊고 과학적인 언어의 가치를 새삼 일깨운다. 동아시아 언어학자인 로버트 램지 미국 메릴랜드대 교수는 “한글보다 뛰어난 문자는 없다”고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는 “한글은 깨치는 데 하루면 족하고, 매우 과학적이며 의사소통에 편리한 문자다”라고 평했다. 영국 역사 저술가 존 맨은 저서 <세상을 바꾼 문자 알파벳(Alpha Beta)>에서 “한글은 모든 언어가 꿈꾸는 최고의 알파벳”이라고 말했다. 그뿐 아니라 한글은 창제 관련 정보가 기록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문자이기도 하다.
훈민정음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의미다. 자연의 온갖 소리를 쉽게 담을 수 있으나 모양이 단순하고 글자 수가 적었다. 점, 선, 원의 기본 형태를 이용한 자음 글자 17개와 모음 글자 11개를 합쳐 모두 28개 글자로 이뤄졌다. 전시 1부 ‘쉽게 익혀 편히 쓰니: 배려와 소통의 문자’는 이런 훈민정음의 구성을 보여준다.
우선 자음을 보자. 인체의 각 발음 기관이 소리를 낼 때 움직이는 형상을 본떠 만든 5개의 기본 글자는 17개의 자음 글자가 되었다. 소리 세기에 따라 기본 글자에 일정하게 획을 더하는 가획(加劃)의 원리가 적용됐다.

‘ㄴ’보다 조금 센 소리는 획을 하나 더해 ‘ㄷ’, ‘ㄷ’보다 더 센 소리는 다시 획을 하나 더해 ‘ㅌ’이 되는 방식이다. 소리의 특성이 글자에 그대로 반영되는 논리적 글자다.
하늘, 땅, 사람을 상징하는 •, ㅡ, ㅣ 3개의 기본 글자는 11개의 모음 글자가 되었다. 자음 글자 17개, 모음 글자 11개로 이루어진 28개 글자를 서로 합하면 10000개 이상의 글자를 만들 수 있다. 무한한 글자 조합이 가능한 셈이다. 첫소리 글자, 가운뎃소리 글자, 끝소리 글자를 합해 글자를 이루는 독특한 글자 운용 방식이다. 다시 정인지의 서문을 인용하자면 그는 “이 스물여덟 글자를 가지고도 전환이 무궁하다(以二十八字而轉換無窮)”고 썼다.

“전환이 무궁하니”
이 전시의 2부는 바로 이 무궁 전환의 경연장이다. ‘전환이 무궁하니: 디자인으로 재해석된 한글의 확장성'이란 제목으로 23개 팀 디자이너들이 30여 점 신작을 내놨다. 평면과 입체로 나눠 훈민정음의 원형과 내용을 협업으로 풀어냈다.
한글이 예술적으로 얼마나 큰 영감을 주는 주제인지 탐색한 그 여정이 흥미롭다. 이제 첫발을 떼었다고 말할 수 있는 시도인데, 북 디자이너이자 글꼴 연구자인 정병규 씨가 “훈민정음으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실체를 여기서 본다. 그는 “우리의 무의식에 오래 깃들어온 서양 기조(基調)를 깨는 데 한글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무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유명상(Yu Myung-sang)의 <버들(Willow)>는 글자가 이미지에 어느 정도 녹아들 수 있는지 실험한 작품이다.<span id=" />

유명상(Yu Myung-sang)의 <버들(Willow)>는 글자가 이미지에 어느 정도 녹아들 수 있는지 실험한 작품이다.

강구룡의 <힘, 믈>은 서로 다른 소리의 기운을 표현했다. ‘힘’이 가진 수직구조, ‘믈’이 지닌 수평 구조를 이용해 글자의 의미와 이미지를 엮었다. 한글이 모양 자체로 뜻과 정서를 함축하고 있음을 보여줘 재미있다.
박연주의 <파리를 사랑하세요?>는 ‘파리’라는 하나의 표기 안에 ‘파리(Fly)’ ‘파리(Paris)’ 등 7개의 다른 뜻이 담겨 있음을 응용해 익숙하면서도 낯선 언어 파생을 시도했다. 문장의 글줄을 바꾸고 섞어 반복해 배치하는 와중에 그들이 충돌하면서 일으키는 느낌이 신선하다.
유명상의 <버들>은 글자가 이미지에 어느 정도 녹아들 수 있는지 버들잎의 이미지로 실험한다. 이미지 중심 디자인에 쉽게 섞이지 못하는 글자의 한계를 넘어서보려는 작업이다.
장수영의 <감>은 한글 창제 당시에 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성조점이 표기되었다는 역사성을 되살렸다. ‘감’이라는 글자의 평성, 거성, 상성에 해당하는 발음을 음원분석기를 통해 그래프로 뽑아내고 이를 목판에 부조로 깎아냈다.
하지훈의 <장석장>과 황형신의 <거단곡목가구 훈민정음> 연작은 한글의 조형성을 생활 가구에 적용한 시도로 많은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다. 하지훈은 전통 조선 목가구에 금속 소재 장석이 장식 및 개폐 용도로 부착되는 점에 착안해서 가구 표면을 한글 자음과 모음으로 장식했다. 황형신은 한글의 획과 점의 모양새를 본뜬 스툴, 벤치, 의자를 제작했다. 그것들의 배치에 따라 글자가 만들어지는 재미있는 구상이다.
이 전시는 2016년 10월 도쿄 한국문화원에서 처음 열었던 같은 이름의 전시를 국내로 옮겨온 것이다. 이 작업을 위해 국립한글박물관의 관련자들이 2016년 3월부터 7개월에 걸쳐 젊은 디자이너 그룹 23개 팀과 여러 차례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공유했다. 앞으로 이런 기획과 작업이 지속될 수 있다면 왜 국립중앙박물관 옆에 국립한글박물관이 따로 있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존재증명이 될 것이다. 아울러 그 노력의 결과물이 박물관 전시에 그치지 않고 문화예술계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의 2부는 무궁 전환의 경연장이다. ‘전환이 무궁하니: 디자인으로 재해석된 한글의 확장성'이란 제목으로 23개 팀 디자이너들이 30여 점 신작을 내놨다. 평면과 입체로 나눠 훈민정음의 원형과 내용을 협업으로 풀어냈다. 한글이 예술적으로 얼마나 큰 영감을 주는 주제인지 탐색한 그 여정이 흥미롭다.

장수영(Jang Soo-young)의 <:감>은 한글 창제 당시에 중요한 문자 요소였으나 이제는사라진 성조점을 되돌아보자는 작품이다. 목판에 글자를 풀어 새겼고 발음의 높낮이와 길이차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소리가 지원된다.<span id=" />

장수영(Jang Soo-young)의 <:감>은 한글 창제 당시에 중요한 문자 요소였으나 이제는사라진 성조점을 되돌아보자는 작품이다. 목판에 글자를 풀어 새겼고 발음의 높낮이와 길이차이를 확인할 수 있도록 소리가 지원된다.

<훈민정음>과 <난중일기> 원본이 보고 싶다면
한글은 한민족의 자존심이자 자랑거리였지만 지난 수세기에 걸쳐 수난도 많이 겪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우리 말과 글 수호 투쟁은 가장 뜻깊은 독립운동의 한가지로 꼽힌다. 일제 암흑기인 1940년 <훈민정음> 해례본 원본의 존재를 알고 눈물 겨운 노력을 기울여 그것을 비밀리에 거금을 들여 사들인 다음 해방을 맞기까지 목숨을 걸고 지켜내었던 걸출한 문화재 수장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은 “한글의 미래를 내다보며 광복 국가의 신념을 굳혔다”고 했다. 그 해례본 원본을 볼 수 있는 “훈민정음·난중일기 전: 다시 바라보다”가 4월 13일부터 10월 12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두 고전의 원본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자리다.
간송이 광복의 빛을 <훈민정음>에서 보았듯, 분단 70년 두 동강 난 민족의 허리를 버텨주고 있는 것 또한 한글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온다. 5월 15일은 세종대왕이 태어난 날이다. 1965년부터 이 날을 스승의 날로 정해 겨레의 스승을 기려 왔다. 그리고 10월 9일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날을 기억하기 위한 공휴일이다.
질곡의 20세기를 극복하는 큰 힘이 한글이었듯,21세기 수많은 도전을 이겨내는 민족적 저력의 원천으로서 한글 창제를 다시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한 오늘이다.

관람객이 한글 자모음의 다양한 조합을 보여주는 영상을 바라보고 있다.

관람객이 한글 자모음의 다양한 조합을 보여주는 영상을 바라보고 있다.

정재숙 중앙일보 문화전문기자
안홍범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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