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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변화와 중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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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사기간 2017.08.02 - 2017.08.02
  • 등록일 2017.08.02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변화와 중앙아시아
-중러의 전략적 협력과 3개의 공간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 강태호
2017년 8월1일

▣ 브레진스키와 유라시아 중심지대론

70년대 말 카터 행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을 역임한 미국의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1997년 거대한 체스판(삼인 2000년)을 내놨다. 이 책에 따르면 소비에트 연방(1991년)의 붕괴로 20세기말 10여년의 기간에 유라시아에 속하지 않는 서반구의 강국인 미국은 유일한 사실상 최초의 세계강국이 되는 상황(이른바 단극패권 시대)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 책이 강조하한 것은 이 단극 패권의 시대가 유라시아의 국제관계에 의해 좌우되리라는 것이었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이 전세계적으로 유라시아의 국제 관계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특히 패권적이고 적대적인 유라시아 강국의 부상을 저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세계 일등적 지위’(단독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는데 핵심적인 사안이 될 것으로 예견했다. 유라시아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이기느냐 지느냐가 미국의 패권을 좌우하는 관건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한 강자의 등장을 막는 지정학적 전략을 위한 지침서가 거대한 체스판이었다. 그러나 그 거대한 체스판에서 미국은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게임의 승자가 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유라시아 강국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견대로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무너지고 있다.

지정학적 전략가들은 과거부터 유라시아가 세계의 중심(유럽은 유라시아의 서쪽 변방, 아시아는 동쪽 지역에 위치)이며 유라시아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기본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양세력 미국이 주도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에 이런 인식은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인식으로 바뀌기도 했다. 이제 중국이 대국으로 등장하면서 다시 ‘유라시아 중심지대론’이 부상하고 있다.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의 시각에서 본다면 무엇보다도 시진핑 정부 들어 2013년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중국의 ‘일대일로’(신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실크로드)는 ’유라시아 강국’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적 패권에 대한 이 가장 강력한 도전에 대해 속수무책이다. 미국의 동아시아전문가인 켄트 콜더(Kent Calder) 라이샤워동아시아연구센터 소장에 따르면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변화는 중국이라는 유라시아 강국의 등장이전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는 이를 ’신대륙주의’로 규정한다. “실크로드 시절 이후 서로 전혀 연결되어 본 적이 없는 광대한 아시아 대륙의 개별국가들이 긴밀히 접촉하고 있으며, 유라시아 전역에 걸쳐 철도, 파이프라인, 고속도로, 전력망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신대륙주의 캔트 캘더 지음, 오인석 유인승 옮김 아산정책연구원, 2013년).

콜더 소장에 따르면 이런 변화들은 미국과 무관하다. “대륙주의의 지리 경제적 논리에 입각해 미국에 의해 중재되지 않는(미국의 영향력 밖에서) 중동, 옛소련 국가들(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과 동북아 사이에 깊은 영토적으로 이어져 있는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있는 건 중국이다. 그런 점에서 신대륙주의와중국이 말하는 이른바 ‘신형 국제관계’는 일맥상통한다.

이 중국이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국제관계는 2013년 하반기 이래 나토의 동진정책이 러시아와 충돌해 발생한 우크라이나 사태 뒤 더욱 큰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전면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를 보여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중러의 협력은 우크라이나 사태 뒤 미국주도의 대러 제재를 무력화시키고 있으며, 제국으로서 미국의 영향력을 더욱 약화시키고 있다.그런 점에서 중러의 전략적 협력관계는 21세기 초반 유라시아 대륙을 넘어 세계 질서를 변화시키는 거대한 힘이 되고 있다.

 

▣ 중국의 서진-일대일로와 신형 국제관계

이 유라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북방 협력(신대륙주의)의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는 중국이 있다. 중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지도를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다. 인구 13억을 넘어선 중국과 육지에서 국경을 접한 국가는 14개국이다. 또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인접한 ‘해상 이웃국가’는 6개국이다. 중국은 2000년대 이래 본격 추진해 온 신장 위구르 등의 서부 대개발, 중부 6개 성(省)의 획기적인 발전을 위한 ‘중부굴기(中部崛起) 및 동북 3성의 동북진흥전략 등 내부의 균형발전을 위한 전략을 이제 이들 주변 20여개 이웃국가들과의 국경협력을 확대하면서 지역적 협력의 틀로 묶어내며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 하고 있다. 그것이 일대일로이다. 대륙루트는 신실크로드 경제벨트(一帶), 해양루트는 21세기 해양실크로드(一路)이다.
1978년 중국 동부 연안지역에서 전개된 점→ 선→ 면으로의 이른바 중국식 개혁 개방의 발전과정은 서부, 중부, 동북부 개발로 확산되고 이제 40여년 만에 중국의 시진핑 5세대 지도부에 의해 신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구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육상으로는 중앙아시아, 몽골, 러시아, 북한 등 유라시아 대륙 전체와 해상으로는 동남아 스리랑카 인도 등 서남아를 거쳐 중동으로 이어지는 육지와 바다를 연결해 세계경제의 커다란 순환구조를 형성하겠다는 전략이다.

 

▣ 또 다른 유라시아의 거인 러시아의 동진-대유라시아 협력 구상

러시아는 시리아 개입에서 보여준 군사적 능력과 자원대국으로서의 외교적 역량, 그리고 지역적으로는 이란 인도 파키스탄을 비롯해 과거 소연방체제 아래에 편입돼 있던 중앙아시아국가들(유라시아경제연합 등)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유라시아의 또 다른 거인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푸틴의 장기간에 걸친 독재적 리더쉽은 일관되고 강력한 외교를 전개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푸틴의 전략은 무엇인가? 중국의 일대일로가 서진이라면 푸틴의 유라시아 외교는 동진이다. EU와 미국에 맞서 동방외교로 나선 푸틴은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바탕으로 한편에서는 인도 파키스탄에 이어 이란까지 포괄해 상하이협력기구(SCO)의 외연을 확장시켜 나가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라시아경제연합(EEU)을 대유라시아 협력구상으로 확대 발전시키려 하고 있다.

2016년 6월1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2016) 총회에서 푸틴 대통령은 연설을 통해 러시아와 EEU가 중국, 인도, 파키스탄, 독립국가연합(CIS) 및 여러 국가들과 함께 ’대(大)유라시아 협력동반자 관계’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는 “러시아와 러시아의 협력 동반국들은 EEU가 더 넓은 통합망을 형성하는 중심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EEU와 이미 러시아와 동반관계에 있는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란, 독립국가연합(CIS) 및 여러 국가들이 함께 대 유라시아 협력동반자 관계를 조성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푸틴 대통령은 같은 맥락에서 2015년 12월 4일 연례 국정연설을 통해 유라시아경제연합(EEU), 상하이협력기구(SCO), 동남아국가연합(ASEAN) 을 서로 이어주는 대규모 경제 공동체 창설이라는 원대한 구상을 내놓았다.

이제 그동안 패권적 세계질서의 변화를 중국의 부상 내지 미중 대국관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과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러시아의 협력 관계, 또 다른 G2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다. 두 나라는 이웃하면서 가장 긴 국경을 맞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에서 중국이 만들어가는 신형 국제관계는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이라는 틀 속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 중앙아시아에서의 중러의 협력 방식

중러의 이런 전면적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세계 정세 및 정치 경제 외교 문화 등 양자관계 이외에 유라시아 대륙 내지 지역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크게 중앙아시아, 몽골 그리고 극동지역에서의 협력 등 3개의 범주로 나눠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적 특성과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 따라 두나라의 협력은 접근방법, 협력 방식 그리고 구체적 내용 등에서 각각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중앙아시아는 내륙국가들이다. 바다로 갈 수 있는 통로가 없다는 것은 그 어떤 국가들보다도 중앙아시아에서 교통물류체계가 중요한 전략적 의미를 갖게 한다. 이들 지역은 교통물류측면에서 내륙국가들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반면에 동서남북으로 교차하는 유라시아 내륙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아태지역과 유럽을 연결하고, 북방지역과 서남아시아를 연결하는 국제통과 운송회랑으로서 거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지리적으로 유라시아 공간을 포괄하는 4개의 경제권들을 크게 남-북, 동-서 축으로 놓고 보면 모두 다 중앙아시아와 연계된 운송루트를 형성한다. 동-서 축으로는 EU-중앙아시아-중국이 연계되고, 남-북 축으로는 러시아-중앙아시아-인도가 연계된다. 또한 대각선 방향으로는 중앙아시아를 통해 중국 서부지역과 중동지역이 연계되고, 북유럽이 인도와 연계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일대일로를, 몽골이 중러를 연결하는 국제수송회랑을 중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서쪽의 중앙아시아 카스피해 등 유라시아 중앙부 지역(중앙아시아를 포함)에서는 자칫하면 중국의 일대일로와 러시아의 대유라시아 연합구상이 서로 충돌하고 중첩되면서 주도권 경쟁과 갈등으로 비화될 수 있다. 러시아의 EEU와 중국의 일대일로는 SCO를 조정의 무대로 삼아 공동 협력의 공간으로 조율하려 하고 있다. SCO가 중러의 협력을 조정할 수 있을 것인가?

무라트백 이마낼리예프(Muratbek Imanaliev) 키르기즈 특명 전권대사(전외교장관, 전 상하이 협력기구사무총장)는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16년 12월 제주도에서 주최한 ‘유라시아 시대 한·유라시아 협력의 미래 비전’ 이라는 국제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라시아경제연합과 ‘실크로드경제벨트’의 연계성(협력)에 관한 러시아 중국 두 정상의 성명에 언급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신뢰의 공간, 특히 러시아와 중국 간의 신뢰의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중앙아시아 내에 러시아와 중국의 이해관계가 양립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이마낼리예프는 중국과 러시아 등이 내놓고 있는 거대 통합계획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 이젠 그 존재자체가 희미해진 미국의 ‘신실크로드 전략’과 같은 구상들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설계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강대국들과 설계의 대상이 되는 나라들의 이해관계가 항상 모든 면에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유라시아 통합 계획들 가운데 경제적 주변부, 또는 다른 차원에서의 주변부들의 존재가 존중되고 있는 것인지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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