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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중앙아시아 국가를 보는 시각

  • 조회수 308
  • 행사기간 2017.08.18 - 2017.08.18
  • 등록일 2017.08.18

중앙아시아 국가를 보는 시각


한국외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황영삼
2017년 8월 15일


중앙아시아 5개국이 개별적 주권국가로 국제사회에 등장한지 사반세기가 흘렀다. 각국은 헌법을 제정하고 대통령과 의회 등 국가기관을 창설하며 동시에 외국과의 관계 확립에도 성공적인 결실을 거두면서 경제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중앙아시아’라는 소지역권으로 분류하여 공통성을 발견하고 보편적 평가기준을 만들어 적용시키는 일이 가능하게도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러한 공통성과 보편성이 일률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면도 많다. 따라서 중앙아시아 국가를 보는 시각이 단편적인 수준에서 벗어나 종합적 비교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필요성이 대두된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관점에서 중앙아시아 국가를 보는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유사함과 다름의 공존

현대 중앙아시아 5개국의 국경선은 1936년에 거의 확정되었다. 물론 100% 동일한 영역은 아니지만 지금의 수준과 거의 일치하며 자생적 형성이 아니라 소련 중앙당국에서 최종 결정한 것이 반영된 인위적 설정이다. 1924년에 투르크멘 및 우즈벡 공화국이 출범했고, 1929년에 타직 공화국이 우즈벡 공화국의 자치 공화국 수준에서 승격되었다. 1936년에는 카자흐 공화국과 키르기즈 공화국이 러시아 공화국의 자치 공화국 수준에서 승격되어 마침내 중앙아시아 지역의 5개 소련 구성공화국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때는 소련을 구성했던 구성공화국 수준이며 대외적 주권을 가진 독립국가는 아니었다. 역사와 다수 민족의 거주 지역을 최대한 참고하여 소련 지도부에서 결정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민족간 경계가 불분명한 지역이 많아 갈등의 소지도 많았다. 특히 우즈벡 및 타직 민족간의 공간영역 분리는 역사적 진화관계로 인하여 매우 힘든 일이었다.

공화국 명칭에 사용된 민족(titular nation)의 공화국내 구성에도 5개국 간에 큰 차이를 보였는데 카자흐 공화국의 경우 카자흐인의 비율이 소련 시기에는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카자흐 공화국에는 처녀지 개발운동의 결과 러시아인을 비롯한 슬라브인의 유입이 1950년대 중반이후 꾸준히 증가했던 것이다. 지리적으로도 러시아에 인접한 카자흐 공화국의 북부 지방에는 러시아인들이 다수 집중하여 거주하고 있는 지역이 많이 있다. 이러한 양상은 타 공화국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양상이다.

민족별 분류에서 타직인은 이란계에 속하고 나머지 카자흐, 우즈벡, 키르기즈, 투르크멘인들은 투르크계에 속한다. 역사적으로 중앙아시아 남쪽 지역은 이란인들의 무대였으나 점차 투르크인들이 진출하면서 이란계 타직인은 변방으로 흩어져갔다. 7세기 이후 이슬람화가 진행된 중앙아시아 지역은 현재의 부하라, 사마르칸드 지역을 중심으로 무슬림들이 다수 형성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주로 샤마니즘, 천신사상이 주류였던 카자흐인들이 이슬람화한 것은 제정러시아가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본격적으로 팽창하게 되는 19세기였으니 비교적 늦게 이슬람 신앙에 접촉했다. 동일한 투르크계 민족이면서 다소 역사적 맥락을 달리하는 투르크멘인들은 오구즈를 시조로 하는 오구즈계 투르크인으로서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인들과 뿌리를 같이 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투르크멘인은 인근의 우즈벡인이나 카자흐인들과 차이점을 가진다.

중앙아시아 5개국에서는 먼 옛날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은 나우르즈(노브루즈, 노루즈) 축제를 전통 명절로 지키고 있고, 이슬람의 라마단을 준수하고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13세기 초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던 국가들은 몽골 칭기즈 칸의 지배를 받았고, 이는 훗날 카자흐인과 우즈벡인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근대 시기인 18~19세기에는 제정러시아의 지배를 받아 러시아의 영향권에 편입되었다. 이러한 러시아의 영향은 20세기까지 지속되어 현대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제정러시아의 직접적 행정구조 하에 있었던 대부분의 중앙아시아 영역과 러시아의 보호국 수준으로 있던 히바 칸국 및 부하라 에미르국 지역은 다소 다른 역사적 변천을 겪었다. 전자의 경우 러시아의 영향을 받아 근대화 제도 개혁이 빠르게 진행된 반면, 후자의 경우 전통적 토호의 세력이 매우 강했고 동시에 이슬람 종교도 강하게 유지되어 개혁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후자의 영역이 바로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 해당된다. 타쉬켄트는 제정러시아의 투르케스탄 총독부가 위치했던 반면 부하라 및 히바 지역은 전통 토호들의 세력이 강하게 유지된 곳이었다.

소련 시기에 중앙아시아 지역은 5개 구성공화국의 분리 및 통합과정을 거쳤으나 소련 해체이후에는 5개국마다 독자적인 변천과정을 겪게 된다. 역사 찾기와 전통의 복고운동 및 탈러시아화 움직임이 전개되면서 투르크메니스탄의 오구즈, 키르기즈스탄의 마나스, 우즈베키스탄의 티무르, 타지키스탄의 이스마일 사마니 등의 전설적, 역사적 인물들이 각국 정체성의 상징으로서 강조되었다. 다른 역사적 발전과정이 교육 방면에서 강조되었고, 독자적 언어가 각국의 국어로 선언되면서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는 시기에 접어들었던 것이다.

투르크계와 타직계의 문화가 어떤 다른 국가보다도 혼재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우즈베키스탄이 ‘투르크경제권’ 이라는 용어에 거부감을 강하게 보이는 것 또한 중앙아시아 지역의 동질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란계인 타지키스탄을 제외하고 카자흐스탄, 키르기즈스탄, 투르크메니스탄이 당연히 투르크문화권 혹은 투르크경제권에 분류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지만 우즈베키스탄은 예상 외로 그러한 부류에 쉽게 포함되지 않고 있다. 대개 타직계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이 바로 사마르칸드, 부하라 지역이라는 점이고 우즈베키스탄의 정치구조상 타쉬켄트파와 사마르칸드파로 대별된다는 점을 본다면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은 민족 비율에서 우즈벡인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타직인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임을 간파해야 한다.


국가 상호간의 경쟁과 독자적 발전 경로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은 1990년대에 중앙아시아에서 서로 최고의 맹주로 자처하면서 보이지 않는 경쟁과 갈등을 보였다. 아니 서로 독자적인 길을 선택했다고도 볼 수 있다. 두 국가의 대통령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와 이슬람 카리모프는 작년 말에 카리모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까지 소련 시기를 포함해서 25년간을 각국을 지도했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과감한 경제개방 정책을 실행하여 외국의 거대기업이 투자하기 좋은 제도를 만들었고, 카리모프 대통령은 제한적 시장경제 정책을 실행하여 외국의 투자유치에 제약을 가했다. 그 결과 카자흐스탄의 경제성장은 급속히 이루어진 반면 우즈베키스탄은 저조한 경제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단적인 정책으로서 강력한 외환 규제책을 들 수 있는데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경제활동 결과 얻어진 수익에 대해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우즈벡화로 환전해야 하고 달러로 환전하여 송금하게 하는 것은 많은 제약을 가하고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외국기업의 우즈베키스탄 투자가 활발하지 않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1인당 GDP(명목소득)가 13,000 달러에 이르는 반면 우즈베키스탄은 겨우 2,200 달러 수준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본다면 투르크메니스탄이 중앙아시아에서 카자흐스탄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1인당 GDP가 7,500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정치적 차원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은 강도 높은 권위주의 체제를 겪기도 했지만 영세중립국 체제와 천연가스 자원력으로 경제적으로는 비교적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투르크메니스탄은 2007년부터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대대적인 개혁정책으로 과거의 부정적인 국가이미지를 탈피하고 있다. 투르크멘인들에게 인근의 카자흐스탄 및 우즈베키스탄과 자국을 비교하는 일은 매우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은 독립 직후부터 문화적으로 동질적이던 터키와 교류를 확대했고 터키 자본의 투자를 많이 받았다. 기존의 러시아의 영향력이 터키의 영향력으로 대체된 느낌마저 드는 것이 독립 직후에 행했던 문자개혁에서도 발견된다. 기존의 키릴문자를 버리고 터키의 영향을 받아 라틴문자를 즉각적으로 도입했던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아 지역을 벗어나 동서남북 지역을 아우르는 독자적인 발전을 지향하고 있는 국가로 판단된다.

중앙아시아에서 특이하게도 인접국가와 다른 정치행로를 겪고 있는 키르기즈스탄은 서구적 시각에서 볼 때 민주화가 가장 진전된 국가로 볼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가장 불안한 정치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국가로도 볼 수 있다. 독립 무렵에 극심한 내전을 겪었던 타지키스탄 역시 정치적 불안감이 있는 국가이고 동시에 경제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강대국의 의존성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키르기즈스탄의 마나스 미공군기지는 폐쇄되었지만 인근의 러시아 기지는 남아있고 타지키스탄에는 러시아군대가 배치되어 있다. 이들 국가에서 당분간 러시아의 영향력은 줄어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키르기즈스탄은 카자흐스탄과 함께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주도의 유라시아 경제연합(EAEU)의 일원이고 타지키스탄은 가입에 대해 긍정적으로 저울질하고 있다. 다만 키르기즈스탄과 타지키스탄이 현재 시점에서는 경제적 후진성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지만,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미래의 잠재력을 가진 국가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현재의 접근 전략

이와 같이 다양한 특성을 가진 중앙아시아의 5개 국가에 대해 우리가 취해야 하는 현재의 접근 전략이란 무엇인가? 물론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 않다. 그렇지만 우선적으로 지역개념보다는 국가에 초점을 맞춘 심층 연구가 진행되어야 한다. 5개국 모두 독자성이 강하고 상호 비교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점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따라서 각국의 특수성을 보다 깊이 연구하고 이에 대처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보다 중장기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데 그 중의 하나는 특정 국가에 능통한 전문가의 양성이다.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는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엘리트들을 발굴하고 이들과의 인적 네트워크 구축 및 교류를 적극적으로 실행해야 한다. 현재 일본도 우리와 비슷한 중앙아협력체제를 형성하고 있고, 지금까지 상황을 볼 때 중국의 영향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인적 네트워크의 강화이다. 이 모든 방안이 구비될 때 비로소 경제적 실리를 얻기 위한 본격적인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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