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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칼럼] 영화로 보는 중앙아시아 역사

  • 조회수 318
  • 행사기간 2017.12.06 - 2017.12.06
  • 등록일 2017.12.06

영화로 보는 중앙아시아 역사

경북대학교 사학과 BK연구교수 신보람


이번 해는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수교를 맺은 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동안의 성과를 돌이켜보면, 외교 및 경제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문화와 학술 분야에서도 교류의 지평이 꾸준히 확대되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는 아직도 우리에게 가깝고도 먼 이웃이다. 정이 넘치고 효를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우리와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으나, 이슬람 종교, 유목문화, 튀르크‧페르시아 민족성 등은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필자는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중앙아시아 역사와 문화에 보다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일반 대중을 위한 유라시아 영화 상영회를 개최한 바 있다. 이 글에서는 가장 화제를 모은 상영작 중, 중앙아시아의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건들을 재조명한 영화 3편을 소개하려 한다. 이 영화들은 특히 소련 붕괴이후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당면한 민족 정체성 정립과 역사관 구축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추하고 있어 현재 중앙아시아 사회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몽골」(Mongol: The Rise of Genghis Khan, 2007): 위대한 유목제국의 서사시와 범유라시아적 역사관


그림 1 「몽골」영화 포스터

국내에도 개봉된 바 있는「몽골」(2007, 감독: 세르게이 보드로프)은 카자흐스탄, 몽골, 러시아, 독일이 참여한 합작영화로, 몽골제국의 창시자이자 유라시아의 지배자 칭기즈칸의 성장기를 그렸다. 개봉 초기부터 중앙아시아를 배경으로 한 블록버스터급 영화로 화제를 모았다. 또한 2008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적들에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방대한 초원을 방황하게 된 테무진은 끊임없이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어린 시절 결혼을 약속한 보르테를 찾아가 아내로 맞는다. 결혼과 함께 찾아온 행복은 곧 깨어지고, 보르테는 적들에게 납치되고 테무진은 노예로 끌려간다. 모진 수모와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테무진은 종국에는 아내를 되찾고 몽골을 통일시켜 ‘칭기즈칸’의 지휘에 오른다.
영화는 어린 소년이 역경을 딛고 유라시아 대륙을 평정하는 지배자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려내는 동시에 테무진과 보르테의 운명적인 사랑에도 초점을 맞춘다. 적의 아이를 임신한 보르테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약속하고 그녀가 낳은 아이들을 친자식으로 받아들이는 헌신적인 남편이자 아버지로 재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전투를 치루며 테무진이 칸의 자리에 오르고자 했던 그 내면에는 보르테의 아이들에게 평화로운 초원을 물려주고자 했던 그의 염원이 있었음을 암시한다. 영화는 부족 간의 끊임없는 다툼으로 혼란스러운 초원을 평정하고 통합이라는 대의를 이뤄낸 지도자의 면모를 부각시킨다. 칭기즈칸은 가장 막강한 정적이자 마지막까지 대항한 자무카가 끝내 패배하자, 자무카와 어릴 때 맺은 의혈제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그를 놓아준다. 영화 속 칭기즈칸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무자비한 학살자 혹은 피와 정복에 굶주린 정복자 칭기즈칸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스크린 속에서 칭기즈칸은 광활한 초원을 터전으로 모든 이를 포용하는 방대한 유라시아의 위대한 영웅으로 부활한 것이다.
원래 「몽골」은 칭기즈칸의 출생국인 몽골에서 촬영될 계획이었으나, 칭기즈칸의 일대기가 지나치게 각색될 것을 우려한 몽골 당국이 자국에서의 촬영을 거부했다. 그로인해 영화의 대부분이 카자흐스탄에서 촬영되었다. 한편 카자흐스탄 정부는 제작비의 20%를 지원함으로써 제작에 참여했다. 독립이후 카자흐스탄 정부는 영화 산업의 부응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지원했는데, 정부 지원을 받은 다수의 영화는 실버스크린을 통해 카자흐 민족 역사를 복원하고 영웅을 부활시킴으로써 새로운 카자흐 민족성을 발굴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킨다는 정부 정책에 부합하는 내용을 주 소재로 삼아왔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왜 카자흐스탄 정부가 몽골의 민족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에 공동 제작국으로 참여하게 됐는지 그 취지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칭기즈칸에 대한 재평가가 어떠한 역사관적 시점에서 이뤄졌는지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다. 「몽골」 은 칭기즈칸을 유라시아 모든 민족의 영웅으로 추앙함으로써 몽골 제국의 역사를 범-유라시아적 역사로 그려낸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역사관을 통해 카자흐 민족의 역사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실재 카자흐스탄에서 일어나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몇몇 학자들은 칭기즈칸을 카자흐스탄의 역사와 직접적으로 연결하여, 그를 카자흐 국가의 시조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쿠르만잔 다트카」(Kurmanjan Datka: Queen of the Mountains, 2014): ‘키르기스 민족의 어머니’와 중앙아시아 여성상

「몽골」이 중앙 유라시아의 드넓은 초원을 무대로 한 영웅의 서사시라면,「쿠르만잔 다트카」(2014, 감독: 사딕 쉐르니야즈)는 중앙아시아에서는 드문 여성 지도자를 그 주인공으로 한다. 중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의 섬”이라고 불리는 키르기스스탄 정부가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한 이 영화는 키르기스스탄의 첫 블록버스터급 영화라 할 수 있다. 키르기스 정부의 대대적 홍보에 힘입어 다수의 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으며,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부분에 출품되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쿠르만잔 다트카」는 장엄한 알라이 산맥을 무대로 펼쳐지는 한 여장부의 일대기를 그린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민족의 어머니”로 칭송받는 쿠르만잔은 러시아 제국이 남진하며 중앙아시아에서 침략전쟁을 벌이던 19세기에 키르기스 민족을 이끈 지도자이다. 쿠르만잔은 키르기스 민족 대통합을 이루고자 했던 알라이의 지도자이자 그녀의 남편 알람벡 다트카가 암살당하자 그 뒤를 이어 ‘다트카’로 등극한다. 아들이 무기밀매와 관련된 러시아 세관장교 살해사건에 휘말려 체포되자, 쿠르만잔은 선택에 기로에 놓이게 된다. 아들을 구출하기 위해 러시아 총독부를 공격한다면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감수해야 할뿐만 아니라, 남편의 숙원이었던 키르기즈 민족 대집회 또한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민족의 통합과 안위를 택한 쿠르만잔은 아들이 사형장에서 명예로운 죽음을 맞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림 2 「쿠르만잔 다트카」영화 포스터
영화 「쿠르만잔 다트카」는 자유를 갈망하는 소녀가 부족의 지도자로 그리고 나아가서는 민족의 어머니로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중앙아시아 여성상을 제시한다. 영화 도입부부터 호랑이 혹은 키르기스 민족의 대서사시 『마나스』가 예견한 민족의 구원자로 상징되는 쿠르만잔은 총명하며 강인한 여성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불륜을 의심받고 이슬람법에 따라 처형당할 위험에 처한 여인을 돕고, 아버지가 정한 정혼자 대신 스스로 남편감을 선택하는 모습에서 당시 여성들에게 주어졌던 복종의 삶에 저항하여 주체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그녀의 강인한 의지가 엿보인다. 쿠르만잔은 여성이 부족회의에 참여할 수 없는 것은 부당하다 토로하고, 화합을 위해 강제혼인을 치러야 하는 과부를 대변하여 희생 없이 통합을 이룰 수 없느냐고 알림벡에게 반문하기도 한다. 알림벡이 살해당한 직후에는 혼란에 빠진 키르기스 부족들을 통합시켜 전투로 이끄는 강인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종국에는 민족의 통합을 위해 모성을 희생하고, 대신 아들에게 영웅으로 죽을 것을 명령하는 쿠르만잔은 비로서 영웅의 어머니이자 민족의 어머니로 거듭난다.
쿠르만잔 다트카는 소련 시대에는 잊혀 졌다가 독립이후 재발견 된 영웅이다. 2004년에 키르기스스탄 정부는 쿠르만잔 다트카를 이상적인 지도자의 표본으로 추앙하고 본격적으로 영웅화하였다. 오늘날 키르기스 50숨 화폐에 그녀의 초상을 찾을 수 있으며, 수도 비쉬케크 중심부에는 그녀의 동상이 세워졌다. 2010년, 쿠르만잔 기념의 해 행사에서 키르기스스탄 임시 대통령이자 소련해체 이후 처음으로 중앙아시아에 집권한 여성 지도자인 로자 오툰바예바는 쿠르만잔 다트카를 범상치 않은 역사적 인물로 코칸드 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가 충돌하던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에 기지와 탁월한 외교능력으로 키르기스 민족을 파멸에서 구원했다고 평가했다. 바로 이러한 배경에서 「쿠르만잔 다트카」이 제작된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에 저항하는 대신 지배를 받아드리는 쿠르만잔의 선택에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안위를 위해 강대국에 수긍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부분에서 영화 「쿠르만잔 다트카」는 키르기스스탄이 당면하고 있는 대내적 그리고 대외적 문제점들을 반영한다.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 러시아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키르기스스탄의 입장에서 러시아 제국의 지배와 이를 수용하는 쿠르만잔을 획일적으로 부정적으로 재현하는 것은 민감할 수 있는 문제이다. 또한, 키르기스스탄의 인구 약 28%는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다민족·다문화 국가인 키르기스스탄에서 종족 공동체를 기반으로 배타적인 민족 정체성을 구현하고 키르기스 우선주의 담론을 채택하는 것은 많은 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알림벡과 쿠르만잔이 추구하는 민족 통합이 『마나스』, 오르혼-예니세이 고대문자, 쿠르간, ‘발발’(할아버지상)과 같이 키르기즈 부족 공동체에 기반하고 있으나, 그 통합과정에 과부가 된 쿠르만잔을 아버지처럼 위로하는 부하라 에미르(우즈벡)와 키르기스 문화와 언어를 익히고 쿠르만잔의 아들을 자처하는 러시아 장군 스코베레프와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천막 (Yurt, 2007)」: 방탕아의 귀향과 소련의 유산


그림 3 「천막」영화 포스터

이 글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천막」(2007, 감독: 아유브 샤호비디노프)은 앞서 소개한 국가 차원에서 예산을 들여 제작한 블록버스터급 영화와는 다른 우즈베키스탄의 신예 감독이 제작한 잔잔한 예술영화로 소련시대의 중앙아시아를 다룬다. 비록 웅장한 대자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전투 씬과 같이 박진감 넘치는 장면은 없지만 천막에서 목축 생활을 하는 주인공들의 일상을 잔잔하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섬세하게 묘사한다.
1930년대에 스탈린 정권에 숙청당한 아버지로 인해 ‘인민의 적’이라는 낙인찍힌 우바이는 숙명처럼 그들을 쫒아 다니는 불행에서 아들 자바흘을 보호하기 위해 자바흘과 함께 도시에서 동떨어진 산 중턱에 천막을 짓고 고립된 생활을 한다. TV를 통해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을 키워가는 자바흘은 자신을 가두려고만 하는 아버지가 못마땅하다. 사랑하던 소녀 딜림이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도시로 떠나버리자, 자바흘은 상실감과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이기지 못해 천막을 떠나 사회로 도망친다. 바깥세상으로 나간 자바흘은 소련군에 차출되어 아프간 전쟁에 참전하게 되고, 거기서 전쟁의 트라우마와 마약 중독을 얻게 된다.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들어 돌아온 아들을 치유하기 위해 그의 몸을 땅에 묻은 우바이는 ‘조상의 땅’ 흙으로 자바흘이 ‘정화’되기를 기다린다.
영화의 주 시대적 배경은 1981년부터 1991년까지라고 할 수 있다. 즉 고르바쵸프가 당서기관으로 집권하며 개방과 자유의 바람이 불어온다. 우바이 부자가 살고 있는 외진 산골에도 그 바람이 스며든다. TV를 통해서 접한 각색된 바깥세상은 매우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자바흘은 그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자신을 가로막고 대신 조상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고집하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가 버린다. 한편 우바이는 그의 부모를 ‘인민의 적’으로 낙인찍고 가문의 이름을 지워버림으로 자신을 ‘뿌리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소련의 잔혹한 진면모를 잘 알고 있으며, 여기서 아들을 보호하려 했을 뿐이다.
영화의 제목 ‘유르트’ (O'tov, Yurt)는 우즈벡어로 ‘조국’ 또는 ‘민족’이라는 뜻과 함께 ‘아버지의 땅’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결국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와 치유와 위안을 얻는 자바흘의 이야기에서 독립 이후 우즈베키스탄에서 전개되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소련 시기 역사와 그 유산에 대한 재해석이 엿보인다. TV 화면 속에 비춰진 소련 사회는 화려하고 역동적이며 끊임없이 발전한다. 그러나 현실 속의 소련은 불행과 타락만을 가져온다. 영화는 1991년, 소련이 무너지고 우즈베키스탄이 독립을 쟁취하게 되는 부분에서 끝이 나는데, 비로소 우바이 가족에 둘러씌워진 불행이 끝이 나고 자바흘은 순수를 되찾는다. 소련의 유산에서 벗어나 조상의 땅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비로소 민족 정체성을 온전히 복원할 수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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