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생활
영국에서 인턴을 하는 가장 큰 장점은 문화 생활이 풍부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영국박물관의 Staff Pass를 사용하면 영국 내 대부분의 박물관/ 미술관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장점을 활용하여 이번 달에 본 전시는 아래와 같습니다.
[Siena: The Rise of Painting, 1300‒1350, the National Gallery]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 주의 도시인 시에나의 14세기 회화와 조각, 공예가 어떻게 유럽의 예술에 기여했는지 살핀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 national gallery에서는 흩어진 panel들을 다시 모아서 alterpiece의 원형을 재연하는 노력을 가했습니다.
시에네제 화파의 대가인 Duccio의 Maestà 또한 이 전시를 위해 복원된 predella(altarpiece base) 중 하나였습니다. 이처럼 오늘날 관람객들에게 옛 작품들이 향유되었던 본래의 맥락을 재구성하여 공유하려는 national gallery 측의 노력이 인상 깊었습니다.
![Siena: The Rise of Painting, 1300‒1350, the National Gallery] 3](https://www.kf.or.kr/crosseditor/binary/images/000087/kmj_01_07.jpg)
시에나의 화가와 조각가들이 협업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 과정을 그린 섹션 또한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평소에 ‘조각이 회화적’이라는 설명이 다소 추상적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그 회화적인 지점을 정확히 짚어 주는 한편 그 ‘회화성’이 어떤 동시대 그림들과 연결되는지 소개를 해주어서 직관적으로 와닿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밌다고 생각했던 작품은 마지막 섹션에 소개된 Christ Discovered in the Temple 입니다. 작품의 내용이 꽤 흥미로운데, 그 스토리를 레이블에 재미있게 녹여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언젠가 내공이 쌓이면 이렇게 위트있는 레이블을 써보고 싶습니다.
[The Genesis Exhibition: Do Ho Suh: Walk the House, Tate Modern]
주거에 대한 고민이 담긴 서도호 작가의 전시를 Tate Modern에서 관람했습니다. 서도호 작가의 전시는 2024년에 국제갤러리에서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보다 큰 규모의 설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인상이 깊었습니다. 큰 작품들이 가벽처럼 작용해서 나름의 동선을 따라 전시를 감상하게 되는 경험도 재밌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인상에 남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집을 탁본으로 떠서 종이에 옮긴 Rubbing Project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서도호 작가는 경첩과 현판, 누대 등 세세한 부분들을 탁본으로 떠서 추억이 담긴 집의 모양을 고스란히 옮겨냈습니다. 역사적으로 탁본은 바위나 금속에 새겨진 기록을 종이에 옮겨서 그 내용을 영원히 보존하고자 고안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 측면에서 탁본이라는 제작 행위는 사적인 추억을 영원히 보존하려는 작가의 의지와 잘 맞닿아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Edvard Munch Portraits, the National Portrait Gallery]
< 절규 >로 알려진 뭉크의 초상화 전시를 National Portrait Gallery에서 감상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초상화는 커미션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주문자의 요구가 적극적으로 반영됩니다. 반면 뭉크는 자신의 관념에 따라 표현하고 싶은대로 대상을 그려냈습니다. 뭉크의 시각이 적극적으로 투사된 초상화를 받은 주문자가 과연 마음에 들어 했을지, 어떤 반응이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 외에도 National Portrait Gallery에는 미술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초상화들이 많아서 좋았습니다.
[Hiroshige: artist of the open road, the British Museum]
히로시게의 작품 세계를 통해 에도시대의 우키요에를 조명한 전시입니다. 갤러리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hanging scroll’들로 이뤄진 전시 디스플레이였습니다. 전시에서 히로시게의 작품들은 축화를 연상시키도록 종이 위에 디스플레이되었습니다. 전통적인 장황/ 감상 방식인 축화가 나열된 전시 공간을 걷는 감상자들은 히로시게의 작품 세계에 더욱 몰입하게 됩니다.
일본의 문화에 친숙하지 않은 감상자들에게 작품의 배경을 충분히 소개해 준 점 또한 인상깊었습니다. 일례로 우키요에로 꾸며진 부채를 소개한 섹션에서 1) 일본의 부채를 소개하고 2) 부채를 든 사람들이 그려진 동시대 그림들을 통해 에도시대에 부채가 사용된 맥락을 설명한 뒤 3) 우키요에로 꾸며진 부채들을 마지막에 디스플레이한 구성이 굉장히 친절하다고 느꼈습니다. 전시의 예상 감상층을 제대로 파악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경험이었습니다.
히로시게의 legacy를 소개한 마지막 섹션에서 고흐가 소장한 히로시게의 작품을 반고흐박물관으로부터 대여받아 전시한 점 또한 주목되는 전시 포인트였습니다. 유럽의 화가들이 히로시게의 화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감상자들은 고흐가 실제로 소장했던 그림을 직접 마주함으로써 당시의 화가들이 그로부터 받았을 영감을 재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