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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D.C.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파견 6개월차로 KF글로벌챌린저 파견을 마친 조평세입니다.
저는 8월 29일자로 파견기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원래 31일까지 출근하고 9월 4일 귀국 예정이었지만,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를 9월 1일부터 구하는 바람에 귀국편을 30일로 앞당겨야만 했습니다. KF와 CSIS 측에 양해를 구하고 29일까지 출근하는 것으로 합의를 하였습니다.
짧은 6개월이 참 아쉬우면서도 여러모로 유익하고 알차게 보낸 것 같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KF 와 CSIS 에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8월 한달 동안에는 대부분 미 의회도서관과 조지타운 도서관에서 한국에 가면 접하기 어려울 자료들을 수집하고 최종보고서 작성과 박사학위논문 작성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Independent Research
이곳 미 의회도서관에는 40년대부터 60년대까지의 북한 잡지들과 간행물들이 다수 확보되어 있습니다. 이들 자료 중 대부분은 한국전쟁 중에 소멸되어 북한에도 원본이 남아있지 않은 자료들입니다. 저는 주로 1946년 창간한 북한 노동당 잡지 ‘근로자’를 열람하였습니다. 이 자료를 통해 당시 김일성을 포함한 다양한 북한지도층의 생각과 이념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북한 지도자의 연설이나 텍스트를 통해 북한 외교정책의 방향성을 연구하는 저로써는 매우 귀중한 자료였습니다. 또한 저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의 신년사를 분석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노동신문 1월 1일자를 모두 열람하였습니다. 마이크로필름에 담겨있는 노동신문 1월 1일자를 모두 열람하며 USB에 담았습니다. 노동신문은 한국에 있는 북한자료센터에서도 열람이 가능하지만 USB로 카피를 하기에는 제한이 있어서 이곳에서 작업을 하였습니다.
연구주제는 아니지만 개인적인 관심사로서 1930년대 북한에서 발간한 기독교잡지인 ‘게자씨’도 발견하여 일제시대 기독교 지도자들의 신앙관과 독립의지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미의회도서관의 소냐리 한국관 사서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북한자료들은 아직까지 카타로그 전산화가 완료되지 않아 현재로서는 소냐리 사서님의 도움이 없이 검색이 불가능합니다.
아쉽게도 7월에 제출했던 학술지논문이 desk rejection 되었습니다. 호주 국제정치 저널에 제출하였었는데 북한 주체사상과 관련된 내용이 많아 해당 주제를 리뷰할 전문가가 편집위원 중 없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한국의 교수님과 상의 후 편집위에 북한전문가가 있고 국제정치 일반이론보다 지역학연구에 중점을 둔 학술지에 다시 제출하기로 하고 편집중에 있습니다.
CSIS Korea Chair 이신 Victor Cha 교수님께서 한달동안 하와이에 연수를 떠나셔서 한동안 뵙지 못했는데 출근 마지막날 연구실에 오셔서 다행히 마지막으로 면담을 할 수 있었습니다. 차기 주한미국대사로 임명되셨던 것이 언론에 공식보도 된 날이라 많이 분주하셨을 텐데 친절하게 논문주제와 향후계획 등에 대해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이제 주한미국대사로 임명이 의회에서 확정되면 당분간 학계에서는 쉽게 접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지난 6개월의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현재 암울하고 답답한 대북정책 시국에 북핵문제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성과 통찰력을 가지신 차교수님께서 주한대사로 대북정책에 다시 직접 참여하게 되신다는 소식이 매우 반가웠습니다.
Events in DC
8월은 휴가철이라 큰 학술행사가 없었습니다. 대신 주말에 Virginia Beach에 있는 중학교 동창도 만나고 Norfolk, Richmond, Jamestown 등 주요 도시들도 탐방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이시연 KF 워싱턴 DC 소장님께서 KF 파견동기들을 집으로 초대해 주셔서 맛있는 요리를 대접받기도 하였습니다.
8월 마지막 주에는 은행계좌, 휴대폰, 인터넷, 집 계약 등을 정리하며 정신 없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아내와 아직 한 살도 안된 아기를 데리고 6개월 타지생활을 여러모로 힘겨웠지만, 또 가족이 있어서 더욱 풍성하고 즐거운 미국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6개월 동안 크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준 아들과, 함께 따라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고생해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사진

1938년대 북한 기독교 잡지 ‘게자씨’

Norfork 맥아더장군 기념관에서 잠자는 아들과 함께

마지막날 공항가는 택시를 기다리며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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