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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청춘, 제국의 심장을 품다 천년 유라시아 대륙의 꿈과 마주한 반년간의 숨 가쁜 여정
모름지기 공부의 길로 접어든 초심자가 떼어야 할 첫걸음은 본인이 처한 복잡한 현실 속에서 절실하게 해소하려고 하는 지적 고민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될 것이다. 학부에서 국제정치, 비교정치, 정치사상 등 정치학의 여러 분과에 대한 개론 수업을 들었던 배경과 석사과정에서 습득한 러시아 및 독립국가연합(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이하 CIS)에 대한 이해는 상호 결합되어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넘어선 유럽과 아시아 전 대륙에서 벌어지는 광범위한 통합 지향적인 현상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연합(Eurasian Economic Union, EAEU)과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연계, 인도와 파키스탄의 상하이협력기구(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CO) 가입,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해제와 국제사회로의 복귀 등이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서 나타나는 지역주의와 지역통합의 대표적인 현재진행형 사례들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유라시아 대륙의 각국 군사 부문에서 냉전과 열전의 경계를 넘나들며 대립(對立)했던 어제의 경험으로부터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 초국적인 교통·물류·에너지 연결망의 확충과 인적 교류의 확대를 통하여 연립(聯立)하는 내일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모색하는 것으로 비춰졌다.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서 국민국가의 주권을 인정하는 동시에 지역 단위의 이익과 정체성을 공유하는 국가연합체의 출현, 무역·투자·퉁화 부문의 거시경제적 수렴성의 제고, 교통·에너지·물류망의 구축으로 국가이익과 지역이익의 조화를 이루려는 다양한 시도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근대 국민국가의 폭력적인 전파로 인해 오랫동안 동양과 서양, 중심과 주변, 자신과 타자로 나뉘었던 유라시아 대륙이 실용적인 경제협력과 개방적인 인문교류를 매개로 하여 점차 모두에게로 통하는 ‘전통’(全通)의 망으로 엮이는 세기사적인 순간에 놓여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국가 간 세력균형이라는 근대적 기반 하에 대국들과 소국들, 그리고 상이한 지역 간의 협력과 공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유라시아 지역주의와 지역통합의 흐름이 21세기 세계정치의 핵심적인 변수라고 한다면, 이러한 흐름을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파악하는 차세대 인재 양성이 한국에 절실하게 필요할 것이다.”
위와 같이 자문자답을 거듭하는 가운데, 러시아와 CIS를 매개로 한 중국·동아시아, 인도·남아시아,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sociation of Southeast Asian Nations, ASEAN), 유럽연합(European Union, EU) 등을 포함하는 ‘거대 유라시아 공간’의 거시적인 통합과정을 조명하고 한국과 유라시아 국가들 간의 실질적인 협력방안을 마련하는 차세대 인재로 거듭나는 것이 21세기 한국의 ‘글로벌 챌린저’(Global Challenger)로서 마땅히 이뤄야 할 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인 해외 인턴십의 장소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함과 동시에 유럽과 아시아로부터 독특한 역사적·문화적 세계를 발전시켜왔던 러시아를 선택하게 되었다. 21세기 세계정치의 핵심 행위자이자 동아시아 지역정세와 한반도 통일의 중요 변수로서의 러시아와 첨단기술과 한류열풍을 매개로 한 중견국 외교의 핵심 무대로서의 유라시아 지역이 한국에 지닌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까지 고려한다면, 6개월 간의 인턴십을 통해서 러시아가 지닌 유라시아 통합의 전략적 지향성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갖추는 것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유라시아 대륙을 품겠다는 꿈을 갖고 서울을 떠나온 글로벌 챌린저가 장차 반년 동안 모스크바를 주요 무대로 이뤄질 지적 탐험의 전초기지로서 삼은 곳은 ‘러시아 외무부 산하 외교아카데미’(Дипломатическая Акаднмия Министрество Иностранных Дел Российской Федерации; Diplomatic Academy of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Russian Federation)이다. 1934년 소비에트 연방의 외교관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된 러시아 외교아카데미는 최근 러시아 외무부에 임용되는 외교관의 1/3 가량을 배출하고 있는 대표적인 외교인력 양성기관이다. 여기에 국제정치, 국제경제, 국제문화, 국제법 등 다양한 국제관계의 현안을 다루는 ‘현대국제문제연구원’(Институт Актуальных Международных Проблем; Institute of Contemporary International Studies)을 운영하면서, 러시아의 외교전략 수립에 이바지하는 연구 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 대로에서 바라본 러시아 외교아카데미의 전경
차세대 러시아 외교관의 산실에서 글로벌 챌린저가 맡은 임무는 연구원 측에서 배정한 지도교수와 호흡을 맞추며 개인 연구를 수행하는 것과 아카데미에 개설된 한국어 강의에서 조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첫 번째 임무인 개인 연구를 위해서 1주일에 2-3번 가량 모스크바 시내의 북쪽에 위치한 연구원을 찾아서 연구원 산하 ‘유라시아연구센터’(Центр евразийских исследований; Center for Eurasian Studies)의 선임연구원인 안드레이 겐나디에비치 볼로딘(Андрей Геннадиевич Володин; Andrei Gennadievich Volodin) 교수의 지도 하에 연구에 관련된 핵심적인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다. 거대 유라시아 공간의 통합과정을 이끄는 주요 국가들인 러시아, 중국, 인도 등의 유라시아 지역주의 내지 지역통합에 대한 관점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볼로딘 교수를 비롯한 연구센터 소속 연구원들의 조언을 참고하고 있다. 러시아 내에서 대표적인 인도/남아시아 전문가인 볼로딘 교수 덕분에 이전에는 생소했던 해당 국가 및 지역이 유라시아 통합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두 번째 임무인 한국어 강의 보조를 위해서 1주일에 2-3번 가량 모스크바 시내의 남쪽에 위치한 아카데미를 찾아서 지난 학기부터 개설된 한국어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한국과 북한에서 영사로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발코비치(Евгений Иванович Валькович; Evegeni Invanovich Valkovich) 강사가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6명의 러시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인이 구사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한국어의 문법이나 발음, 그리고 표현에 대해 설명하면서 발코비치 강사와 한국어 수강생들을 돕고 있다.
개인 연구와 강의 보조 등 인턴십 활동 이외에는 외교아카데미 혹은 모스크바에 위치한 다른 주요 연구기관들이 주관하는 세미나와 컨퍼런스에 참가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카데미에서 학술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올렉 페트로비치 이바노프(Олег Петрович Иванов; Oleg Petrovich Ivanov) 부원장의 초청으로 원내에서 개최되는 흥미로운 학술행사들에 참가할 수 있었다. 미국과 EU의 대표단과 함께 “현대 국제정치에서 대중매체와 정보기술이 수행하는 역할”을 토론한 아카데미 라운드테이블, “아제르바이잔-러시아 관계와 아제르바이잔의 대외정책”에 대한 엘마르 마하람 오구르 맘마디아로브(Elmar Məhərrəm oğlu Məmmədyarov; Elmar Mammadyarov Maharram oglu) 아제르바이잔 외무부장관의 연설, 브뤼셀에 있는 로버트 프슈셀(Robert Pszszel)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 정보관과 함께 “러시아-NATO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토론한 화상 컨퍼런스가 대표적이었다.
▲ 대중매체와 정보기술 문제를 토론하고 있는 외교아카데미 라운드테이블
▲ 아제르바이잔의 대외정책에 대해 연설하는 맘마디아로브 외무부장관
▲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는 프슈셀 NATO 정보관
이와 더불어, 2월 14일부터 18일까지 아카데미에서 주최한 ‘러시아 외교아카데미 모의UN회의’(Diplomatic Academy International Ministerial Model United Nations, DAIMMUN)이라는 행사에 참가했다. 실제 UN회의를 모델로 삼은 가상의 외교 현장에서 청년 참가자들이 UN 산하 위원회, 개별국가 및 국제기구 대표, 취재기자단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본 행사의 주요 활동이었다. 21개의 국가에서 온 약 200명 가량의 청년들이 안전보장이사회(Security Council), 인권이사회(Human Rights Council), 대테러위원회(Counter-terrorism Committee), 군축 및 국제안보위원회(Disarmament and International Security Committee) 등 총 4개의 위원회에서 영어 혹은 러시아어를 공식언어로 하여 주요 국제문제 현안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글로벌 챌린저는 영어를 공식 언어로 채택한 인권이사회에서 중부 아프리카의 공화국인 르완다 대표를 맡아서 20여명의 타국 대표들과 ‘민족/인종/종교적 차별의 방지’(Non-discrimination and Prohibition of Advocacy of National, Racial or Religious Hatred)와 ‘언론인들의 안전’(The Safety of Journalists)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논의했다.
▲ 위원회 안건에 대한 각국 대표의 입장을 청취하고 있는 DAIMMUN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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