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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게시판

[싱크탱크] 미국 신미국안보센터 (CNAS) 이성원 3개월차

  • 등록일 2016.06.28

Washington D.C. 소재 CNAS에서 3개월 차를 마무리한 이성원입니다. 어느덧 파견기간의 반이 지났습니다.
오늘은 3개월 간의 개인적인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 미국의 싱크탱크 체제 전반에 대해 적겠습니다.


1. 미국 내 싱크탱크의 역할
미국은 복지, 경제, 내치 등의 다양한 대내 전략은 물론이고, 중동, 아시아태평양, 대테러, 인권 등 전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대외전략을 구상해야 합니다. 이는 국책기관에서 연구할 수 있는 범위를 초과하기 때문에, 미국 정부는 제3의 연구기관에서 이미 연구한 정책을 채택하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을 생산하는 기관이 싱크탱크입니다.  

중요한 점은 정부는 싱크탱크에 연구자금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부에서는 정책을 공짜로 받아 채택하는 대신 정책을 생산한 싱크탱크는 이익단체로부터 연구자금을 받는 구조입니다. 당연히 이익단체는 해당 정책을 통해 이득을 보는 집단입니다. 반대로 정책을 통해 손해를 보는 다른 이익단체는 또 다른 싱크탱크에 연구자금을 제공하여 반대되는 정책을 생산하기도 합니다. 이익단체는 대체로 정부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의 집단임에도 불구하고 싱크탱크라는 중재자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부정부패에 대한 미국의 결벽증적 국민성을 의식하여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싱크탱크의 정책이 정부로부터 많이 채택될수록 그 싱크탱크의 주가(공신력)는 올라가고, 더 많은 연구수요가 발생합니다. 따라서 각 싱크탱크는 연구의 양적/질적 향상을 꾀하는 한편,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부 관료와의 유대관계를 형성 및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정부 관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추진하고자 하는 구상을 객관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싱크탱크와 친분을 쌓아 학계와의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정책결정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위의 설명은 미국의 싱크탱크 생태계가 작동하는 방식을 단순화한 것일 뿐이며 싱크탱크끼리 경쟁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싱크탱크끼리 협력하여 정책을 생산하는 경우도 있으며 각 싱크탱크에서 자금에 구애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연구도 많습니다. 각자가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해서 전문가집단의 담론을 형성함으로써 민간차원에서 현안을 주도해 나가는 것이 싱크탱크의 집합적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싱크탱크마다 기능, 목적, 성격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2. 한국의 싱크탱크와의 차이점
한국에서는 흔히들 "싱크탱크=연구소"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다르지는 않지만, 싱크탱크에서 행해지는 연구의 성격은 학계의 그것과는 달리 "구상"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싱크탱크는 연구 외에도 위에서 언급한 정책의 생산 및 검증, 관료-학자-이익단체 간 연계, 담론 형성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정부 주도로 국책 연구기관에 연구를 "수주"하는 한국식 연구소 체제를 "수직적/연역적 정책 생산체제"라고 규정한다면, 다양한 정부기관-싱크탱크-이익단체들이 정책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미국식 싱크탱크 체제는 "수평적/귀납적 정책 생산체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제가 느낀 싱크탱크체제의 장단점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보았습니다. 


3. 싱크탱크의 장점
- 다양하고 창의적인 정책 아이디어 창출: 보수/중도/진보적인 정책이 종합적되어 담론 형성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정책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 학계와의 역할분담: 학계는 검증 가능하고 분석적인 연구에, 싱크탱크는 미래지향적이고 실용적인 정책 연구에 매진할 수 있습니다. 
- 권력으로부터의 객관성 유지: 대부분 싱크탱크의 운영예산이 정부가 아닌 기업, 개인, 기관에서 나오므로 현 정권의 정책기조와 배치되는 연구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싱크탱크에서 현 정권의 정책을 지적하는 연구가 이루어집니다.  
- 싱크탱크간 정책적 상호검증 작용: 싱크탱크 간의 활발한 논의는 정책결정과정에서 자정작용을 합니다. 특히 D.C.라는 공간에 유수의 싱크탱크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 이를 용이하게 합니다. 
- 싱크탱크 체제의 존재로 인한 자원 유인: 미국에서는 싱크탱크들이 모여 하나의 산업(Industry)을 이룸으로써 더 많은 인적/물적 자원을 융통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습니다. 


4. 싱크탱크의 단점
- 싱크탱크 체제의 존재 자체로 인한 자원 낭비: 싱크탱크체제가 태생적으로 갖는 여러가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산업 자체가 낭비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채택되지 않은 정책안은 결국 정책결정과정의 부산물일 뿐이므로 자원낭비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판은 싱크탱크 체제가 필요 이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는 경계의식에서 출발합니다. 독일의 경우 정부와 정당 주도의 연구가 주를 이루는 것도 이러한 비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 특정 산업/국가와의 유착: 싱크탱크가 구조적으로 정부권력으로부터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반면, 특정 기업이나 국가와 유착을 이룰 가능성은 오히려 높습니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로비행위(Lobbying)가 합법적으로 인정되는 미국에서는 이윤 또는 국익을 위해 자금제공(Funding)의 형태로 연구를 사주하는 행위가 당연시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중립적(non-partisan &bipartisan) 싱크탱크에서 내놓는 안보관련 정책안이 보수/매파(Hawkish)적 성격을 띠는 것도 군수업체들의 입김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대부분의 중동관련 보고서가 이스라엘 중심으로 전개되는 것도 이스라엘의 대(對) 워싱턴 물량공세가 그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로비로 인한 정책결정의 객관성 약화: 달리 말하면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정책안 조차도 권위있는 싱크탱크의 로비로 인해 채택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정책풀(pool)의 객관성이 금권에 의해 오염될 수도 있음을 시사합니다.


5. 싱크탱크로서 CNAS의 특징
국내/국외 문제, 경제/사회 문제 등 모든 현안을 다루는 큰 싱크탱크와는 달리, CNAS는 안보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작은 싱크탱크입니다. 조직구조나 자금구조도 '작지만 강한' 모델을 표방합니다. 따라서 개개인이 D.C. 내에서 지니는 영향력을 상당히 중시하고 장려합니다. 실제로 CNAS 이사진에는 유력한 인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으며, CNAS를 거쳐 정관계로 진출한 전도유망한 인물들도 많습니다. CNAS는 이들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는 가교(gateway) 역할을 수행하면서 규모에 비해 상당한 D.C. 내 발언권을 행사합니다. 
또한 프로젝트 별로 외부에서 받는 연구자금과 개인/기업 순수모금의 비율이 1:1 정도로, 다른 싱크탱크에 비해 상당히 유동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만큼 다양하고 창의적인 연구를 많이 진행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싱크탱크체제는 현대판/서양판 제자백가(諸子百家)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당히 다양하고 참신한 논의가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논의에서 한국과 아시아 문제는 지엽적으로 다뤄진다는 점은 의외였습니다. 다음 달에는 D.C.의 전반적인 대(對) 한국 분위기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