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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게시판

[싱크탱크] 벨기에 유럽의회(EP) 함희은 1개월차

  • 등록일 2017.03.28


KF 글로벌 챌린저 월간 활동보고서



상세 활동 보고
작성자 함희은
인턴십 분류 유럽의회 인턴십
파견기관 벨기에 유럽의회
파견기간 2016년 2월 ~ 2016년 4월 (총 3개월)
보고서 해당기간 1개월차
내용
1월 26일: 벨기에 도착. 무거운 짐을 끙끙대며 슈만역에서 마리루즈 공원으로 걸어왔다. ‘D’ 모양의 거대한 호수가 있고 대충 봐도 50여마리는 넘어보이는 새들이 사는 이 곳. 집주인이 부동산 관련 일을 하시는 분이라 브뤼셀 중에서도 가장 좋은 구석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아 보였다. 다같이 저녁을 먹으러 근처 식당에 갔는데 내가 벨기에에서 가장 좋아하는 겨울 음식인 Chicon au gratin을 먹었다. 작은 벨기에 배추를 햄에 돌돌 말고 치즈를 뿌린 후 푹 익힌 요리인데 추운 날 감자퓨레랑 같이 먹으면 꿀맛이다.

1월 27일: 지난 밤 집주인이 저녁을 사줘서 고마운 마음에 보답을 하기로 했다. 요리를 잘하지는 않지만 아시아마켓에서 불고기 소스를 사서 불고기를 해줬다. 생각만큼 잘 되지 않은 것 같아 살짝 아쉬웠지만 집주인은 고맙게도 밥그릇을 싹싹 비워주었다.

1월 31일: 저녁으로 치즈 6가지와 와인을 먹었다. 내일 첫 출근이라 설레어서 그런지 사실 와인을 먹었는데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앞으로 2개월! 정말 인턴시작이다. 어떤 사람들을 만나고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너무나도 기대된다!



2월 1일: 첫 출근날 –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쁜 줄 알았는데 별거 안 하고도 첫 출근날이 후딱 지나가버렸다. 아침에는 이제 일 경험 1년반차가 된 Simon 과 함께 Karsmaker에서 커피를 마시며 일과 관련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인턴은 돈을 쓰면 안 된다며 Simon이 멋있게 커피값을 내줬다.) 아침 8시반에서 9시 사이 출근, 저녁 5시반 퇴근. 점심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 반 까지라고 했다. 다른 인턴들은 10월부터 시작했고 이제 그 친구들한테는 마지막 달이기 때문에 그 친구들이 무얼 하는지 잘 보면서 천천히 전수받으라고 하였다.

[여기서 잠깐!]
제가 속한 부서는 DG Communication 중에서도 Directorate C: Relations with Citizens 또 그 중에서도 Visitors Service Coordination Unit 입니다. 유럽의회에 방문자시설들을 관리하는 부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의회에서는 크게 4가지 방문시설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방문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곳은 Parlamentarium (박물관)인데요 유럽정치에 대한 역사와 어떻게 유럽이 통합하게 되었는지 유럽의회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저는 첫 출근날 이 곳에서만 반나절을 보냈습니다. 방문자 시설을 관리하는 부서이기 때문에 시설을 직접 체험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보다 먼저 유럽의회에서 일하면서 유럽정치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은 쌓아야 할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로는 Hemicycle이 있습니다. 거대한 반원형태의 회의실인데요 이 곳에서 직접 유럽정치를 대표하는 MEP 정치인들이 연설과 토론을 하는 곳입니다. Mogherini, Nigel Farage와 같이 TV와 뉴스로만 보던 사람들을 직접 보니 인상깊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Station Europe 이 있습니다. 옛 브뤼셀-룩셈부르크 기차역을 개조하여 만든 시설입니다. 터치스크린과 태블릿으로 유럽의회에 관련된 정보를 얻거나 유럽의회와 관련된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House of European History 는 유럽의회가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유럽 공통 역사 박물관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Parlamentarium 이 유럽정치와 관련된 역사만 다루고 있다면 House of European History 는 정치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문화에 대해서도 다룰 예정입니다. 사실 작년에 열리기로 계획되어 있었지만 오프닝 날짜가 조금 미뤄져 올해 5월 6일날 열린다고 합니다.



2월 2일: 오전에 혼자 서랍정리하다가 EP Trainee Guideline 책자를 찾아서 정독했다. 점심 먹은 후 Mickey Mouse 카페 에서 커피를 마신 후 (의회 내에 있는 카페인데 미키 마우스 그림과 미키마우스 컨셉의 의자들이 있다.) Parlamentarium 에서 설문조사를 했는데 재미있었다. 오피스에만 앉아 있는 게 아니고 방문자 시설에 직접 가서 방문자들과 대화도 나누고 교류하니 신났다. 아무래도 대화를 나누다 보니 방문자들이 내가 동양인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유럽의회에서 일하게 됐냐고 질문하게 되고 그럼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국제교류재단과 한국에 대해서 소개해줄 수 있었다. 퇴근하기 30분 전에 유닛 미팅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Head of the Unit (Supervisor) 얼굴을 봤다. 우리 유닛은 12명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유닛인데 Head of the Unit이 모두 다 돌아가면서 내 이름을 발음하도록 시켰고 내가 발음점수를 메겼어야 했었다. 덕분에 다들 성실히 내 이름을 발음하기 위해 노력했고 분위기가 매우 화목했다. 퇴근 후 집에 가려는데 다른 인턴친구들이 매주 목요일에는 꼭 유럽의회 앞 Place Luxembourg 에서 맥주를 마셔야 한다고 한다. (여기 사람들은 PLUX-플룩스 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한다.) 맥주 한 잔 하고 나니 배가 고파서 인턴친구들과 함께 근처의 Place Jourdan 에 있는 감자튀김집에 갔다. 벨기에가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들이 여러 개 있는데 맥주, 초코렛, 와플 그리고 감자튀김이다. 오동통통한 감자튀김에 우리나라에서는 없는 특이한 감자튀김 소스를 찍어먹으면 맥주가 꿀꺽꿀꺽 들어간다. Place Jourdan 에 있는 Maison Antoine 은 그 중에서도 가장 맛있는 감자튀김집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매콤한 마요네즈 소스인 Samurai 소스와 갈릭허브맛이 나는 Tartar-Maison 소스를 찍어먹었다. 꿀맛이다.



2월 3일: Short Friday – Plenary Session 이 있기 직전의 금요일만 제외하고 (대체로 Plenary Session은 한 달에 한 번 있다) 대부분의 금요일은 5시간만 근무하면 돼서 1시반에 퇴근이다. 오전에 DG Communication 대표 취임 연설을 듣고 유럽의 Founding Fathers 에 관한 영상 자막에 오류가 없는지 원본과 비교하며 검토해야 했다. 우리 유닛에서 자주 하는 업무라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어나 독일어와 같은 경우는 수월하게 했지만 불가리아어나 그리스어 같이 아예 알파벳을 쓰지 않는 언어까지 하려니 눈이 침침해지는 것만 같았다.

2월 9일: 오늘은 Directorate C Training Day 이다. Communication 부서에 걸맞게 Storytelling 에 대해서 2일 동안 훈련기간을 가지는데 마지막 날인 오늘 저녁에는 Fairy tale 컨셉으로 의상을 입어야 했다. 평일에는 가게가 다 일찍 닫기도 하고 이 날만을 위해서 코스튬을 사자니 조금 아깝기도 해서 창의력을 발휘해보았다. 집에 있던 이케아 빨간 담요를 뒤집어쓰고 갖고 있던 버건디 목도리로 리본을 묶어 빨간망토소녀로 변신했다. 집에 있던 바구니까지 포인트로 갖고 다녔더니 부서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기분 좋은 하루였지만 그래도 주말만을 기다리는 사회인의 마음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일이 힘들거나 많아서라기 보다는 매번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칼로리가 소모돼 혼자만의 충전시간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2월 10일: Directorate C Training Day 2일차 – 역시 주제가 Storytelling 이다 보니 오늘도 연극을 했다. 고등학교 때 1년 동안 연극동아리 하던 게 이렇게나 유용해질지 몰랐다. 조를 이루어 연극을 구상해야 하는데 어제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장단만 맞추었더니 (대부분 나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셔서 섣불리 의견을 제시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부끄러운 연극의 일부가 되어야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이번에는 조금 능동적으로 내 의견을 표현했다. 환경보호를 위해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자는 내용으로 연극을 만들어야 했는데 너무 식상한 의견만 나오는 것 같아 에코백을 Must-have 패션아이템으로 만들어 유행시키는 시나리오로 하면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반응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국내에서 일해본 적이 없지만 어쩌면 이런 게 유럽의회에서와 국내에서의 직장환경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위치에 있던 간에 조금 당돌하게 보이더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제시하는 것을 굉장히 좋게 생각해주는 것 같았다.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지만 나의 발렌타인은 한국에 있는지라 스스로 셀프-초콜렛 선물을 했다. 매주 화요일에는 유럽의회 앞 PLUX에서 장터가 열린다. 그 중에서 볶은 커피를 판매하는 사나이가 있는데 거기 4유로짜리 트러플 초코렛이 내가 먹어본 초코렛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다. 하나씩 하나씩 아껴먹다가 조금 나눠먹어야 할 것 같아서 집주인한테 권했는데 내 속도 모르고 4개를 단숨에 꿀꺽해버렸다. 조금 속상했다.

2월 20일: 다가오는 Rome Treaty 60주년을 맞이해서 유럽의회 광장 위 Skywalk 다리에 크게 사진을 전시해야 하는데 1957년과 2017년을 교통, 음식, 교육 등등의 테마로 분류하여 비교할 수 있는 사진을 골라야 했다. 내가 유럽의회 들어온 이후로 가장 재미있게 한 업무였다. 내 안에 조용히 숨쉬고 있던 예술성이 폭발해서 오늘 하루를 너무나도 즐겁게 만끽하였다. 업무를 시킨 상사가 나보고 이쪽 분야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며 너무 만족스러워 해주시니 더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점점 내가 무엇을 더 기쁘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방향을 잡아 가는 것 같다.

2월 27일: 단순노동의 (폴더 접는 것) 즐거움을 느낀 날 – 인턴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석사학위 논문을 다 끝냈어야 했기 때문에 고작 몇 줄을 더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하루종일 앉아 고민했던 날들이 무수히 많았었는데 그에 비해 단순노동은 시간을 보내는만큼 결과가 보이고 조금 집중하지 않더라도 손이 절로 움직이니 가끔씩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2월 28일: 10월부터 인턴을 시작하던 인턴친구들이 5개월의 인턴생활을 끝마치는 날이다. 마지막 날인데 벽에 자기 사진을 잔뜩 붙이고 그 다음 인턴들을 위해 열심히 메모를 남기는 걸 보면 인간은 국경을 막론하고 떠나 없어질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있었다”하고 자취를 남기고 싶은 욕망이 있나보다. 유럽의회에서 일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다른 문화와 나라의 사람들이 모여서 합을 이룰까 싶었는데 가끔 보면 또 이렇게 인류 차원에서의 공통적인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감성에 젖어 생각을 좀 하느라 늦게 퇴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