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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의 단상

여름을 살짝 넘긴 9월 초에 북경(北京)에 왔는데, 어느새 계절은 겨울로 들어서고 있다. 1994년 남경(南京) 대학교에서 1년간 지낸 이후 간간이 중국을 오가다가, 이번에 한국국제교류재단의 파견으로 북경대학교 역사학계 대학원생들에게 한 학기 동안 ‘한국 근대사 연구’ 과목을 강의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개교한 지 110년이 지난 북경대학교의 교정은 흡사 서울의 비원(秘苑) 뒤뜰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담쟁이 넝쿨로 뒤덮인 고풍스러운 기와집과 창밖에 걸린 에어컨의 실외기는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1994년 남경대학교에서 “기와집도 3•4층으로 지을 수 있구나!” 하고 다 의아해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SCI가 어떻고, SSCI가 어떻고…’ 하면서 상당한 규모의 인센티브를 내걸고 뛰어난 연구 성과를 독려하는 학교 측의 방침에 다소 푸념 섞인 반응을 보이는 교수들의 모습이나 세계적인 학자를 초빙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다는 등의 얘기를 들으면서 왜 이토록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일까? 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하며, 다소 거친 표현을 쓰자면 달리 갈 데도 없기에 도서관은 늘 꽉 차 있다. 또 교정의 숲 속 여기저기에서는 학생들이 영어 회화를 연습하는 목소리가 울린다. 학생 식당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붐비기에 때로는 서서 밥을 먹은 다음 다시 도서관이나 강의실로 가는 학생들도 있다. 아마 이들 중에서 중국의 내일을 책임질 인물이 나올 것이다.
학교 바깥으로 나가보면 수많은 자전거 행렬과 고급 브랜드의 자동차가 뒤섞여 서로 부딪칠 듯하면서도 제 갈 길을 찾아가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다양성과 개별성의 조화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제각기 갈 길이 따로 있기에, 역설적으로 공존이 가능한가 보다.
중국은 이렇듯 각기 다른 얼굴들이 어우러져서 또 다른 하나의 거대한 모습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본질은 개별성에 바탕을 둔 조화와 공존의 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3억의 인구와 광활한 영토를 가진 중국 사회가 조화롭게 굴러가자면, 거기에 맞는 사회적 잣대와 삶의 원리가 필요할 것이다. ‘콩 볶는 듯한’ 소리로 부산한 한국 사회의 활력이 반도 국가의 에너지 노릇을 한다면, 수많은 조각을 꿰맨 듯한 대륙 국가에서는 느슨하면서도 전체 모양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계도(啓導)의 리더십이 요구되리라.
지난 10월 1일 ‘국경절(國慶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일)’을 맞이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나들이 온 시민들의 모습에서 활기와 자신감을 읽을 수 있었다. 이들을 보면서, 우리말과 달리 존경어나 겸양어가 많지 않은 중국어의 구조와, 중국인들의 수평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사회주의 체제를 거치면서, ‘평등’이라는 새로운 가치가 성리학의 ‘수직적인’ 인간관계를 대체해온 결과, 거대한 통합 사회의 모습을 띠면서도 동시에 개인 중심의 다양한 얼굴을 지닌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이해된다. 서로 다른 두 모습이 조화를 이룬다면, 그_痼_ 미래 중국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세계를 알아야 하듯이, 세계도 우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보탬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북경대학교의 한국사 강좌 개설은 그 의미가 적지 않다. 모쪼록 이 묘목이 튼튼한 뿌리를 내려, 알찬 열매를 맺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