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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한국

나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에 대해서 항상 회의적이었다. 독일 쾰른 근처 조그만 마을에서 자란 나는 지리적으로 아시아 쪽보다는 북반구 나라에 관심이 있어서 영국, 아일랜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을 여행했다. 그 당시 아시아에 대한 나의 생각은 덥고 바쁜 대도시, 중국 음식, 태권도, 차범근(사실 당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축구 선수였다) 등과 같이 간단한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내가 유럽을 떠나야 할 만큼 중요한 이유는 확실히 없었다.

그러나 시간은 변하기 마련이고 나 역시 어느 날부터인가 아시아 문화, 특히 한국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무엇이 나의 마음을 바꿔놓았을까? 유럽 문화가 그렇게도 깊이 뿌리 내려 있던 사람에게, 지금도 대부분의 유럽인들에게는 미스터리 같은 이 나라에 대한 열정이 어떻게 갑자기 생겨난 것일까? 현대 한국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모든 것은 1999년 당시 내가 연주하던 밴드의 가수를 찾기 위해 지역 신문에 조그마한 광고를 내면서 시작되었다. 밴드의 명칭은 내 별명이기도 했던 킴(Kim)이었다. 가수 자리에 첫 번째로 응모했던 사람은 일강이라는 이름의 한국 아가씨로 우리 밴드에 들어와서 한국의 대중음악의 소개, 우리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혀주었다. 우리 밴드는 파야마시스터스(Payamasisters)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쾰른과 뒤셀도르프 전역에서 한국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연주했다. 그것이 내가 한국 문화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였다.
한국계 학생들은 자국의 현 상황에 대해 모호한 이야기들을 했다. 그들은 한국 사회가 개인주의적인 성향으로 기울고 있다는 것에서부터 아직도 공동체의 지배를 받는다는 등 다양한 평가를 내렸다. 심지어 한국의 대중매체 부문에 대해서는 완전히 대중매체에 지배 받는 사회라고 하기도 하고, 독일과 별로 다르지 않은 상황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당시 나는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시각을 가질 수 있는지 알지 못해서 매우 혼란스러웠다.

이런 혼란이 나의 학문 연구에 불꽃과 같은 영감을 주었다. 나는 대중매체를 중심으로 현재 한국의 사회적•문화적 상황을 정확하게 포괄적으로 설명해보고 싶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독일에서는 한국의 대중매체에 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를 확보하는 유일한 길은 한국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이는 바로 미국의 민속학자 클리퍼드 거츠의 생각을 따르는 일이다.
나의 계획을 실행하는 데 유익한 유일한 방법은 현장에서 연구하는 것, 한국에서 관찰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관심의 대상인 한국을 오랜 기간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한국 여행은 매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여러 모로 지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마침 이 연구 계획이 한국국제교류재단 펠로십 지원대상으로 선정되었고, 펠로십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지원은 연구 주제에 대한 진지한 연구와 신뢰할 만한 현장 조사를 시작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

독일인으로서 한국에 처음 오면 가장 먼저 스크린의 압도적인 존재에 큰 인상을 받게 된다. 거의 모든 공공 장소에 스크린이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모든 고층빌딩, 쇼핑몰, 지하철 심지어 동네의 단골 김밥 가게에도 있다. 한국 사회에서 대중매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금방 확실해진다. 또한 이런 면에서 지난 30년 사이에 급속한 발전이 있었다는 것도 분명해진다. 한국에서 대중매체의 역할은 그 외형과 내용 면에서 독일과 다르다. 한국 대중매체의 구조와 수용을 조사함으로써 한국 문화에 대한 결론을 도출할 수 있으며, 한국의 문화와 대중매체 사이의 독특한 상관 관계도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마무리된 나의 현지 조사 연구는 정성분석 틀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 내에서 텔레비전의 관련성과 영향에 대한 하나의 통찰을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주제는 독일에서 처음 이뤄지는 연구로서, 이것이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연구는 2009년 말에 끝날 예정인데, 그때는 내가 한국 문제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나는 이 짧은 기간이 길고 긴 문화의 길에서 아주 작은 발걸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게 있어서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한다’. 그리고 지구상에서 김밥과 견줄 만한 핫도그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