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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 시대의 문화 교류의 중요성

지역 간 민족의 갈등의 원인
인류 역사의 진보 과정의 결과라고 해야 할 21세기는 초입부터 갈등과 긴장으로 얼룩져 있다. 세계를 그 다양성의 경계를 극복하여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드는 지구화(globalization)의 거대한 변화의 물결이 번지고 있지만, 지구 곳곳에서 새로운 형태의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적 성향을 지닌 힘의 경쟁과 배타적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어떤 나라나 집단도 고립되고 독립된 세계로 존재하지 못하며 상호 협력을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인식에도 불구하고 왜 갈등은 끊이지 않고 심지어는 더욱 거세고 비참해지는 것일까? 그 대답은 간단하다. 나라와 민족 집단이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식량과 에너지를 포함한 자원을 보다 많이 확보하려는 욕망과 남의 환경을 파괴함으로써 자기의 환경을 보존하려는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인 욕심이 이러한 갈등의 생산을 부추긴다. 게다가 사람들은 종교적 차이로 말미암아 인간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정도의 상호 증오와 잔인한 파괴를 성전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다. 갈등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다.
지역 갈등은 반드시 물질적인 조건의 열악성이나 결핍 혹은 불균형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와 자기 바깥의 세계에 대한 무지(ignorance)와 편견에 기인한다. 이 무지와 편견은 교육을 받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경우도 있고 잘못된 지식과 정보, 그리고 시각으로 교육됨으로써 빚어지는 경우도 있다. 특히 국가와 민족주의는 자기 집단의 순수성과 우월성, 그리고 정당성을 절대화함으로써 이웃과 더불어 사는 철학을 저해한다. 뿐만 아니라 자기와 다르다는 점을 가지고 상대방을 부정하고 배척하고 심지어는 지배와 착취까지 하려든다. 이는 이전 세기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그리고 서구중심의 문명관과 진화론이 빚어낸 배타적 지배와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타자를 차별하는 세계관은 또한 역사의 산물이다. 과거의 현존은 식민자들이 만든 타자에 대한 왜곡된 지식과 정보가 아직도 지식계를 지배하고 있는 사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갈등과 긴장과 증오의 밑바탕에는 지난 세기의 정치경제적 관계의 역사가 남긴 흔적과 상처가 있다. 그것은 현재의 정치와 경제, 산업과 기술체계의 현실에 일정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쉽게 해방될 수 없다. 과거 청산이나 역사 인식의 공유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쉽거나 가까운 길이 아니다.
국가 간의 갈등은 국가적 통합이나 대외적 영향력 혹은 경제적 지배력을 성취하기 위하여 정부나 정권에 대한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으로 국가, 민족, 인종 간 적대감과 경쟁심과 대립구도를 조장하고 생산함으로써 일어난다. 역설적으로 갈등상황은 위기상황이 그렇듯이 국민적 통합이나 정권에 대한 지지를 창출하기 위하여 종종 필요하다.

갈등의 현실과 문화 교류의 필요성
그러므로 문화적인 이해와 소통 능력의 제고는 지역 간, 국가 간, 민족 간의 갈등을 예방하고 최소화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권력만능주의나 경제결정주의의 허구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존엄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인정받을 권리가 있는 존재라는 인식, 공존과 공동 번영만이 생존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 타자를 긍정하고 신뢰하며 세계의 동반자로서 인식하는 지혜를 갖추어야 한다. 곧 문화의 다양성과 이질성에 대한 수용력을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야 하는 것이다.
문화 교류는 그러므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며, 나아가서는 윤리와 세계관과 지혜의 공유의 폭을 확장하고 그 정도를 심화하는 길이다. 그러나 현재에도 타자의 문화에 대해서 문화제국주의적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 각 민족의 문화를 서열화하고 타문화의 정당성을 박탈함으로써 그 문화를 가진 사람의 존재가치와 타당성을 훼손한다. 인종주의적, 계급적 배타성과 왜곡으로 마침내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화이해의 장으로서 문화 교류는 필요하다. 이때 문화는 특정 범주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양식과 제도와 관습, 그리고 세계관과 가치관을 말한다. 이의 이해를 통하여 상대방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해진다.
한편으로 문화는 사람들이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조건과 환경과 체계이기도 하다. 에너지의 개발과 공급체계, 환경 보호와 보건과 위생의 실천 방안 등은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바로 국경을 넘어선 인간 복지의 실현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경제주의나 국가주의 혹은 권력구조는 문화적 복지에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이를 위한 공동 노력이 곧 문화 교류이며 문화적 공동체를 위한 노력이 되는 것이다.
동시에 문화는 인류의 지적, 미적 활동의 산물이다. 문화 유적과 유물, 그리고 유·무형의 문화재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부터 이제 문화 왜곡과 침략과 약탈의 역사를 청산하기 위한 움직임이 조직화 되고 있다.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는 문화재와 문화유물을 원점 즉 제자리에 돌려주기를 요구하는 운동, 민족이나 세대나 이데올로기의 경계를 넘어선 문화향유체계를 확립하고 그 향유기제를 보편화하는 방안에 관한 것이다.
이전 세기에 행해졌던 제국주의적 문화 유산의 약탈에 대하여 문화를 원주인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요구와 그 향유를 보편화하기 위하여 현재의 메트로폴리탄을 계속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현재 소유하고 있는 선진국의 주장대로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가 유물을 반환받았을 때 얼마나 제대로 보존이 될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각종 발전정책에 의하여 문화재가 파괴되고 상실되는 예를 우리는 수없이 목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이 가능한 문화재는 제자리로 돌려주어야 한다. 현재 세계에는 몇 개의 문화적 메트로폴리탄이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세계의 지역과 도시는 문화적 등급체계로 편성되는 것이다. 세계의 국가와 도시들이 일종의 분업체계로 편제됨으로써 효율성이 극대화되고 사람들은 국경을 넘어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곳곳의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 글로벌리제이션 옹호자들이 제시하는 이상이다. 이 논리는 문화의 주권주의에 대한 문화제국주의적 논리를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둘 사이의 논쟁은 현재 소유하는 국가가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쉽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프랑스는 미국 중심의 문화적 글로벌리제이션에 대하여 강력한 반발을 하는 대표자를 자처하지만 그들이 제3세계에서 약탈한 문화재의 반환에 대해서는 강력히 반발하며 이 문제에 관한 한 제1세계와 공조를 고수한다. 조선의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을 거부하는 것이 그러한 맥락에서 프랑스가 보여주는 이율배반적인 태도이다.
중국처럼 발해와 고구려 유적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을 비밀로 하여 이를 배타적인 국사로 발명해내는 작업도 심각한 문제이다. 이 지역의 고대사는 보다 넓은 지역과 다양한 민족의 역사로서 그 발굴과 연구는 공개적으로 공동 진행되어야 한다.
독도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일본이 취하는 행태는 비문화적이다. 현재의 정치적 이득을 취하기 위하여 문화적인 자료와 지식을 왜곡하고 파괴하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일본의 국가 지도자는 전범을 합사한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적으로 참배함으로써 인류에 대한 전쟁의 죄악을 성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보편적 윤리의식을 정면으로 무시하고 있다. 많은 일본인들은 히로시마 원폭광장을 일본인의 희생을 부각함으로써 전쟁 당사자로서의 죄악을 은폐하고 일본의 도덕적 우위를 연출하는 장소로 이용한다. 그들은 다른 국적의 원폭 피해자를 함께 위령하지 않는다.
이렇게 보편적인 가치와 윤리를 발견하고 재생하는 공간으로서의 역사 공유를 거부함으로써 국제적인 신뢰는 깨어지고 갈등은 증폭되는 것이다. 지역이나 국가 혹은 민족 간의 갈등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인 문제에서 충돌하는 것이다. 문화적인 왜곡이 자행되는 한 상대방을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성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제 문화 교류의 철학적 바탕
국제 교류는 눈앞의 목적과 이익을 좇거나 경쟁을 위한 단기적 안목의 자기선전이 아니라, 먼 안목으로 인류 보편적 가치의 확산과 나눔을 위한 쌍방적인 문화의 교류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자국민에게 타문화를 경험하고 서로 다른 문화 간의 대화와 소통의 기회와 공간을 마련하는 수단이다. 광의의 문화 교류에는 지식과 정보와 기술체계, 그리고 인적 자원의 교류를 포함한다. 역사에 대한 공동의 인식과 환경문제의 공유, 에너지 보존과 식품 위생을 포함하여 인간적 삶의 질을 고양하는 물질적인 조건의 제고를 공동의 관심사로 삼아 함께 노력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국제 교류의 목적이자 내용이 되어야 한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이제 한국인으로 하여금 세계관을 넓히고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자세와 능력을 기르도록 여건을 제공하는 차원까지 발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웃의 문제를 인류의 공동 문제로 받아들이는 혜안과, 공동으로 해결책을 찾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자격과 능력을 갖추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와 사회로부터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이 문화 교류 사업에 주어져야 한다. 요컨대 국가의 힘이란 그러한 문화 분야에 대한 투자 능력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