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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한국학 발전의 현황과 전망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 한국학이 그 싹을 틔우고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2003년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제1회 중남미한국학학회, 2005년 제1회 아르헨티나한국학학회, 멕시코에서 열린 제2회 중남미한국학학회에는 각국의 한국학자들이 참석하여 중남미 한국학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 막 그 대열에 합류한 칠레의 한국학은 중남미 대륙에서 한국학이 비교적 자리를 잡은 멕시코나 아르헨티나에 비해서는 미약하지만 이제 씨앗을 심는 단계라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의 발전을 주목해 볼 만하다.
칠레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대한 학문적 관심이 증대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4년 산티아고에서 개최된 APEC 회담, 개방경제정책에 따른 대 아시아무역 증가, 그리고 한국은 물론 중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이후 아시아를 알아야 한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록 경제적인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나, 상대방에 대한 문화적인 이해가 없이는 경제 교류에도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대학 내에 아시아 관련 강의를 개설할 필요성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대학 내 한국어 강좌
정규 교양과목으로 한국어 강의를 시작한 칠레 최초의 대학은 칠레 마리티마대학(Universidad Maritima de Chile)이다. 상경대학 교양과목으로 2004년도 2학기와 2005년도 1학기에 각각 한국어 1과 한국어 2가 개설되었으나 이후 학교 운영진이 바뀌면서 한국어 강의는 중단되었다.
칠레대학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재단 지원으로 몇 차례 연구 과제를 수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주 연구자였던 에르난 구티에레스(Hernan Gutierrez) 교수가 학교를 떠나 칠레외교부로 자리를 옮기고 난 이후에는 이렇다 할 연구 활동이 없다가, 2006년 초 국제관계대학원(Instituto de Estudios Internacionales) 내에 한국학프로그램(Programa de Estudios Coreanos)이 정식으로 발족되어 본격적으로 한국 관련 활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는 칠레 최초의 한국학 전담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한국문화 수업으로 시작해서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곳으로는 발파라이소 카톨릭대학(Pontificia Universidad Catolica de Valparaiso)이 있다. 2004년 2학기부터 필자가 한국어와 한국문화(Lengua y Cultura Coreana)를 강의하기 시작한 이후 학생들의 요청에 따라 한국어 1과 한국어 2가 차례로 개설되었다. 인문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과목으로, 문화강의는 매 학기, 그리고 한국어 1과 한국어 2가 1학기와 2학기에 각각 개설된다. 학생들의 이해 수준이 높고 꾸준히 강의가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곳이라고 생각된다.
아시아학과 관련해서 현재 칠레에서 가장 체계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대학은 칠레가톨릭대학이다. 2002년부터 역사·지리·정치학부(Facultad de Historia, Geografia y Ciencia Politica) 내의 아시아프로그램(Programa de Estudios Asiaticos)을 중심으로 아시아학 부전공이 개설되었다. 필수과목으로 아시아메가레히온(Asiamegarregion)을 수강하고, 그 외 아시아프로그램에서 개설한 10개 부전공 과목 중 4개를 선택 수강하면 부전공 이수로 인정해 준다. 아시아메가레히온에서는 필자를 포함하여 매 학기 7~8명의 교수가 한·중·일에 대해 강의한다. 한국과 관련된 단독 과목으로는 올해 처음 한국문화와 한국어(Cultura y Lengua Coreana) 과목이 개설되어 필자가 강의하고 있다. 아시아프로그램에서는 이외에도 작년 2학기부터 스터디그룹아시아(Study Group ASIA)를 조직하여, 아시아교환학생과 칠레학생들 간 교류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한국국제교류재단으로부터 2004년 이후 매년 도서 지원을 받는 것 이외에도, 2006년도 재단 지원이 결정된 한국 관련 연구 및 문화 행사 등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시킬 계획을 가지고 있다.

한국학의 전망과 과제
칠레 한국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여러 방안이 있을 수 있겠으나 우선, 아시아학 자체가 이제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에 한국학이 독립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거창한 계획을 세워 무리하게 진행하기 보다는 칠레라는 국가의 특성, 그리고 칠레 내 각 대학의 특성을 파악하여 이에 맞게 차근차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학의 아시아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여 중국학, 일본학과 ‘따로 또 같이’를 모색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두 번째로, 무리하게 한국어 교육을 시도하기보다는 단기적으로는 문화교육을 먼저 시작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연구 지원을 통해 학자들을 고무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국가 이미지를 개선시켜 한국을 배울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
셋째, 한국학 강의를 개설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까’하는 것이다. 엉터리로 가르치는 것은 가르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시아 관련 과목에서 한국을 중국의 일부로 가르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또한 학교나 학과의 방침에 따라 강의 개설 및 존폐 가능성이 정해지고, 단과대학의 독립성이 강하다는 칠레의 대학 특성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넷째, 스페인어가 가능한 한국 교수들이 직접하는 강의가 이상적이겠으나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교수초청강연회, 공연, 전시회 등을 더욱 활성화하여 대학과 학생들의 관심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한국문화와 한국어 수강생들에게 한국을 방문할 기회를 마련해 줌으로써 미래의 한국학자를 길러 내는 일도, 필요한 일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다. 칠레의 한국학은 이제 시작이지만, 여타 국가들의 한국학 발전 상황을 모델로 삼아 최대한 시행착오를 줄이며 발전해 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칠레 현실에 맞는 한국학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동시에 국가 및 기업의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이어진다면, 칠레의 한국학은 뿌리 깊은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