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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움직이는 부드럽고 강한 힘

지난 8월 2일부터 15일까지 중앙일보 1층에 위치한 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전시장에서는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한 자리에 선을 보이는 전시가 열렸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soft’ 와 ‘power’ 라는 단어를 함께 엮은 전시 제목부터 흥미로운데, 이 전시는 오는 9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여성포럼에 앞서 열린 기획 행사였다.



여성적 감수성과 유연성이 묻어나는 전시
모순적이면서 중의적인 의미를 지니는 이번 전시의 제목 ‘SOFT POWER’는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학장 조셉 나이(Joseph Nye)가 정치-경제-외교학적인 의미로 처음 사용한 말이다. 이는 무력과 금력에 대항하는 힘으로써 여러 가지의 다양한 협상과 접근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일컫는데, 이번 전시는 이러한 원래의 의미에 머물지 않고 문화적 개념으로 나아가 11명의 작가를 통해 그 함의를 해석하고 있다.

전시에는 일곱 명의 한국인 작가를 비롯해 노르웨이, 독일, 프랑스, 스웨덴 등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적인 작가들이 참여했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김홍석의 작업은 로버트 인디아나의 유명한 작품 ‘LOVE’를 재해석한 것으로 기존의 똑바로 세워진 LOVE라는 철자를 구부러뜨리고 낡게 만들어 제작해 새로운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안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전면의 구석에 놓인 거대한 연두색 바구니 무더기. 설치미술가 최정화의 작품 ‘GREEN’으로 흔하게 볼 수 있어 보잘 것 없는 플라스틱 바구니가 엉키고 겹쳐지면서 생기는 분열과 재생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그 앞에 바로 놓인 신미경의 작품 역시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데 비누로 정교하게 깎아 만든 보살상들이 일렬로 놓여있다. 그 시각적인 아름다움 뿐 아니라 사용하면서 거품으로 사라질 비누의 운명과 비누라는 소재 때문에 전시장 안을 채우는 향긋한 비누 냄새로 인해 시각, 후각적인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또한, 전시장 내부의 벽면에 영사되는 텍스트 작업을 진행한 2인 작가 그룹, ‘장영혜 중공업’은 여성성과 관련된 문구와 소프트 파워에 대한 작가들의 선언이 담겨진 텍스트를 한글, 영어, 중국어로 전시가 진행되는 내내 선보였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의 얼굴이 그려진 캔버스 밖으로 흘러내는 치마를 설치한 조덕현, 자연의 거대한 힘을 연약한 소재인 실로 표현한 비드야 가스탈통, 여성 기업인과 남성의 이미지를 ‘피에타’처럼 구성한 영상 설치 작업의 AK 돌븐, 여성과 아이들이 겪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을 클레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나탈리 뒤버그, 사람 인人자로 서로에게 기대어 긴 시간을 마주하는 퍼포먼스를 사진으로 찍은 천경우, 꽃밭 속에 매복한 군인이 서서히 전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용백, 한국과 남아공 동시 프로젝트로 성차별적인 지역과 장소에 대해 고찰하는 베로니카 위만의 작업에 이르기까지 에서 던져지는 화두는 비단 여성들만을 향한 것은 아니다. 미술이 단순히 미술만을 위한 자족적인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하고, 재해석하며 질문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국제화 시대의 ‘Soft power’라는 맥락을 건드림으로써 여성의 위치에 대한 정치, 문화, 사회, 미학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조만간 열릴 세계여성포럼의 주제인 ‘여성과 리더십’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현대미술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던 이번 전시는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당대 작가들의 고민과 현실 인식을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전시는 이후 포럼이 진행되는 동안 W호텔 로비와 비스타 홀 앞의 공간에 작품을 설치하는 형식으로 포럼과 동시에 다시 진행될 예정이다.

Interview : 숨 suum 디렉터, 큐레이터 이지윤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 그리고 리더십

이번 전시는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현대미술 전시기획과 문화 마케팅 등을 진행하는 기획사 숨SUUM에서 기획했다. 숨SUUM은 아시아와 유럽의 가교 역할을 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대부분 비영리, 공공기관적인 성격의 프로젝트를 기획해왔다. 이곳의 디렉터인 이지윤 큐레이터를 통해 전시에 관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여성과 리더십’이라는 세계여성포럼의 주제와 연결해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는 무엇인지 설명해주십시오.
A. 흔히 세계여성포럼과 연계된 전시라면 여성주의적으로 매우 강하게 편향된 주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여성의 권리 및 다양한 페미니즘적 주제는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전시를 기획하기에 앞서 앞으로 21세기가 요구하는 리더십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앞으로 '리더'라 하면 기존의 정치, 군사적인 무력이나 금권력에 대한 대체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전시에서는 이를 단지 여성의 리더십에만 국한 시키지 않고 더욱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에서 현대미술작가들의 해석을 통해 접근해보고자 했습니다. 이에 국적과 성별에 상관없이 작품 내용과 소프트 파워에 대한 다양한 해석으로 접근했습니다.

Q.전시에 초청된 작가는 한국, 스웨덴, 노르웨이 등 그 국적이 매우 다양합니다. 작가 섭외에 있어 국적 배분에 영향을 준 지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전시는 한국의 관객에게도 보여 지지만 외국에서 오는 많은 초청 인사들과 포럼 참여자들에게 보여 지기 때문에 한국 작가들을 우선으로 하여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또한 초청된 한국 작가들은 최근 해외에서의 왕성한 활동으로 인해 오히려 한국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지 않은 작품들도 많습니다. 그리고 일부러 국적 배경을 구분하려 하지는 않지만 이번에는 1970년대부터 유럽에서 페미니즘으로 가장 기조 역할을 한 스웨덴 및 북유럽 작가들을 많이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Q.이번 전시와 관련해 국제교류재단의 지원이나 역할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는지요?
A. 본 전시는 처음에는 포럼 기간에만 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가 장소 제공에 선선히 수락과 협조를 해주었고, 이를 통해 국내의 관객들에게 미술관에서 전시를 소개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설치미술을 공간에 설치하는 과정에 작가들의 많은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주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준 점에 감사드립니다.

인터뷰. 전미정. 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