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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끝나지 않은 여행

최근 뉴욕에서 개최된 한 회의에서 나는 1990년대 한국의 정의 및 인권 회복 노력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20세기 말과 21세기 초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몇 년에 걸쳐 실시한 연구와 글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나는 발표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면서 몇몇 친구들에게 내가 과거에 했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재단이 나의 여행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 있었던 대화의 일부분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나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은 의심할 바 없이 한국국제교류재단이었다. 1990년대 초반 한국어 펠로십부터 1990년대 말 체한연구 펠로십에 이르기까지 재단은 내가 학계와 한국학으로의 여행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재정적 지원과 기관 차원의 지원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역학이 종종 경제와 정치 연구로 장악되다시피 하던 때, 재단이 비전과 믿음을 가지고 한국 사회운동의 결집과 발전에서 대중의 기억이 어떤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조사하는 연구를 지원해준 것에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재정적, 학문적 지원을 뛰어넘어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주된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은 내게 환영의 말을 건네주고, 늘 유쾌함을 안겨주었으며, 격려를 베풀어주었던 헌신적인 재단 직원들이다. 항상 여행의 다음 단계에 관심을 가져주었던 직원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재단의 얼굴 -한국에서 지내면서 가끔 좌절에 빠지기도 한 연구자에게 위안을 주곤 했던 그런 얼굴 - 이었다.

그러나 한국국제교류재단과의 관계와 여행이 끝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박사 과정을 지나 교수가 된 나는 또 다른 입장에 선 자신을 발견한다. 내 자신을 위한 지원금은 더 이상 찾고 있지 않지만, 이제는 새로운 학생 세대 사이에 한국학을 진흥시키기 위한 길을 찾고 있다. 지난 2년에 걸쳐 나는 한국의 유수 대학 두 곳에서 현대 한국의 사회운동에 대한 여름학기 강의를 담당했다. 또한, 내가 몸담고 있는 대학에서 한국학을 동아시아 사회와 국제사회학 강좌에 포함시켰다. 한국학 분야에서 ‘최고이자 가장 똑똑한’ 분들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그들의 일을 교육 현장에서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욕에 가득 차 있다. 사실 한국학의 차세대 학생들과 함께 일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보답’ 받는 느낌을 준다. 나는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게 되길 바라고 있다.
물론 이 여행이 단순히 새로운 세대를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지 만은 않을 것이다. 차세대 학생들이 현재의 한국학 수준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는 물론이고,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남겨진 책임이다. 이 목표를 위해서 나는 학생들이 장래에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자 하는 새로운 열정과 욕망을 갖도록 격려했다. 태평양 북서부에 위치한 중간 규모의 인문교양학부 대학에서 이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가끔씩은 전도유망한 학생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나는 이들에게 재단에 지원을 신청해보도록 격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학생들이 재단의 지원 신청 자격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 이상 학부생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학원생도 아닌 경우가 그러하다. 이런 학생들은 대규모 사립대학교나 공립대학교의 ‘정상적인’ 학생의 예는 아닐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데 필요한 욕구와 태도, 결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종종 놓쳐버리는 이런 부류의 학생들을 지원할 수 있는 새 길을 열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재단이 과거에 했고, 현재 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하게 될 일에 대해 한국학계를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리고 싶다. 지칠 줄 모르는 재단의 헌신은 ‘한국의 것’에 대한 전세계적 관심과 학문적 관심이 양적, 질적으로 커지는 결과를 낳았다. 앞으로도 우리의 관계가 지속되길 기대하며, 재단의 지원을 통해 한국학의 학문적 수준을 더욱 발전시키고 한국을 널리 알리게 되길 바란다.